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죽음:Der Müde Tod, 1921> - 프리츠 랑

0. 기본정보

 - 독일어판 제목 : Der Müde Tod(피곤한 죽음), 영어판 제목 : Destiny, 한국어판 제목 : 운명
 - 제작년도 : 1921년
 - 상영시간 : 82분
 - 장르 : 판타지 (흑백, 무성)
 - 국가 : 독일
 - 제작사 : 데클라 바이오스코프 AG

 - 감독 : 프리츠 랑 Fritz Lang
 - 각본 : 프리츠 랑 Fritz Lang  테아 폰 하르보우 Thea von Harbou
 - 제작 : 에리히 포머 Erich Pommer
 - 촬영 : 프리츠 아르노 바그너 Fritz Amo Wagner  브루노 몬디 Bruno Mondi 에리히 니치만 Erich Nizschmann
             헤르만 잘프랑크 Hermann Saalfrank 브루노 팀 Bruno Timm
 - 미술 : 로베르트 헤를트Robert Herth 발터 로리히 Walter Rohrig 헤르만 바름Hermann Warm
 - 출연 : 릴 다고버 Lil Dagover(신부)
             발터 얀센 Walter janssen(신랑)
             베른하르트 괴츠케Bernhard Goetzke (죽음)
             루돌프 클라인 로게 Rudolf Klein-Rogge (수도승)
             한스 슈턴버그 Hans Sternberg (시장)
             에리히 파브스트 Erich Pabst (선생)
             막스 아달베르트 Max Adalbert (공증인)
             파울 빈슈펠트 Paul Biensfeldt(알리)
             에두아르트 폰 빈터슈파인 Eduard von Winterstein(칼리프)
             파울 레코프 Paul Rehkopf (퀴스터)
             헤르만 피차 Hermann Picha (슈나이더)
             게오르크 욘 Georg John (베틀러)


0. 캡쳐사진과 보는 영화 줄거리

제가 본 필름으로는 시작할 때 페어뱅크스 얘기가 나옵니다. (기본적으로 복원판인데다, 오래된 탓에 설명이 붙음.) 이 영화의 3번째 에피소드를 그대로 자신의 영화 <바그다드의 도둑,1924>에 그대로 사용했다는 내용입니다. 페어뱅크스는 이 영화의 판권을 구입했는데, 이를 상영하기 위한게 아니라 자신의 영화를 제작하기 위한 필요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마을에 문은 존재하지 않는 거대한 벽이 있습니다. 그 앞에는 노인 하나가 앉아있습니다. 이 노인이 이 영화의 주인공인 죽음(Tod)입니다. 포스터에 있는 인물이 수도승이 아니고 죽음이죠. 동네사람들은 이 거대한 벽 뒤에 무엇이 있을까 두려워하죠. 그리고 노인에게도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꺼려하죠. 
그러던 어느날 방긋방긋웃는 신혼부부가 이 마을에 신혼여행중에 들르게 됩니다. 술집을 겸한 여관에서 들어가 자리에 앉는데, 낯선 사람(죽음)이 들어와서 합석을 합니다. 마담이 둘이 신혼임을 간파하고 젊은 커플에게 합환주를 선사하는데, 둘이 이걸 마시다가 해골그림자와 모래가 아래로 다 떨어진 모래시계를 보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낯선 사람은 계속 말이 없고..신랑이 치우는 사이, 신부는 마담만나러 들어갔다가 고양이떼를 보고 좋아서 놀다가 다시 와보니 신랑이 없는겁니다. 그래서 홀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우리 신랑 어디 갔느냐고 물어보니, 아까 있던 낯선사람 따라갔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신부는 신랑을 찾아 헤매다가 밤이 되고...
신랑을 찾아헤매던 신부는 거대한 벽앞에 앉게 되었는데...놀라운 광경을 보게 됩니다. 죽은 자들의 영혼들이 벽으로 다가오더니 벽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죠. (이 부분에서 이중인화라는 당시로는 최고의 특수효과를 보여줍니다. 두 가지 화상을 겹치게 해서 하는 허상으로 표현한 것이죠) 혼란속에서 자기 신랑도 다가오는 것을 보고 반갑게 맞이하지만...손은 허공을 가를 뿐이죠. 
기절했던 신부는 지나가던 약사에게 발견되어 약국에서 쉬게 됩니다. 실의에 찬 신부는 약국안에서 펼쳐진 책을 보다가 여기서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글귀를 보고서 신부는 극약을 먹게 되고... (쓰러지는 장면은 없고 바로 장소 이동됩니다.) 
높은 계단을 올라가던 신부는 죽음을 만나게 됩니다. 죽음이 '넌 아직 올때가 아닌데 왜 왔니'라고 물으니 신부는 신랑을 살려달라고 애원합니다. (빛과 어둠이 적절하게 조화된 좋은 장면입니다.)

죽음은 조용히 신부를 데리고 촛불로 가득한 방으로 갑니다. (서양 전래동화(?)에 보면 사람의 수명을 촛불에 비유하는 일이 있죠. 각각의 촛불은 인간의 생명과 수명을 상징하고 그 촛불이 꺼지면 수명이 다한다는 것입니다. )
여기서도 이중인화을 이용한 특수효과가 동원됩니다. 죽음이 촛불을 살며시 끌어올리자 아기가 두 손에 안기게 되죠. (새 생명이 태어난 것..) 이렇게 분위기를 띄워놓고 죽음이 신부보고 자기 얘기를 꺼냅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너무 힘들다는 거죠. (제목자체가 피곤한 죽음...) 
신부는 촛불을 다시 켤 수 없느냐(내 신랑 살려내! ㅠㅠ)고 죽음에게 애원합니다. 앞서 본 글귀인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를 인용하면서요. 이런 신부의 도발에 넘어간 죽음은 '너님 지금 영원불멸인 나랑 다투자는 거냐'며, 승부를 시작합니다. 
 
단명할 운명인 세 사람의 삶을 의미하는 세 개의 짧은 촛불을 보여주며 만약 그녀가 그 중 단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신랑을 살려주겠다는 약속이지요. 

여기서 이야기가 3가지로 이어집니다. 페르시아 -> 베네치아 -> 중국 순으로 이어지는 시공을 초월한 대결인데요. 재밌고 흥미로운 연출입니다. 당시 관객들에게도 영화의 주제감보다 볼거리로서 좋은 역할을 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대영화에 익숙한 사람에게도 당시의 연출력과 다른 세계를 바라보는 유럽인의 시각을 엿볼 수 있어 재밌습니다.

첫 번 째 에피소드, 어느 신앙심 지극한 도시. 

신부는 칼리프의 여동생이 되어있습니다. 이슬람 성원안에서 멋진 회전춤사위가 펼쳐지는 가운데 가만히 앉아 구경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경전이 너무 어려우니까 대중들에게 영성수련법으로 개발된 신비주의 계열의 춤입니다. 회전을 하면서 극도의 엑스터시를 느낀다고 하죠. 우리나라로 치면 일종의 신내림?   ) 
춤추며 알라와 최후의 선지자 무함맏을 외치다가 한 사람이 쓰러져 잠깐 쉬는데.. 어떤 이방인이 공주에게 다가가 속닥거리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바로 이 이방인이 신부가 살려내야할 대상이죠, 3개의 에피소드에서 신부가 살려할 대상은 항상 연인입니다. 그러니까 신랑을 살려내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보통 이슬람세계에선 십자군전쟁의 기억 때문에 서양이교도를 보고 '프랑크 족'라고 하는 일이 많습니다. 여기서도 프랑크라고 불리웁니다. 이슬람성원안에 프랑크 놈이 들어왔다고 소리를 지르니까 동네 무슬림 남자들은 모두 칼을 빼들고 달려들고 금방 포위하는데, 이 때 공주(신부)가 기지를 발휘해, '성원을 이교도의 피로 더럽힐 수 없다'며 주변을 물리친 틈을 타 남자는 도망칩니다.

난리통을 겪은 후, 칼리프는 자기 여동생이 프랑크 놈하고 눈이 맞았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여동생을 다그칩니다. '네가 도망치도록 도와줬다며?' 여동생...뭐; 공주라고 해도 되겠죠..여동생은 '성원을 이교도의 피로 더럽힐 수 없어서 그랬다'고 핑계를 댑니다. 칼리프는 경비병들을 쫙 깔아서 세우고..여동생은 하녀를 시켜 연인에게 오늘밤 비밀통로로 자기의 궁전으로 와달라고 메시지를 전달하는데......쉽게 될리가 없죠 -_-;;  흔한 전개(..당시 영화가 그렇게 많지 않았으니 당시로선 흔한 전개가 아니었을 수도..-_;)인 하녀의 뒤를 쫓는 밀고자는 프랑크놈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날 밤, 남자는 비밀통로....라고 했는데 왠 외줄타고 오르기..-_-;;  그냥 담 넘어서 궁전으로 들어갑니다. =_=; 재회한 연인은 서로 부둥켜 안고 어쩔 줄 모르는데, 이 때 칼리프가 나타납니다. 물론 경비병들도 데리고 오죠. 
남자는 달아나지만, 결국 붙잡히게 됩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형벌을 받은 남자는 모래속에 머리만 나오게 파묻힙니다. 공주는 남자에게 달려가 보지만...이미 처형된 상태. 
지키고 서있는 사형집행인이 다름 아닌 죽음입니다. 그러니까 에피소드1은 죽음의 승리! (You Win!)

3개의 촛불 중 하나가 다 타버리고 더 태울 것이 없어 꺼져버리고 맙니다. 다음 에피소드는 베네치아.
여기서 신부는 베네치아의 어느 부유한 가정의 규수로 나옵니다. 본격적인 중세유럽로맨스 답게 발코니에서 사랑을 속삭이시네요. (유럽 정통 로맨스답게...설정자체도 쵸큼 불륜스러움...-ㅠ-;)
발코니 아래의 이 남자가 연인, 그러니까 이번 에피소드에서 살려내야할 대상이죠.
가정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등장한 정혼자...그러니까 이 사람이 연인을 죽이려 듭니다. ( 각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연인을 해치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힘이 막강하죠. ) 아예 대놓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보니..여자는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되죠. 정혼자를 죽이려고 합니다. 
연인과 정혼자에게 편지를 보내놓고 여인은 아예 상대를 먼저 공략한다는 상당히 적극적인 자세로 나옵니다. 칼에다 독을 묻히고 밤을 기다리죠. 1편에서 단순히 숨겨주려던 것과는 비교가 되죠. 
그리고는 무어인 하인에게 오늘밤 찾아오는 남자는 내 적이니 죽이라고 시킵니다. 살인교사..  후덜;;
하지만 정혼자도 만만치 않습니다. 부하들을 시켜 그녀의 전령을 죽이고 편지를 빼앗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위조해서 연인에게 보내죠. '오늘밤 기다릴게요'라니....연인은 기뻐 날뛰는데..여기에 정혼자의 책략이 나옵니다. 전령이 말하길, '그녀의 명예를 위해 아무소리 내지 마세요'랍니다. 밤에 연인이 찾아가도 그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게 하려는 함정이죠.
자기 애인이 온 줄도 모르는 여인은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자객흉내를 내며, 남자(불륜아이템 가면을 쓰고옴-_-;)를 공격합니다. (정혼자가 온 줄 알았겠죠) 그리고는 검투를 벌이며, 무어하인이 독검을 들고 있는 커텐쪽으로 유인해갑니다. 검술로는 해칠 수 없으니 무어하인이 숨어있다가 등 뒤에서 찌르는 것이죠. 1편과는 확연히 다른 적극적인 여인의 모습입니다. 확실히 1편보다 긴장감이 높고 흥미진진합니다. 
예상대로...애인은 독이 묻은 단검에 찔려 숨지게 됩니다. 뒤늦게 사실을 깨달은 여인을 울어보지만 소용없는 일이죠. 이 장면에서 무어하인은 1편처럼 죽음으로 변신합니다. 죽음이 이긴것이죠. 1편에선 첨부터 사형집행인으로 분장했지만, 2편에선 2중인화방식으로 변신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마지막 촛불이 남았지요. 다음 무대는 중국. 유럽인들이 당시 중국에 대해 가졌던 이미지에 대해 엿볼 수 있는 재밌는 부분입니다.

3번째 에피소드는 앞서 언급했듯이. 페어뱅크스가 판권사서 자기 영화랍시고 썼던 부분입니다. 1, 2편과는 확연히 다른 연출을 보여주고 무대가 중국답게 엑스트라도 엄청많이 나옵니다. (...)  정말 이 에피소드는 따로 봐도 손색이 없습니다. 동원된 배우도 많아 보이고 무대도 다양하고, 세트도 훌륭합니다. (다만, 중국이 좀 많이 왜곡되었다는거...)


극 구성보다 의상이라든가, 특수효과에 더 눈길이 가는 영상으로 당시 관객들이 많이 좋아했을 것 같습니다. 하늘을 나는 양탄자, 하늘을 나는 말, 군대가 쏟아져나오는 상자..선인장으로 변하는 마법사 등 볼거리가 대단합니다.  

제국의 마법사(....?)에게는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근데 얘네들이 하필 커플이네요. 그러니까 이 둘이 위험에서 벗어나야하는데...그 대상은 다름 아닌 천자(!) 영문판 자막에는 비범하게도 'son of Heaven'이라고 나옵니다. 天子 (...)
이 에피소드에서 재밌는 점은 무성영화에서 자막을 한 장면으로 표시하는 것이 아닌, 스타워즈 첫 시작처럼 자막을 아래에서 위로 올린다는 점입니다. 위 캡쳐사진에서 보듯이 천자가 마법사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편지가 두루마리이다보니 아래에서 위로 읽는 것을 표현한거죠. 영상을 보면 한자모양을 낸거 같긴합니다. 천자가 '내일 내생일이니까 쫌 많이 좋은 선물 좀 준비해와. 안 그럼 알지?' 이런 내용입니다.
             흐미..뜨거운거...스승은 편지 받고 골치아파 죽겠는데, 두 제자들은 서로의 입술을 탐하고 있군요. 근데 이 장면이 좀 이상한게... 감독이 의도했는지는 몰라도 키스하는 방법이 좀 이상합니다. 프랑스식(?)으로 하지 않고; 입술을 댔다가 고개를 다시 돌려서 다시 댔다가...다시 고개를 돌려서 다시 입술을 대는...독특한 방식인데요.. 아마 이것이 '대륙의 키스씬'이라고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의 키스...음. -_-; 
제국마법사 생김새가 꼭 부리부리박사같네요 (...) 이 마법사는 마법지팡이가 없으면 힘을 잃게됩니다. 좀 이상하게 생겼죠.
천자(..황제라고 하고싶지만...son of heaven의 압박;;)의 성절을 축하하기 위해 날으는 양탄자를 타고 궁궐로 향합니다. 
천자의 모습입니다. 일단 복색은 좀 잘 준비를 했는데...인물이 영..(...) 게다가 저 손가락좀 보라죠.. 손톱을 길게 길렀다는 걸까요?  좀 멍청해 보이고, 또 욕심도 많은 인물입니다. 사람도 막 발로 차고 정말 이상한 군주로 묘사해놓았습니다. 부하들도 좀 바보 같습니다. (뭐..실제로 그렇긴 했겠지만..-_-;) 중국씬을 좀 이상하게 만들어놓았죠.
황제의 궁사입니다. 얼굴을 보시면 알겠지만, 죽음(Tod)선생입니다. 이 분도 좀 벗으시니 근육이 사네요. 

셋트가 참 그럴듯합니다. 엑스트라도 되게 많고, 복장도 어느정도 맞춰놨습니다. 만주족복색이죠. 
제국마법사(;)가 공중에 한자좀 멋잇게 쓰면 그것이 마법입니다. 이것도 이중인화. 지금같으면 다 CG로 구현할 그런 특수효과죠. 이중인화방식이라고 해도 화면 중간에 저렇게 주문을 나타낸다는 아이디어는 참 훌륭합니다.
마법사 다리 밑으로 군대가 나오는 장면입니다.

군대가 쏟아져나오는 상자, 하늘을 나는 마법마를 선물로 주지만, 천자는 만족하지 못하고, 여제자를 탐냅니다. 하하.
남제자가 데리고 튀려고 하지만, 황군들이 에워싸니 잡힐 뿐이지요. (남자는 매 편마다 무능력하기 짝이 없음;)

결국 여제자는 궁궐깊숙히 갇히게 되고, 천자가 회유하려하나 거부할 따름이죠. 마법사스승이 찾아가서 설득하려고 하는데, 여제자가 화가 나서 마법지팡이를 꺾어버립니다. 이 여파로 마법사는 선인장으로 변해버리고..여제자는 마력을 얻게 됩니다. 스승처럼 허공에 글씨쓰면 사물을 변화시키는 것이죠. 앞에서 지키고 있던 경비병을 돼지로 변신시켜버리고 애인이 갇혀있는 새장같은 감옥채로 코끼리로 변신시킵니다. (감옥은 코끼리 등위의 멋진 가마로 변화) 코끼리를 타고 탈출하자 천자는 이 둘을 쫓기 시작합니다.
황제의 군대를 피해, 달아나던 연인들은 마법지팡이토막으로 이리저리 마술을 부러 숲에 불을 지르기도 하면서 도망갑니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자....천자는 궁수에게 마법마를 타고 가서 죽이든지 살리든지 찾아오라고 시킵니다. 
여제자는 불상으로 변신하는데, 지팡이 토막이 부족했는지...애인은 호랑이로 변신합니다.
여기다 대고 궁사(죽음선생)가 화살을 쏘니...남자는 죽을 수 밖에요..
불상에선 눈물이 흐르고... (이 연출도 참 좋죠)
촛불이 모두 꺼졌습니다. 죽음의 승리.
승부에 승복하지 못한 신부는 떼를 씁니다. 하지만 소용없죠. 상대는 죽음이니.

죽음이 마지막 기회를 줍니다. 

1시간내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대신 받아오라는 것이죠. 자기 생명을 양보해줄 사람을 찾아야합니다. 

화면은 처음 약국에서 막 극약을 삼키려던 그 장면으로 돌아갑니다. 요즘은 흔해빠진 장면 연출이지만 정말 훌륭한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신부는 죽었던게 아니고 그 순간에 죽음과 만났던 것이죠. 생각해보면, 죽음이 냉정한 인물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신부에게는 상당히 자애로운 면모를 보여준거죠. 인간에 대해 동정심을 가지고 있고, 앞서 말한 것 처럼 사람의 영혼을 거두는 일에 피곤해합니다. 

신부는 저승사자가 내준 마지막 숙제를 수행합니다. 기절했던 자기를 데리고 왔던 약사에게 생명을 양보해 달라고 애원하는데요. 이 인물은 노인입니다. 어차피 얼마 남지 않은 삶이니 부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노인은 단 하루도, 단 한 시간도, 한 호흡이라도 줄 수 없다고 완강히 거부합니다. 여기저기 생명을 구걸(;)하러 다니던 신부는 거지에게 가서 생명을 양보해달라고 합니다. (영화 초반에 적선해준 상대이기도 합니다.) 물론 거지도 완강히 거부합니다. 썩 꺼지라 이거죠.

그러던 신부는 병원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노인들의 대화를 듣게 됩니다. '에휴..이렇게 살아서 뭐햐..낼 아침에 그냥 조용히 숨졌으면 좋겠어..'라는 이야기죠. 
바로 이거야! 할머니 정말 잘됐어요! 양보해주세요~

 노인의 '에그..늙으면 그저 죽어야지'라는 것이 세계 3대 거짓말에 속한다는 것을 몰랐던 순진한 신부는 다시 물먹고 맙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생에 대한 애착에 대해 보여주고 싶었던 장면이겠죠.

실의에 빠져 문 밖으로 나온...신부...그러나 노인들이 도망가면서 실화로 집에 불이 붙기 시작합니다....
불이 붙은 집에서 노인들은 탈출하고, 마을사람들이 불을 끄러 달려옵니다. 
사람들도 구조하고, 물도 막 퍼나르지만..
불길은 점점 더 번져가고...이 와중에 마지막에 구조된 아줌마는 화재영화에서 최고 히트하는 대사를 내뱉습니다.

"내 아기!"

그렇습니다. 불난 집에는 항상 아기가 남아있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장면입니다. (..원칙을 세운 장면일지도?)

우리의 신부는 커다란 눈을 치켜뜨고 무언가 결심합니다.

'그래..아직 끝나지 않은 다른 이의 생명....'   아가의 생명이죠...후후후

눈에 뵈는게 없는 신부는 불길을 무사히 뚫고, 아가를 Get!!

그 순간 등장한...무표정하지만 피곤에 찌든 얼굴로 팔을 벌리는 저승사자..

아기를 넘겨주면 신랑은 돌아오는 것이죠.
하지만 신부는 뻗었던 손길을 다시 거둡니다. 

(* 이 영화를 소개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이미지 입니다.)



그리고 창문을 통해 아기를 커텐에 싸서 내려보냅니다.
아기는 엄마품으로...
(이것도 화재영화의 전형적인 장면이죠..-_-;;)

신부는 다시 죽음과 직접 대면합니다. 
(화재현장에서 저승사자와 다시 만났으니 이제 곧 숨질 수 밖에요..살려고 했으면 어떻게든 밖으로 나갔어야...)

신부는 당신에게 그 댓가를 치루지 못했으니..난 이제 아무것도 필요가 없다. 나도 데려가 달라고 말합니다. 

저승사자는 그녀에게 끝까지 친절합니다. 연인에게 데려가 주겠다고 말하죠. 

누워있는 신랑을 본 신부는 단숨에 끌어안습니다. 그리고는 숨이 끊어집니다. 
(현실적으로 본다면 화재현장에서 죽은것이겠지요.)
저승사자는 신부와 신랑을 일깨워냅니다. 화면하단에는 누워있는 신랑과 그위에 쓰러져 있는 신부가 보입니다. 
(이 장면도 이중인화를 통한 특수효과팀이 활약한 장면이죠. )
저승사자의 인도로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됩니다. 

해피엔딩이군요. 음. ㅠㅠ

0. 감상 

<피곤한죽음>은 시공을 초월하는 각 에피소드 속에서 사랑, 죽음, 숙명과 같은 주제를 일깨웁니다. 극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자기희생'코드도 보입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한 것'이라는 글귀는 서로가 다시 만나게 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 진가를 나타내지요. 결국 죽음이 그들 한 쌍을 맺어주지 않습니까.

영화사 측면에서 보면 이 영화는 독일 표현주의 영화로 분류됩니다. 흑백무성영화의 특성상 빛과 어둠의 조화가 극적인 효과를 갖고 있지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초현실주의 영화에 가깝기도 합니다. 이중인화기법으로 영혼의 이미지를 꾸며내어, 사후세계등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죠. 

죽음앞의 인간의 모습을 주제로 생각하면 잉그리드 베르히만 감독의 <제7의 봉인>을 연상하기 쉽습니다. 
<피곤한 죽음>의 저승사자와 신부, 그리고 <제7의 봉인>의 사신과 기사의 구도는 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유성영화라 그런지 <제7의봉인>쪽의 사신쪽은 위트도 있고 좀더 강렬한(오히려 생명력 넘치는) 인상을 줍니다. 캐릭터성만 놓고 보면 단연 <제7의 봉인>쪽이 압도적이죠. 더 잘생기기도 했고....그러나 어떤 푸근함의 정서를 놓고보면, <피곤한 죽음>의 저승사자가 더 자애롭게 느껴집니다. 신부와 승부하지만, 승리했다고 해서 그 피곤에 찌든 굳은 무표정한 얼굴이 바뀌진 않습니다. 그 한결같은 표정에서 비열함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제7의봉인>쪽은 체스전략을 훔쳐듣는 교활한 면도 있죠. 그래도 양자 모두 조용히 자기가 할 일 (생명을 거두는 일)에 충실하고..마지막 결말에서 인간에게 약간의 자비를 베풀어줍니다. 차가우면서도 인간적인 모습이죠.

기사나 신부 역시 죽음 앞에서 생명을 지키기위해 애쓰는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도망치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맞서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자기희생 모티브는 서로 너무 닮아있죠. 자신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도 있었겟지만 자신의 생명을 댓가로 하여 다른 이의 생명을 보호하니까요. 기사는 좀 쿨한 모습으로 멋지게 마무리하고, 신부는 뭉클하게 결말을 맞이하는 것이 조금 다르죠.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피곤한 죽음>을 보고나서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되었다고 합니다. 1921년....당시를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작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제를 벗어나서 각 에피소드에서 나타난 환상적인 영상을 보면 당시 관객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줬을 것 같습니다. 세가지 색다른 무대로 여러이야기를 담으면서 관객들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고 있죠. 이런 연출기법은 현재도 쓰이고 있고, 앞으로도 쓰이겠죠. 오락으로서도 좋은 수단이 되면서, 철학적 주제를 담은 좋은 영화입니다. 
by MessageOnly | 2008/12/18 14:13 | ■ 주말의 명화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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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12/18 15:0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08/12/18 15:16
내용이 길어서 글 가리는 옵션 넣었다가 그냥 다시 풀고 본문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붙었던 것 같습니다. ^^;
Commented by Allenait at 2008/12/19 00:00
뭐랄까 영화 자체를 잘 보질 않습니다만 이건 어째 끌리는군요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08/12/19 21:39
예전엔 이 영화는 보기가 좀 어려웠죠. 제가 본 것도 운이 좋았고 다시 볼 수 있을까 했습니다만...요즘엔 유튜브덕분에 귀한 영상을 쉽게 볼 수 있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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