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로 보는 6.25 (2/2)
우표로 보는 6.25 (1/2)에서 이어집니다.

주요사진출처 (우정사업본부, LIFE, 구글링;, 직접촬영)

<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서울해방기념, 1950.6.28 >

도안을 보면 서울 '중앙청'에  붉은 깃발을 단 것입니다. 

남침 3일만에 서울이 점령당했습니다.

서울에서 38도선과 휴전선이 가까운 건 우리에겐 좀 불리한 조건입니다. 
장비와 병력이 앞섰다고는 하지만, 3일만에 도성을 내주고 몽진해야했으니 (...?)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서울해방' 입니다.
이것도 '국토통일'기념우표랑 크게 다를게 없긴 합니다만,
차이점이라면 '서울해방'은 어쨌든 서울을 일시적으로나마 점령했던 사실에 입각하고 있고,
'국토통일'은 '통일이 눈앞에'보이는 정도에서 좀 이른 시점에 냈다는 것이죠.
뭐, 둘다 헛물켠것은 같습니다. 

< 9.28 수도탈환 15주년 기념우표, 1965 >

"1950년 9월 28일은 악랄한 공산군의 불법남침으로 인하여 빼앗겼던 수도 서울을 탈환하여
90일간의 공산세력 하에서 신음하던 서울시민을 구출하고, 
용감무쌍한 우리의 해병이 중앙청 하늘높이 태극기를 올렸던 9.28 수도탈환 15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표 발간시 나오는 안내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해병대사령부에서는 매년 9월28일이 되면 이를 기념하는 태극기 게양식을 진행합니다.
최근까지만 해도 당시에 태극기를 직접 게양했던
당사자들이 참석하였는데, 그 노병분들은 이제 세상을 떴지요.

이 사진이 그대로 도안이 된 것입니다.

1950년 당시 故 박정모대령(당시 소위)가 이끈
대한민국 해병대 제2대대 6중대 1소대는 중앙청을 점령하고 
스탈린과 김일성의 초상화를 박살내고, 
중앙청 꼭대기에 휘날리던 인공기를 내려 불태우고
태극기를 게양하였습니다. 

중앙청 꼭대기라고 하면 맨 처음에 나온 북한의 '서울해방'기념우표의 도안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돔정상부에 깃발을 달았던 것인데...
사진상에서는  중앙청사 앞 게양대에서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습니다.

이게 왜 이렇게 된 것이냐하면..
이 사진이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을 '재현'한 것으로 
당시가 아니라1957년에 촬영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왕 재현하는 김에 돔꼭대기에 올리는 것도 좋았을텐데..
안전문제도 있고, 이 쪽이 훨씬 그림이 좋으니까요.


< 이오지마 섬에 성조기를 꽂는 미해병대 >

이 사진과 비슷하게 생각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는데,
이 사진과는 다릅니다.

어떻게 다르냐하면, 
중앙청 앞에서 태극기를 게양하는 사진은 촬영당시부터 '재현'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9.28 중앙청 태극기 게양 재현'이 
'1950.9.28 중앙청 태극기 게양 장면'으로 둔갑하게 된 것이죠.
의도적으로 바꾼게 아니고
 뭘 모르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펌질+조작질을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 뿐입니다.
이점은 오해가 없어야겠습니다.

< 중국인민지원군 출국작전 2주년 기념, 1952 >

중국도 전쟁기에 우표를 발행했습니다. 
1950년 10월 13일 고심하던 중국은 참전을 결정했습니다.

중국이 내세우는 참전 명분은 '미국에 대항하여 북한을 돕는' 즉, 항미원조(抗美援朝)였습니다. 
중국에서는 항미원조전쟁 혹은 조선전쟁이라고 부르지요.

중공군이 들어오면서 부터 전황이 완전히 바뀌어버렸지요.
중국도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엄청난 수의 인민지원군이 전사했고, 마오쩌둥의 아들마저도 폭격으로 전사했지요.
말년의 마오쩌둥을 생각한다면...아들이 전사해버린 것은
중국인민에게 다행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마오왕자가 항미원조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개선했다고 치면
아버지의 후광과 참전용사 보정을 받아
마오왕조를 이어나갔을지도 모르니까요.
지금 마오손자가 젊은 나이에 승승장구하며 승진하는 걸 보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라 생각합니다.

< 터키 한국전쟁 참전 기념 우표, 1952 >

앞서 나온 북한과 중국의 우표에 비해 질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뛰르끼에의 우표도안은 사진을 도안에 그대로 반영하는 형태로 사실감이 넘칩니다.
주로 인물에 촛점을 맞추고 있지만, 인물 뒷편으로 우리 산하가 보이지요.

경기도 금량장리 전투 이후 

이 사진은 포병대원들이 깃발을 세우는 장면인데, 
깃대가 '대나무'라는 것이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터키의 우표도안은 사진을 그대로 담은 것이기 때문에,
사진 속의 인물에 대한 추적이 가능합니다....만;
다 찾을만한 시간이 없어서;; =_=;

이 터키의 기념우표는 6.25관련 우표 중 가장 독특한 편성이 있습니다. 
왼쪽에서 3번째의 모습처럼 '대민작전'을 수행하는 터키군인을 도안에 넣은 것인데요.
전쟁관련 우표중에 이런 이미지를 담은 도안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뭅니다.

전쟁에 관련한 우표는 전투에서의 승리나 군인들의 노고를 찬양하는 것이 대부분인데요.
저렇게 어린이를 보살피는 군인의 모습이 나오는 것은 매우매우 보기 어렵습니다.

군인아저씨의 팔에 걸터앉아 아저씨가 보여주는 책을 같이 보는 장면
터키군인의 표정도 매우 즐거워보입니다.
사진자체도 매우 멋질 것 같네요.

^^
사진속 인물은 '최민자'소녀와 프레트아저씨(당시 대위)입니다.

* 우표에 도안한 한국 여성 인물 중 확인된 모델로는 최초 (1952)


이것은 당연히 연출사진이 아닙니다.

실제로 터키군인들은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보살폈습니다.

그 중 유명한 것이 '아일라'로 터키 여단의 마스코트였습니다.
아일라는 '달'이라는 뜻의 예쁜 이름이죠.

60주년 특집으로 이 아일라와 터키참전용사들이 상봉하는 다큐가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다큐보단 이런 실화를 바탕으로 TV드라마를 만드는건 어떨까 싶습니다.
참전국에 대한 감사를 되새기고 우호증진에도 보탬이 될 것입니다.

아일라 말고도 많은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보살피고,
'앙카라 학교'를 세워 이들을 가르치는 봉사도 했습니다.

터키군인들이 전공을 세운 것보다 더욱 자랑스러워 하는 일이 
전쟁고아구호활동이라고 하지요.
정말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__)

< 한미상호방위협정체결기념, 4287 >

한미 양국원수(이승만, 아이젠하워)이 악수하는 뒷편으로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부끼고 있습니다.
아래에 깔린 철조망이 '방위협정'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한미상호방위협정은 1953년 10월 1일에 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1954년에 발행된 것일까요?

더이상 설명이 必要韓紙?

< SOLDADOS DE COLOMBIA EN COREA, 1955 >

남아메리카 유일의 참전국인 콜롬비아에서 발행한 우표입니다.
'한국에서의 콜롬비아군'이라는 타이틀인데 반해 콜롬비아군인의 모습은 보이지않고
우리의 산하와 다리주변의 사람들 모습이 도안되어 있습니다.
콜롬비아 군인들이 다리를 복구하는 것을 도왔다고 합니다.

콜롬이아 국기와 문장, 그리고 태극기가 걸려있는데요.
이 우표는 태극기가 등장하는 매우 희귀한 외국우표입니다.

< UN묘지설치기념, 4293(1960.11.1)>

각 종교표식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네요.
 도안 속의 비율과 비슷할 것입니다.

UN묘지는 전국적으로 가매장되어 있던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유해를 한 곳으로 모은 곳입니다.
36991명의 전사자 중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2300명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이중 영국이 885명, 터키 462명으로 비중이 큽니다.
(오스트레일리아 281명, 캐나다 378명, 프랑스 44명, 네덜란드 117명, 뉴질랜드 34명
터키 462명, 영국885명, 노르웨이 1명, 남아공 11명, 미국 36명 등 총 11개국 2300명)

묘지조성자체는 1951년에 이루어졌는데, 1960년에 우표가 발행된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1955년 대한민국 국회에서 유엔묘지를 유엔에 영구기증하기로 결의하였고,
이 결의를 전달받은 유엔이 영구적 관리를 위해 결의문을 채택하고
 이에 따라 1959년 11월에 유엔과 대한민국간에 
'유엔기념묘지 설치 및 관리 유지를 위한 대한민국와 유엔간의 협정'이 
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점에 맞추어서 발행한 것이지요.

 < 중국인민지원군 개선귀국기념, 1958 >

1958년 11월 20일 발행.

중국측에서 공개를 하지 않으니 추측값만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개혁개방이전에는 단순히 '중국군의 피해가 엄청날 것'이라는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연구내용에 따라 최대 100만명이상의 중국인민지원군이 6.25전쟁에 참전하였고,
그 중 사망자만 18만여명에 이를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부상자는 제외한 값이니 중국군의 피해가 엄청난 것은 사실입니다.

중국답지 않게 '비둘기'를 도안속에 넣기도 했네요.
뭐..어쨌든 이런 엄청난 피해속에서 귀향한 군인들은 정말 기뻤겠지요.
'승전'기념이 아닌 '귀향'기념이라는 것이 주목할 만 합니다.


< UN군 6.25동란 참전 제15주년 기념우표, 1965>

UN군 참전 제XX주년 기념우표의 특징은 참전국의 국기를 도안에 넣는다는 것입니다.
1951~2년간에 발행한 기념우표도 그랬지만, 이런 도안은 지속됩니다.

유엔을 배경으로 해서 참전국의 국기가 도안되어 있습니다. 
이 우표의 특징이라면 '맥아더'장군의 얼굴이 도안속에 있다는 것이죠.
아직 인쇄기술이 조악해서 국기가 좀 엉성합니다.
어쨌든 참전국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각 국의 국기를 모두 담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이제 바르게 넣었고요.
캐나다도 1964년에 변경된 현행 국기로 바뀌어 있습니다.

이전에는 '한국동란'이라고 하던 것이 이제는 '6.25동란'으로 바뀌었습니다.
6.25동란은 꽤 오래도록 유지되는 명칭입니다.

< 6.25 상기 25돌, 1975 >

15주년 기념우표와 이 25돌 기념우표를 비교해보면,
유엔기-태극기-성조기 라인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맨 왼쪽의 우표 아래쪽을 보시면 6.25가 숫자로 숨겨져있습니다.
(..그냥 눈에 보이긴 하지만;)

15주년 다음에 '25돌'이라는 고유의 표현을 사용합니다.
'제X주년'이라는게 한자어이죠.

6.25라고만 되어 있고, 뒤에 '동란'이라는 말은 붙어 있지않습니다.
글자배치문제로 빼버린 것으로 보이죠.

이게 마지막입니다.

참전국의 국기를 모두 우표에 담는 감사표시는 이것이 끝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도안된 참전국국기는 병력을 파견한 국가만 있습니다.
예전까지는 포함했던 의료지원국은 빠진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슬슬 덜어나가다가...

< UN군 6.25동란 참전 30주년 기념, 1980 >

총기에 유엔기가 달려있습니다.

무리한다면 1장안에도 각국의 국기를 다 도안해서 넣을 순 있지요.
그렇지만 UN기와 참전을 의미하는 총기를 두는 것으로 도안했네요.
6.25동란이라는 명칭이 다시 등장합니다.

이제 간편하게 1장으로 마무리합니다. 

이제 한국에서도 Forgatten War의 길을 밟기 시작하는 것일까요?

실제로 이 우표 이후로 한동안 6.25관련 우표가 나오지 않습니다.

진짜임. ㅇㅇ

< Veterans Korea, 1985 >

미국에서 발행한 우표입니다.

이 도안 속의 모델은 장진호전투에서 퇴각중인 미해병대원들입니다. 

종군 사진기자 데이비스 더글라스 던컨이 찍었죠.

사진하고 비교해보시면 아시겠지만,

본래 이 사진은' 시신'을 바라보면서 퇴각하는 절박함이 담겨있습니다. 

중공군 매복으로 사망한 전우들의 시신을 바라보면서도 걷기를 멈추지 않고 퇴각 중.

맨 앞에 있는 병사의 시선은 그런 것이죠.
자신도 곧 저런 신세가 될 수 있다는 걸 보고 있는 셈. 
(저 시신들은 나중에 수습됩니다.)

하지만 우표에서는 시신을 아예 생략해놓았습니다. 

우표에서만큼은 그런 끔찍함까지는 담지 않고자 한 '어른의 사정'  때문이겠죠.

 한국전쟁만을 기념해서 나온 우표는 아니었고,
1차 세계대전도 같이 나왔습니다.

< The Korean War, 1995 >

그 해 겨울은 매우 추웠다고 하지요.

방한복을 파고드는 매서운 추위에 많은 장병들이 희생되었습니다.


<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2003 >

훌륭한 조형물이죠.

당시의 사진 등을 도안으로 하지 않고, 참전기념조형물의 사진을 도안으로 했습니다.

워싱턴 D.C에 위치한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한국전쟁의 이미지에 '눈'이 한 몫하는 느낌이 큽니다.

< 한국전쟁참전기념, 2003 >

캐나다에서 발행한 이 우표는 매우 함축적인 도안입니다.

한국의 산하를 배경으로해서 가운데 세 장의 흑백사진을 두고 있으며,
화면으로 붉은 색으로 휴전선이 그어져 있지요.

맨 왼편의 사진은 F-86 세이버로 캐나다 공군 조종사의 활약을 남고 있고,
가운데에서는 홋줄을 당기는 수병의 모습,
오른편에서는 중부전선 고지를 지키는 보병의 모습이 나옵니다.
여기서도 한국의 '눈'과 '추위'를 소재로 삼고 있지요.

미국과 캐나다의 참전기념우표는 2003년에 나왔습니다. 
발행일도 7월 25일입니다. 
왜 휴전일인 7월 27일이 아니고 25이냐하면 27일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이죠;
1950년부터 기산하지 않고 1953년부터 기산하기 때문에
기념우표 발행년도가 2003년입니다.

미국이나 캐나다나 '6.25'에는 친숙하지 않습니다.
휴전일인 '7.27'에 대한 인식이 더 크지요.
오바마 대통령이 7월 27일에 조기를 게양하라고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참전국에서는 6월 25일 이후에 참전했으므로, 6.25라는 것은 의미가 적지요.

미국과 캐나다 양국 모두 2003년에 기념우표를 발행한 것은
50주년이 되는 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관점으로는 2000년에 6.25 50돌 우표가 나왔어야하죠.

없습니다.

2000년 6월에 6.25 50돌 우표 나오지 않았고,
2003년 7월에도 휴전 50돌 우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우리는 '휴전'을 기념하여 우표를 낸 적은 없습니다. )

< 남북정상회담 개최기념, 2000>

6.25 50돌이 되는 해인 200년 6월에는 남북정상회담 개최기념우표가 발행되었습니다.

분단 55년만에 남북한 정상이 직접 만나 민족의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는 문제를 논의하게 되었습니다. 

평양에 열린 남북정상회담은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이루어졌습니다. 

도안을 보시면 퍼즐로 잘 끼워맞춰진 한반도가 통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한반도 가운데에서 새싹이 움트는 것은 평화와 통일의 기운이 싹트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도 의미있는 일인데,
남북화해무드에 6.25는 잠깐 제쳐둬야하는건지...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이 시기에는 진짜 Forgatten War 취급을 받은 겁니다.

좋게 생각하면
남쪽에서 화해의 손짓을 하는 차원에서 
6.25 관련 우표를 만들지 않았다고 봐야겠지요.

그런데 지금까지 6,25관련 우표발행의 주 목적은
 '참전국들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컸습니다.
참전용사들도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바라겠지만...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태도가 달라졌다는 인상이 큽니다.

뭐 우리가 이렇게 나왔으니 북한도 태도를 바꿔야겠죠?

< 중국인민지원군 조선전선참전 50돐 기념, 2000 >

우리가 태도를 누그려뜨렸으니 북한도 태도를 바꿨겠지 않겠느냐...
라는건 순진한 생각이죠.

역시 북한은 혈맹 중국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당시 북한을 돕기 위해 목숨을 바친 중국인민지원군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고
전쟁당시의 사진과 기념비 등으로 화려하게 도안하여 발행하였습니다.
아주 보란듯이 내놨지요.

우리는 50돌이 되었다고 해도 우표를 내지 않았던것과는 매우 대조적입니다.

이렇듯 북한은 중국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날이 갈수록 더해지면 더해질까..

이와 비슷한 것이 2종 더 있습니다.

< 중국인민지원군 조선전선참전 40돐 기념, 1990 >

1990년 6.25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40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하지 않았습니다.

이걸 좋게 해석하면,
더이상의 북한과의 경쟁은 무의미할 정도로 우리가 앞섰기 때문에
대결구도차원에서 발행할 이유는 없다고 할 것이지만...

참전국에 대한 감사의 차원이라면 얘기가 좀 다릅니다.
북한이 내세우는 명분은 '조중친선'입니다.
우리가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과
UN등 참전국에 대한 친선은 관계가 없지요.
그건 그것대로, 이건 이것대로..

우표를 발행하는 것은 '형식적인'의미의 감사일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경제가 급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부터 이지만,
참전국의 용사들에 대해 직접 감사를 표시하거나,
어려운 처지의 참전용사들을 돕는 실질적인 배려는 없었던 것이 사실이지요.
국내의 참전용사는 물론 해외의 참전용사들에게도 소홀했습니다.
이것이 좀 대조적인 모습이죠.

겉으로는 감사해야한다 감사한다 며 강조하면서도 소홀했고,
최근에는 이런 '감사를 강조하는' 분위기는 덜해졌진 반면에
유해발굴사업이나 참전용사후원등의 활동 등은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때가 늦은 거죠.
이미 대부분 고령에 접어들어 다수의 인원이 사망한 시점입니다.

음...이런 이야기는 이쯤에서 관두도록 하지요.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 팽덕회 기념우표, 1998 >

북한은 팽덕회탄생 100주년 기념우표까지 발행한 적도 있습니다.
이밖에도 특급영웅 황계광, 1급영웅 구소문 등의 기념우표가 있습니다.

나온다면 맥아더 등 장군들의 담은 우표정도? 
근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을것 같고..
이렇게까지하는 것은 좀 지나치다는 느낌이 있죠.

게다가 북한의 이런 우표들은 '중국으로의 판매'를 염두해 둔 것이기도 하니..-ㅠ-;

< Royal Wedding, 1981>

북한은 우표장사를 아주 잘합니다.
내수용과 수출용을 구분해서 내놓고 있으며, 
발행량을 줄여 희소성을 높이는 과감한 정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의 폐쇄적인 정책과 맞물려 
북한우표의 희소가치는 매우 높아 수집가들의 시선을 잡기 충분하죠.

게다가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게 수출용 우표에서는
정치관련 선전구호를 제거한 형태로 냅니다.
수출용 북한우표의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 왕세자(찰스-다이애나)결혼기념 우표'지요.
만민평등을 주장하는 사회주의국가에서 '왕세자결혼기념우표'를 내다니..-ㅠ-;
뭐..김씨왕조나 마찬가지이니 이념적으론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 6.15 공동선언발표 10돐기념, 2010>

이건 6.25와 무관한 것이지만, 
2000년 남북정상회담기념우표와 관련해서 첨부했습니다.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은 완전 별개로 취급합니다.

6.25를 기념하는 것과 6.15공동선언을 기념하는 것은 완전 개별적인 것이죠.
뭐 일단 우리는 6.15공동선언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 상황이기도 하네요.

< 6.25 남조선으로부터 미군철거를 위한 투쟁의 날>

< 7.27로 그 때를 기억하는 주요 참전국들 >

< 6.25 전쟁 60주년, 2010>

앞으로 우리는 6.25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by MessageOnly | 2010/06/30 18:14 | ■ 즐거운 취미 | 트랙백 | 덧글(11)
트랙백 주소 : http://larca.egloos.com/tb/334480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rumic71 at 2010/06/30 18:35
40돌 기념우표에서 중공군(?)이 들고 있는 총이 미묘하네요. 베트남의 K50인가?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0/06/30 22:28
PPSh-41, PPS-43 정도로 봐줘야겠지요.
아마 왼쪽이 중국군, 오른쪽이 북한군일겁니다.
Commented by Allenait at 2010/06/30 18:45
터키는 정말 자랑스러워 할 일을 하고 갔군요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0/06/30 22:29
정말 그렇습니다. 그들에겐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Commented by 대한민국 친위대 at 2010/06/30 18:52
북조선의 왕세자비 결혼우표는 정말 압빡이군요.... 동프랑크(?)의 독일농민전쟁 기념우표 이후 엄청난 압빡...[먼 산]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0/06/30 22:33
DPR KOREA라는 문구가 없는게 더 정상적(?)인 모습이겠지요.
저런식으로 만들어내려면 자료수집도 상당해야할텐데..조선우표사도 능력이 상당한 모양입니다.
도안에 쓰이는 그림들도 독특한 맛이 있죠.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10/06/30 23:33
개인적으로는 역시 터키우표가 인쇄 도안의 질이나 주제가 맘에 드네요. ㅎㅎ 잘 보았습니다. ㅋ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0/06/30 23:35
동감입니다.
Commented by at 2010/07/01 10:16
역시 팽장군(...) 정작 모택동한테 찍혀서 고국 돌아간 뒤 숙청당했는데 북한에서는 기억을 해주는군요. 5인 1조 소총 한 자루 나머지 짱돌 들고 진격...

맥장군도 그런 면에서 충분히 기억해줄 의미가 있는 것 같네요.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0/07/01 16:55
맥장군도 어떤 의미로는 고국에서 숙청당한 케이스니....대한민국에서 좋게 기억해주고 그런다면 나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Commented at 2016/06/01 01:08
비공개 덧글입니다.

:         :

: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비공개 덧글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