<징비록>에 나오는 지명 문제

드라마 <징비록>에서

풍신수길이 발바닥에 먹물을 묻혀 발도장을 찍는 장면이 있었죠.

이걸 캡쳐해놓은 걸 보게되었는데

이렇게 고화질판 캡쳐를 보게 되니 방송때에는 볼 수 없었던 것까지 볼 수 있네요. 



이 지도는 여러모로 어처구니가 없는 지도죠. 

해안선 윤곽이 현대 지도에 필적할 정도인게 그 첫째인데

정작 그 내용이 개판인게 두번째입니다. 

연두색 사각형 안을 잘 보시면

대동강 물줄기가 히리비리한 것도 문제지만

평양, 개성 위치가 영 요상하죠. 

평양은 서해안쪽으로 치우쳐야하는데 내륙 깊숙히 들어앉아있고

개성은 경기도를 벗어나 황해도로 이전했습니다. 


전라도 전주-장수-남원 트라이앵글을 보면

전주는 전남 장성 위치에 들어 있고 남원은 순천정도 되겠네요. 


해안선은 현대 지도에 필적하는데 지명표기는 실제 위치와는 영 따로노는 요상한 상황.

일부러 부정확하게 해서 옛날 지도 느낌을 내려고 한 것일까요? (...)


다음은 빨간 원에 주목


漢城

大邱



요 두 지명이 걸립니다. 

한성과 대구.


이 두 곳이 왜 문제냐 하면

먼저 한성.

< 해좌전도 경기도부분 확대 >

조선의 지도에서는

여간해서는 한성을 '한성'이라고 적지 않습니다. 

임금님하께서 계시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보니

빨간 원으로 강조표시를 하고 


이라고 하고 있죠?

서울, 수도, 도읍 이런 뜻을 가진 한자죠.

< 천하도 경기 부분 >


< 여지도 경기도 부분 >


< 조선팔도여지전도 경기도 부분 >


< 동국지도 >


< 여지도 중 아국총도 >

웬만해선 京입니다.

< 조선국 팔도통합도 >

조선지도에서 '서울'을 찾아보면

다른 표기보다는 '京'으로 표기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물론 京으로 일괄 통일되어 있는건 아니죠.


< 신증동국여지승람 중 동람도의 팔도총도 >

여기선 京 이라고 짧게 쓰지 않고

京都(경도) 라고 쓰고 있습니다.


근데 그게 그거죠;



'경도' 하면 일본의 옛 수도 교토(京都)가 연상되는군요. 

그런겁니다. 

중국, 일본애들도 수도를 칭할 때 ○京, 京都 이런거죠. 

도쿄도 東京 이잖아요. 동쪽수도.

중국 수도 베이징?

北京 북쪽에 있는 수도. 북경.

평양도 한때는 서경, 경주는 동경.

京이 우리말로 서울이잖아요;

일찌기 중앙집권체제가 자리잡힌 동아시아권에선

현지 고유 지명을 계속 유지하기보다는

도읍지 자체를 '京'이라고 인식하고 대우해왔던거죠.


< 조선팔도지도 >

심지어 일본에서 만든 지도에서조차 이렇습니다. 

이게 1785년에 제작된 지도인데요. 

확대해서 보면 이렇습니다. 

京師(경사)

그냥 다른거 없고 '수도'라는 의미입니다. 


< 광여도 중 도성도 >

그리고

'도성(都城)'이라는 표현도 있죠. 

< 도성삼군문분계지도 >


드라마보면 굉장히 자주 쓰이는 표현이죠

'즌하 어찌 도성을 버리고 가시나이까'

여기서 

'즌하 어찌 한성을 버리고 가시나이까'

이래버리면 뭔가 어색하죠.


< 수선전도 >

首善

수도의 首입니다. 

善은 뭔고하니

사기에 나오는 

建首善自京師

'으뜸가는 선을 건설함은 서울에서 시작한다'

에서 따와서 저렇게 이름을 붙인겁니다. 

京師



서울, 수도자체를 가리키는 표현들이 다양해서

경도, 경사, 경성, 왕경, 왕도, 왕성, 도성 등등등 이 있습니다.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는 황도(皇都), 황성(皇城)으로 지칭하기까지 함)


경성(京城)의 경우 일제강점기때 한정적으로 쓰인 이름으로 생각할 수 도 있지만

조선시대에 서울을 지칭할 때 '경성(京城)'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습니다. 

여기서는 '지명'으로서의 지칭이 아니라

도성, 경성, 경사 등과 같이 '수도 서울'을 일컫는 흔한 표현 중의 하나였던 것이죠. 

조선시대로 타임슬립해서 서울을 지칭해 말할 때 '경성'이라고 해도 아무 문제 없는겁니다. 

일제강점기 때의 경성은 '지명'으로서의 개칭이라 문제가 된거구요.



'한성'이나 '한양'은 지명인데

이 둘은 수도라는 의미가 아닌 서울(지명)의 이명.

서울의 옛 이름인 '한양'의 경우는 실제로 쓰입니다. 

< 한양도 >

조선시대를 배경으로한 영화나 드라마같은 걸 보면

'한양'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 한양도 >

지명 자체를 이야기할 때는

'한성'의 쓰임보다는 '한양'의 쓰임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 한양도 >

한양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경우는 상당히 많죠. 

사실 한양(漢陽)은 고려 대의 명칭으로

조선을 개창하고 수도를 옮기면서

한양을 한성으로 개칭합니다. 

근데 이게 잘 보시면 '한성부'죠. 

'한양부'를 '한성부로 고치다.


조선에서 府는 도시권역에서 좀 큰 도시를 '부'로 대우해줬습니다. 

조선 초기 한성부 외에 부가 있던 곳은 

개성부, 경주부, 평양부, 전주부, 함흥부 이렇게 다섯 곳을 '부'로 삼아 일종의 광역시 취급을 해줍니다. 

네임드 도시만 부가 될 수 있었는데 

원래 태조 이성계의 출신지인 영흥도 영흥부로 시작은 했지만 
'조사의의 난'때문에 반란이 일어난 영흥에서 부를 떼고 함흥이 부가 됩니다. 

나중에 부로 승격하는 고을은 계속 늘어가게 되고요. 


이렇게 한양부를 한성부를 개칭하기는 했는데 

'한성'자체는 '한성부'로 쓰일 때나 주로 사용되는 이름으로 

그 자체가 지명으로 쓰인 것은 좀 약한 편이었습니다. 

이마저도 '한성부(漢城府)'라고 해야할 것을 

'경조(京兆)'라고 돌려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동여도 >

京兆 = 한성부(漢城府)

京兆 五部는 경조(=한성부)의 다섯개 부(部)를 말하는 것으로 

부는 오늘날의 '구'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중앙, 동서남북 5개의 부를 두고 그 아래 또 방을 둬서 구역을 나눈거죠.


어쨌든 '경조'라고 쓰지 한성이라고는 하지 않았죠.

< 한성부 >

어? 여기에 '漢城'이라고 똑똑히 나오지 않느냐!

그렇군요. 

하지만 이것은 '한성'이 아닙니다. 

한성이라고 나온것 아니라

'한성부'

라고 나온겁니다. 

'한성' 하고 '한성부'는 같으면서도 다른겁니다. 

이거는 예를 들어서(실제와는 다르지만) 'New York'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New York City'라고는 지도에 써도 

'New York'이라고는 지도에 안 쓰는 거랑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디까지나 '한성부'라고 되어 있지

'한성'이라고 된건 아닌거.

< 신증동국여지승람 중 동람도의 팔도총도 >

이 동람도 중에

경기도 부분을 보면

< 신증동국여지승람 중 동람도의 경기도 >

역시 한성(漢城)이 아니라 한성부(漢城府)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쩌다가 '한성'이 나오긴 하지만

그것은 '한성부'로 나올 때 그 부분으로 나오는거죠. 


정리하면

수도자체를 지칭하는 '京'과 그와 비슷한 호칭들인 경사, 도성 등으로 표기하는게 주류이고

어쩌다 '한양'이라고 하는 경우는 꽤 되는데

'한성'은 굉장히 보기 어렵고 

그 마저도 '한성부'로 쓴다 이겁니다. 

그래서 결론은,

 지도에서 '한성'이라고만 하는 것은 당대 상식과는 맞지 않는 표기법이다. 

라는 거구요.




그 다음 

대구.

大邱

< 大邱市街, 1903년 >

< 영남읍지 중 大邱府邑地圖, 1895 >

< 아국총도, 조선 정조시기 >

확대

< 동국지도 중 경상도 , 18세기 >

< 신증동국여지승람 중 동람도의 경상도, 16세기 판본 >

어느새 大邱大丘가 되었죠.


대구는 원래 대구가 아니라 대구였습니다. 
(大邱는 원래 大가 아니라 大였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원래 大였는데

조선에 유교탈레반들이 가득해지다보니

'공자님의 이름인 를 함부로 쓰는게 말이나 되느냐!'며
(공자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어서 높여서 '子'를 붙여 칭하는 판이니)

고을이름에 붙은 '丘'를 떼어달라고 청원합니다.



영남 유림들을 고깝게 본 영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야이 십선비들아!
중국에서도 안 하는 짓거리를 늬들이 왜 한다고 나서니?
그리고 그렇게 중요한 거면 3백년동안 대체 뭐하고 있었다니?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그래 진짜 짜증나게!


그러던게 영조가 승하한 이후에

슬그머니 '丘 피휘신청'이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 아아 영남에 반역의 기운이 가득해.jpg >

이리하야

에서 로 바꾸어달라는

유림의 오랜 바람이 마침내 이뤄졌다고 합니다그려~ 




하지만 이 때 大邱로 바꾼다고 하긴 했는데

이후의 기록물이나 지도 디벼보면

정조 이후에도 여전히 大丘라고 된 경우가 많고

철종실록에서도 大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정조 ~ 철종 실록을 보면 大丘와 大邱가 혼재되어 있죠. 

(오늘날에도 Taegu에서 Daegu로 영문표기를 바꿨다고는 하지만
언제 전부 Daegu로 바뀌겠습니까; )



이것도 실질적으론 정조대가 아니라 정조실록이 만들어진 시점인 순조대에 바뀌었다고 할 수 도 있겠죠.

정조실록에 처음 나타난 년도는 정조 2년(1778년)이지만 

정조실록이 편찬된 년도는 순조 5년(1805년)이니까요.




근데 1592년인데 이미 大邱.
풍신수길의 선견지명

이로써 <징비록> 지도들이 시간을 달린다는 것이 다시한번 증명되었군요.
알고보니 풍신수길이 십선비라고 합니다. 글 내려주세요.



18세기 이전에는 大邱라는 지명이 있을 수 가 없지요.

그래서 대구를 大丘라고 하는가

 大邱라고 하는가에 따라

정조시대 전후의 물건이라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감정의 주요 포인트가 됩니다.

1. 고지도 감정이 들어왔는데 大丘라고 되어 있다.

→ 음...정조대 이전 물건인가보네요?

2. 임진왜란때 약탈당한 조선 고지도라고 팔러왔는데 大邱라고 되어 있다.

→ 넌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이 그래픽에서도 대구(大邱)라고 하고 있는데

대구(大丘)라고 해야 옳죠.


이 문제에 대해 당대 시점이 아니라 

시청자가 현대 시점에서 이해하기 좋게 

大邱로 해도 되는거 아니냐고 말 할 수 도 있을겁니다. 

현대 지명에 맞춘다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장면에서는 

한양(漢陽)이라고 하지말고 서울이라고 했었어야 합니다.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 거죠.



'이리역 폭발사고'를 그린 영화를 만든다고 할 때

배경에 '익산역'이라고 걸어놓는게 맞겠습니까?

<징비록>에서 앞으로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겠는데

이순신이 이끄는 전라좌수영에 '흥양수군'이 있습니다.

흥양은 나중에 고흥으로 바뀌는데

극중에서 지도로 표시할 때 흥양현이라고 나와야지 고흥군으로 나오면 안되는거죠.

< 냉동대구.jpg >

저 시대를 이야기할 때

대구를 大邱라고 하면 오타인겁니다. 

大丘라고 하는건 오타가 아니죠. 


사실 한자병기 안하고 대구라고만 했으면 아무 문제도 없을 일입니다. 

大丘하고 大邱는 차이가 있지만

대구는 대구니까요. 




그리고 한자병기를 하려거든 인명도 한자병기해야지

지명만 한자병기 하고 인명은 그냥 한글만 하는건 대체 뭐랍니까;

하려면 그냥 다 한글로 하든가

아니면 다 한자병기하든가
by MessageOnly | 2015/05/16 20:47 | ■ 다른게 또 뭐있나.. | 트랙백 | 덧글(10)
누가 지금 코고는 소리를 내었는가?
누구인가? 지금 누가 코고는 소리를 내었어?

누가 코를 골았는가 말이야!


처...처..청년대장동지;;;



참으로 딱하구나. 

내가 지금 일꾼대회를 주재하고 있는데

어찌 졸 수 가 있느냐 이 미련한 것아!!


내가 가만히 보니

네놈 머릿속에는 반동이 가득찼구나

여봐라 

942부대는 들으라

저자의 머리속에는 반동이 가득하다 그 반동을 쏘아 죽여라

황총국장은 무얼하는가 저자를 숙청하라

저자를 죽이라고 하였느니라

저놈은 반동이다. 저놈을 어서 쏴죽여라. 저놈을!

저놈을 고사총으로 쏴 죽이라고 하였느니라!


by MessageOnly | 2015/05/13 11:10 | ■ 거짓말이지만.. | 트랙백 | 덧글(2)
흔한 일본의 식사예법.jpg
< 흔한 일본의 식사예법.jpg >

....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휩쓸고 있는 짤방입니다. 

이것은 일본 만화 <맛의 달인> 6권에 나오는 에피소드로

한국어판에서는 '음식 예법'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이 제목이 

'흔한 일본의 식사예법.jpg'이라는 것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해당 에피소드의 일본어판 원제목은  

究極の作法

그대로 읽으면 '구극의 작법'이고

우리식으로 변환하여 표현하면

'궁극의 예법'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에피소드 제목부터가 '예법'을 강조한 것인데

그 제목에 비해 해당 에피소드 도입부터 주요전개까지는 젓가락 사용법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습니다. 

서양인의 방문취재를 도우면서

젓가락의 사용이 하나의 문화라는 것과

장인은 젓가락을 어떻게 만드는가하는 정도에 집중되어 있죠. 



실은 작가가 다 의도한 배치라고 할 수 있을것입니다. 



이걸 보면 황당한 느낌이 드는 것은

한국인이라면 매우 당연한 것이죠.


젓가락 끝 몇 cm 젖었네 하는 걸로 따지는 경우가 없으니까요. 


사실 그 차이점을 깨닫고 지로가 놀라는 것 자체가

황당하죠. 

왜 저런걸로 놀라고 그러는 것인가



근데 보시면 우미하라의 면박에도 불구하고

지로는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동석한 다른 사람들 중에서도 반론을 제기하는 경우가 없지요. 




우리가 보기에 매우 불친절한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느닷없이 예법도 모르냐며 주인공을 윽박지르는데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는지 잘 모르겠거든요. 

대충 '젓가락 끝 4cm, 젓가락 끝 1cm' 만 가지고

젓가락 끝을 얼마나 적셨는지를 가지고 예법 운운하나보다...라고 유추할 수 있을 정도거든요. 



다르게 생각해보면 작중에서 

젓가락 끝이 얼마나 적셔졌나 하는걸 따지는 것은

이 만화를 볼 독자층(=주로 일본인)에게는 

작가가 그것에 대한 별도의 설명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말그대로 흔하게 인식되고 있는 젓가락예법의 문제이기 때문에

저렇게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수 있었다고 봐야합니다. 



그럼 도대체 지로가 저렇게 쩔쩔매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

역시 이 장면이 핵심입니다. 

지로 = 4cm

노보다 = 1cm



일본 젓가락 예절 중에 이런게 있습니다. 

'箸先5分、長くて1寸'

1촌 = 3cm

 5분 = 1.5cm


젓가락 쓸때는 5분(1.5cm) 에서 1촌(3cm)까지만 젖게하라는 겁니다. 

근데 지로는 4cm죠?

1cm 오버한겁니다.

일본의 올바른 젓가락 사용 예법은 3cm까지인데

1cm 오버한 4cm였으니 

지로의 젓가락 사용은 그 예법에 어긋났다. 

이겁니다. 

이렇게 보면 단순한 문제죠. 


물론 한국인 입장에선 저게 이해가 안되는게 당연한 겁니다. 

저건 어디까지나'일본의 젓가락 예법'이니까요. 

한국의 젓가락 사용예절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아니니까 때문에

좀 황당해도 '그런가보다' 해야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죠. 


이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일본'만화에서 '일본' 식사 예법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누구보라고 그렸죠?

'일본'인들 보라고 그린겁니다. 

 작가가 '이 만화를 보는 독자(=일본인)들에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고 판단할 정도로

그렇게 그려낸 부분이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보다 해야하는거에요.



결국 '외국인'에게 매우 불친절한 에피소드인 겁니다. 

일본 '한정'의 식사 예법에 대한 지식 제공없이

작가와 독자층(=일본인)들만 이해하고 있는 걸 가지고

이야기를 구성했으니 제3국의 독자의 관점에서는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두드리는 소린가 싶은거죠. 






그리고 우미하라의 행동은 어쨌든 지나치죠.

밥잘먹고 저렇게 쏘아붙이고 나가면 분위기가 쌔하죠. 

그러면서 무슨 식사예절 운운하냐는 반응도 있는데

이 부분은 연재초기 우미하라의 행동패턴이 저랬다는 걸 이해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저 당시 우미하라와 지로는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상태인데

둘이 '우연'하게 동석하게 되었고

지로의 어설픈면(...)을 즉시 간파한 우미하라가

기습공격한것입니다. 

그래서 저런 결과가 나온거죠. 

<맛의달인> 초반부를 보는 관점에서는 그렇게 이해못할 연출은 아닌겁니다. 


우미하라의 호통을 아주 아주 좋게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젓가락에 대해 공부하러온 외국인을 데려다놓고

그 앞에서 젓가락의 외적요소에 치중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일본요리와 그 문화에 대해 설명하려면 좀더 근본적인 부분도 논해야하는데

너는 꼬라지가 그게 뭐냐!

 뭐 그런 일갈.
(어디까지나 아주 좋게 이야기했을때의 이야기)




이걸 비유해서 이야기하자면

외국사람이 방문해서 한복을 입어보고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옷감이 어떻고 디자인이 어떻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 해주는 사람이

정작 자신의 옷고름은 서양식 리본 매듯이 하고 있었다...

거기에 너나 잘해! 이것아! 

이렇게 호통?


< 한국인을 상대로 광역도발을 시전하는 지로.jpg >

'흔한 일본의 식사예법.jpg'을 본 반응 중에

'우리 처럼 쇠젓가락을 쓰면 될걸 ^^' 이런 덧글이 달린걸 볼 수 있었는데요. 

이 발언을 보면 그것은 해결법이 아닌 것을 알 수 있겠죠.


해당 에피소드, 짤방 앞 부분에서 나온 지로의 태도를 보면 

일본의 나무 젓가락의 우월감에 젖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일본의 요리, 젓가락 문화의 자부심에 도취되어 있는것이라고 봐야겠죠. 

그런 지로 본인이 
 캬! 일뽕에 취한다! 

정작 일본 젓가락 예법에는 소홀했던 것이고요.


< 인간감동우선사상 > 

사람의 마음, 마음가짐을 중시하는 미식사상을 강조하는 우미하라의 입장에선

재료나 기술과 같은 외적요소에 치중하고 있는 지로가 못마땅한 것이거든요.
(사실 이 양반이 츤데레라는건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이야기잖습;;)



...라는 것도 결국은 작가가 의도한 구도인 것이고

한동안 이런 구도가 유지되면서

작가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이런 식으로 전달하는 거였죠.


위 이미지에서 '완벽한 메뉴' 운운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한국어판에서 '완벽'으로 번역한 것이고

원래는 '구극의 메뉴'였습니다. 

일본어판에서는 究極이라고 쓰는 표현을 '완벽'으로 바꾼 것이었죠. 

앞서 해당 에피소드 제목을 '음식 예법'이라고 했다고 언급했습니다만

일본어판은 '구극의 작법'이었죠. 

일본어판대로 하면 

'구극의 메뉴'와 '구극의 작법'은 서로 상호작용하는 제목인데

한국어판에서 단순히 '음식예법'이라고 번역해버려서 그런 느낌이 살지 않은 것입니다. 

지로가 추구하고 있던 것은 '구극의 메뉴'였기에

그런 '구극의 메뉴'를 탐구한다면 '구극의 작법'도 갖추어야한다는

것이 작가의 의도한 메시지였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미하라의 뜬금 버럭질이 너무했다 싶었는지 

해당 에피소드는 애니화되면서

이야기 구성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 왼쪽에서 두 번째 캐릭터 = 엘레느, 프랑스인 >

만화판에서는 외국인이 등장하여 젓가락 문화탐방을 하는 전개였습니다. 

그런데 젓가락 예법이 어쩌구 하는 것은

결국 일본인 한정의 일인데

일본인이 아니면 알아듣지못할 기준을 가지고 

프랑스인이 동석한 자리에서 

그걸 나무라고 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일이긴하죠. 
(우미하라가 공격한 대상은 지로에 한정되긴 합니다만)


그래서인지 애니판에서는 엘레느라는 캐릭터는 아예 삭제되버리고

왼쪽에 나오는 소녀만 등장합니다. 
(외국 유학 중에 젓가락 쓰다가 놀림받은 트라우마로 귀국 후에도 젓가락 사용을 꺼린다는 설정)


엔딩 부분도 

반론의 여지없이 면박당해 

지로는 부들부들거리기만 할 뿐이었는데


나중에 자(cm를 재기위한)를 꺼내는 유우코에 대항해 

나이프와 포크를 꺼내드는식으로 

다소 유치하지만 그래도 웃음기있는 연출로 마무리를 합니다. 

원작에 비해 무겁지 않고 가볍게 처리한거죠. 
전혀 성장하지 않았어...;
by MessageOnly | 2015/05/02 18:27 | ■ 먹는게 남는 것 | 트랙백 | 덧글(23)
징비록 지도 고증이 제대롭니다!

다음화 예고편 나올때

조선지도를 풍신수길 앞에서 펼쳐보이는 씬이 있더군요. 

풍신수길이 무척 좋아하는 걸로 보아

이는 조선에서 전리품으로 얻은 지도를 바쳐올리고

조선의 지도를 자기 두 눈으로 보게된 풍신수길이 

이제 조선을 차지했다고 기뻐하는 연출로 보이는데

(...그럼 그 전에 나왔던 지도들은 대체 뭐였단....????)

(어차피 고증에 안 맞던 지도였으니 못 본 걸로????)


< 국보 제248호 >

거기 쓰인 지도가 '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之圖)' 입니다. 

이 지도는 선조의 숙부인 '명종'대(1545 ~ 1567)에 제작(1557 ~ 1558)된 지도로

임진왜란때 실존했던 지도이기에

드라마 <징비록>에 등장하는 것에는 아무 문제도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이 드라마 속에서 등장하는 조선의 지도는 

마땅히 이 '조선방역지도'로 해야함이 옳은 것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거기다 이 지도는

임진왜란 때 실제 왜군에 의해 반출되었던(!) 지도이기도 합니다. 

풍신수길에게 바쳐졌는가는 불분명하겠으나

왜군에 의해 반출된 것 만은 틀림 없는 것이

대마도주가 가지고 있던걸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서 자료로 쓰기 위해 

대마도에서 다시 구입해 다시 한반도로 되돌아오게 된 지도로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보관되고 있습니다. 


드라마 시작 19화만에 드디어 지도가 고증에 맞게 되었네요!






근데 보면

현대 지도 -> 

1700년대 후반 지도 ->

 1550년대 지도


이렇게 일본편에서 나오는 지도들은

쇠퇴(!)에 쇠퇴를 거듭하여 

결국 자기시대에 걸맞게 되었는데

< 대동여지전도, 1860년대 >

조선은 난데없이 대동여지전도를 꺼내 걸어놓았네요. 

도원수 김명원의 막사 한 켠에 걸린 지도가 살짝 지나가는데

윤곽선으로 보건대 대동여지전도로 보입니다. 



일본쪽 지도가 미래에서 시간을 거슬러가더니

이제는 조선쪽 지도가 미래에서 출발합니다. 

조선도 조선방역지도 쓰면 되는 걸;;; 도대체 왜;;;;


by MessageOnly | 2015/04/13 02:20 | ■ 다른게 또 뭐있나..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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