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속 마을
어느 산간마을, 산간마을이라고 해도 오지 수준은 아니고, 길도 평탄하게 나 있어서 차량만 있으면 쉽게 접근이 가능한 위치에 있다. 다만, 길이 좁고 구불구불하며 두어 시간을 내려가야 하루 버스 2번 다니는 마을담배가게에 갈 수 있고, 이 담배가게는 근방에서 유일하게 유선전화가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마을이라고 불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집이 드문드문있고,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크게 소리쳐불러도 들릴까말까한 정도이다. 

이 마을 민박집(그냥 빈 집을 개조한)에 인터넷 자살까페를 통해 만난 사람들이 모였다. 이 까페의 암규는 서로의 신원을 밝히지 않는 것이었다. 자살까페이니 모임장이랄 것도 없고, 채팅과 게시물을 통해 모인 사람들이다. 구성원은 20대초반의 여자 넷, 30대초반의 남자 하나..남녀성비불균형의 시대에 자살분야에서 여초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 민박집은 나이 많은 할머니와 그 아들이 운영하고 있는데, 아들은 읍내에서 일하고 가끔 집에 들어온다고 한다. 인생의 마지막의 여장을 푼 일행은 자살하기 전, 며칠간 숙식을 같이하고 떠나기로 계획한대로 5일째되는 날에 세상을 떠나기로 한다. 인생을 무사히 마감하는 것이 이런 식이라니...

다음날 아침, 혜정씨(가명)가 보이지 않았다. 서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별로 챙길 이유도 없었지만, 모두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혜정씨(가명)가 먼저 몰래 자살한 것이라면 신뢰를 어긴 단독행동이기 때문에 불쾌할 수 도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유서를 모두 써놓은 상태였고, 어차피 자살할 몸...혼자 자살한다고 해도 비난하기도 좀 그랬다. 오전중에는 '설마?'하는 생각이었으나 오후들어서부터는 모두 다시금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굳이 찾아나설 이유는 없었고, 더우기 다들 처음 와보는 곳이라 길을 잃기 십상이니 찾아나갈 방법도 없었다. 그리고 시신을 발견한다는 것도 왠지 꺼림칙했다. 외로운 죽음을 맞이했을 혜정씨(가명)를 가엾게 여기고 명복을 비는 이도 있었다. 물론 자살이 두려워 다시 집에 돌아간 것일지도 몰랐다.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저녁에 일나갔다 들어올 할머니가 이상하게 생각할텐데 이걸 어떻게 넘겨야할 지 고민이 되었다. 눈 어두운 할머니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좋을텐데..

해질 무렵 할머니로 들은 바 있는 그 읍내에서 일한다는 아들이 들어왔다. 이 남자는 건달같은 인상이었다. 마당에 나와있던 이들을 본 이 남자는 한번 쓱보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진짜 집에 올 줄은 몰랐기에, 일행은 인생의 마지막 평온을 방해받는 것 같아 조금 불쾌해졌다.

한밤중에 문득 잠에서 깬 미네르바(가명)는 이상함을 느꼈는데, 옆에서 자고 있던 두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공동 자살명상시간 중 피곤해서 먼저 자리에 누웠던 미네르바(가명)는 잠결에 명상이 끝나고 다들 자리에 눕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어두컴컴 속에서 빈 자리를 느끼게 되니 어떻게 된 것일까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했지만 여전히 몽롱한 가운데 혼자 내버려두고 다들 먼저 가버린 것일까하는 생각도 들며 다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미네르바(가명)가 눈을 떴을 때 모두 곤히 자고 있었다. 먼저 일어난 미네르바(가명)는 세수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아침에 일나가려는 할머니를 보고 아들얘기를 물어보았는데, 해뜨기전에 나갔다고 했다. 세수를 마치고 오늘 아침준비당번인 박군(가명)를 깨우러 갔다. 그런데 아무리 건드려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깰까봐 살살 건드렸었지만, 조금 큰 소리를 내면서 흔들어보았다. 그 바람에 옆에서 자고 있던 쟈스민씨(가명)이 먼저 깼다. 그런데 박군(가명)은 아무리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살짝 입을 벌린채 눈을 감고 있는 박군(가명)은 흔드는대로 움직일 뿐 결코 눈을 뜨려하지 않았다. 

아침은 모두 걸렀다. 도무지 밥먹을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큰일이다. 남자 시체가 방안에 있으니 말이다. 자살모임에서 남보다 먼저 죽는 것은 정말 크나큰 민폐가 될 수 있음을 알게되었다. 알아봤자 별 도움도 안 될 거리지만...

이슬씨(가명)의 제의로 계획에도 없는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시신을 만지는 것은 좀 꺼려지는 일이었지만, 앞으로 사흘 수에 끊을 목숨 거리낄게 무에 있으랴. 무책임한 남자가 원망스러웠지만, 다행히 체중이 가벼워서 여자 셋이서 들고 나갈 수 가 있었다. 이불에 싸서 끌고 나간 것이긴 하지만 누가 볼까 두려워 집 뒤쪽까지만 가기로 했다. 창고에서 꺼낸 삽으로 땅을 골랐다. 흙이 부드러워 잘 파지기는 했지만, 삽질경험이 없어서 깊게 팔 수 는 없었고 박군(가명)을 묻는다기보다는 옆에서 떠낸 흙을 시신위로 발랐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그나마 얼굴은 제대로 덮혀있었지만, 솟아오른 발은 발가락이 드러날 지경이었다. 어쨌든 매장을 마친 이들은 잠깐의 추도식을 가졌다. 이슬씨(가명)은 야생 들꽃을 뜯어 얹어놓기도 했다.

아침을 거르고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 일을 겪었기에 다들 배가 고파 늦은 점심을 먹게 되었다. 밥맛이 느껴진다는 것이 우스워졌다. 다 먹고 나니 할머니가 눈치를 채게 될 것인가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혜정씨(가명)는 숲 속 어딘가에서 목을 멨을것 같은데...발견된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서 묻어주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낮에 고생한 것을 생각하니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박군(가명)은 어떻게 죽게된 것일까? 아마도 독극물을 쓴 것일 것이다. 그렇게 깨끗하게 죽을 수 있다니...가방에 넣어둔 독약이 믿음직스러워졌다. 까페를 통해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인데,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다.

일행 중 두 명이 이미 없어졌기 때문에 동시자살의 의미가 조금 흩어져서 남은 세 명은 한날한시에 같이 죽기로 다짐했다. 한바탕 눈물을 쏟은 뒤 해 떨어지기 전에 잠에 들었다. 너무 피곤하고 대충 다 치워두었기에 할머니가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 다들 결론을 내렸고 잠을 청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저녁 늦게 할머니가 돌아왔다. 할머니는 방문을 열어보고 모두가 잠든 것을 보고 다시 방문을 닫았다. 할머니는 저녁을 간단히 먹고 불빛에 의지해 무뎌진 낫과 호미를 갈았다. 이런건 아들이 해놓고 다녀야하는 것일텐데, 여간 불효자가 아닌 모양이다. 농기구를 정리한 할머니는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고, 곧이어 불이 꺼졌다. 

다음날 아침, 또 먼저 일어난 미네르바(가명)는 세수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이제 아침준비할 이유는 없을 것 같았다. 댓돌에 할머니 신발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이미 일을 나간 모양이었다. 왠지 박군(가명)의 무덤이 보고 싶어져서 집 뒤켠으로 다가갔다. 불과 몇 미터에 시신을 두고도 잠을 잘 잤다는 생각이 들어 우습기도 했다. 조금 외진 곳이어서 망정이지 부자연스럽게 솟아오른 땅은 누가보기에도 이상했다. 이곳은 그런 것을 볼 사람이 없는 곳이니 다행이지만.. 이슬씨(가명)가 얹어놓은 하얀 들꽃은 이미 시들어있었다. 부근에 나 있는 들꽃을 꺾어 얹어놓으려는 순간 미네르바(가명)는 안방의 뒷문이 살짝 열려있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는 나갔겠거니 하고 생각했던터라 미네르바(가명)은 순간 얼어붙었다. 뒷걸음질치다 봉분(정확히는 시신)에 걸려넘어진 그녀는 비명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떨리는 가슴을 붙잡고 일행이 있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다들 아직 그대로 누워 있었는데, 방안으로 들어가기전에 어떤 불안감이 들었다. 슬그머니 다시 나온 그녀는 길을 통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누군가 쫓아오는 것 같아 겁이나서 돌아볼 수 도 없었다. 한참을 달려내려온 그녀는 담배가게에서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신고를 받고 경찰이 도착했다. 뒤이어 앰뷸런스도 도착했는데, 입구에서부터 다시 한참을 올라가야했기 때문에 한 낮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민박집에 도착해보니 집에 남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찰은 집뒤에 있다는 시신을 수습하려고 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자살까페모임이라는 한심한 짓거리를 벌인 것을 알게되어서 신고자가 어이없게 보였다. 어쨌든 사람이 죽었던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은데, 매장해놓은 꼴을 보니 더욱 한심하게 느껴졌다. 다른 사망자도 있는 것으로 이야기했는데, 어디서 죽은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기에는 인력이 너무 부족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어디로 가버렸다는 건지 그리고 아무리봐도 이 여자는 아까부터 횡설수설하는 거 같았다. 

땅거미가 질 무렵, 전경지원이 도착했는데, 버스가 올라올 수 없어서 모두 걸어올라와서 여간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 집 주인이라는 할머니는 어디가서 안 오는지 통 소식을 알 수 없었다. 담배가게 주인의 이야길 들어봐도 버스타고 나갔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전경이 투입되고 나서 주변 빈 집에서 여자 시신 두 구가 발견되었다. 서로 모르는 사이여서 신원을 확인할 수 도 없었고, 개인물품을 통해 신원을 확인할 수도 없었다. 신고자의 말대로라면 하나가 더 나와야하는데, 근방을 밤새 뒤져도 발견되지 않았다. 다음날 다시 수색에 나섰으나 시신을 발견되지 않았고, 주인할머니도 돌아오지 않았다. 

감식결과로는 사망자 3인은 독극물에 의해 사망한 것이 맞았고, 신고자가 제출한 독약과 성분이 같았다. 이틀간의 전경수색에 의해 여자 시신 한 구가 추가로 발견되었는데, 시신의 훼손정도로 볼 때 도저히 며칠전의 시신으로는 볼 수 없는 상태였다. 최소 사망한지 1개월은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수사진행중 과거 이집에서 자살사건이 있었음을 알게되었는데, 남녀동반자살 건이 하나 있었다. 당시 집에 자살장소를 남겨놓은 유서가 단서가 되어 발견된 것이었는데, 그래도 3년전의 일이고, 상당히 아귀가 깔끔하게 맞아떨어져서 자살로 결론짓고 금방 마무리되었었다. 


실은 이 민박집은 자살까페를 통해 살해대상을 끌어모으는 곳이었다. 물론 자살하러 온 사람이 아니면, 뒤끝이 좋지 않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는 것이었다. 경찰이 찾아온 적은 과거에 딱 한 번있었다. 처음에 자살까페를 운영할 때 신변정리를 깨끗하게 하지 않고 온 커플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말썽은 없었다. 

나름의 자부심도 있었다. 어차피 죽으러온 것들이니 자기 손으로 끊어준다고해서 크게 나쁠 것 같지도 않았다. 중간에 들키더라도 뭐? 신고할 이유가 있을까? 어차피 죽으러 온 목숨. 남이 끊어준다는데 자살의 두려움을 타인의 손에 맡기기 나름 괜찮은 것 같지 않은가?  그러나 살해당한다는 공포가 더욱 클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살하고자 했던 자신들의 계획이 타인에게 드러나고 그로인해 조종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절망감에 빠뜨릴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순순히 살해되는가 아닌가는 직접 죽음을 대면하는 순간에 드러날 것이다. 공포가 컸든, 절망감이 컸든지간에 한 사람은 죽음앞에서 변심하게 되었으니 이것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죽음에 대한 결심을 그렇게 검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앞에서 도망치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by MessageOnly | 2010/06/17 17:11 | ■ 다른게 또 뭐있나..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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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Allenait at 2010/06/17 17:55
와 이거 소설로 써도 될것 같은데요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0/06/17 18:13
저게 끝이 아니고 뒷얘기도 있습니다. 근데 꿈답게(;) 전개가 허무맹랑해서 중간에 끊었지요.

경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범인을 잡기 위해 연쇄살인경력이 있는 수형인에게서 정보를 얻고자합니다. 이 수형인은 사형집행이 이루어지지 않는 가호(?)를 받아 교도소에서 수형인을 살해하고, 꼬챙이로 교도관까지 살해합니다. 독방에 갇힌 그를 만나기위해 경관 4명이 들어갔는데, 또다시 꼬챙이로 경관을 살해하는데 총격이 일어나면서 폭발이 일어나 독방이 무너집니다. 무장경관이 들어갔을 때는 벽이 무너져서 수형인이 도주한 것으로 보이고, 경관들이 모두 상해를 입어 쓰러져있지요. 무장경관들은 구멍난 벽으로 밖으로 나가 뒤를 쫓고, 부상당한 경관들을 응급차에 실어 보내는데, 응급차에 있던경관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이 자가 연쇄살인마였지요. 경관으로 위장해서 밖으로 나오는데 성공....읭? 이건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 떠오르는 대목이죠;;;; 난데없는 폭발씬이 있고 그 과정이 너무 이상해서..-ㅠ-;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10/06/18 01:48
저도 마지막 태그 보기 전에는 정말 소설인줄 알았습니다. ㄷㄷ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0/06/18 01:59
꿈속에선 꽤나 무서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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