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우표 (3) - 박정희 (후기)
대통령 우표 (2) - 박정희 (전기)

< 박정희 >

지난번에도 언급한 내용이지만...
이 존영이 박정희 대통령의 대표 이미지가 됩니다. 
그로 인해 생기는 단점도 있는데, 장점이 더 많았던 것이겠지요.
매우 오래도록 사용되었으며, 현재도 대표이미지로 쓰입니다.
조금 더 오래살았더라면 다른 이미지로 변경되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 제1회 박대통령 컵 쟁탈 아시아 축구대회 기념, 1971>

대회 이름이 '박대통령컵 쟁탈 아시아 축구 대회'였습니다. 

그물을 강타하는 축구공을 배경으로 커다란 '1'자 안에 드리블하는 축구선수가 도안되어있습니다.

국제 축구대회라면 역시 'FIFA 월드컵'일테지만, 
당시 대한민국은 본선에 진출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1966년 북한이 8강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고, 
이는 대한민국을 크게 자극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에 국제축구대회인 '박스컵'이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 박정희 대통령의 시축 >

현재는 철거된 동대문운동장(당시 서울운동장)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본인의 이름을 걸고 하는 대회인 만큼 시축은 당연한 행사지요.

이듬해에는 아시아 축구대회가 아닌 '국제축구대회'로 개칭하며 규모를 늘리게 됩니다.

< 제10회 대통령배 국제 축구대회 기념, 1980 >

이 때는 '최규하' 대통령이 있던 때입니다. 
명칭이 좀 더 익숙한 표현인 '대통령배'로 바뀌었습니다.
70년대는 박스컵, 80~90년대는 대통령배입니다.
1995년부터는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로 변경되었습니다.

붉은색 유니폼은 당시에도 대한민국 대표팀을 상징하는 것이었지요.
오른발로 강한 슈팅을 날리는...것이 아니라 헤딩하는 선수입니다.

박정희대통령의 초상이 들어가거나한 우표는 아니지만 '박대통령'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으로
박정희 대통령 우표로서의 의미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 제7대 대통령 취임 기념, 1971 >

아주 전형적인 도안입니다. 
인물은 왼편에 배치하고, 오른쪽에 문구와 도안을 넣었습니다.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과 무궁화 아래에 '고속도로'가 있네요. 
저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이겠지요.
경부고속도로는 1968년 2월 1일 착공되어 1970년 7월 7일 완공되었습니다.
제6대 대통령 임기동안 중 내세울만한 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지요. 

이런 치적에도 불구하고 제7대 대통령 선거는 박정희 정권에 대한 시험무대가 되었습니다.
 원조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김영삼이 정권교체바람을 일으켰기 때문이죠.
신민당의 단일후보는 김대중이 되었지만요.

사실 박정희는 이번 선거에 나올 수 없었습니다. 
제3공화국 헌법상 대통령은 1차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었기 때문에
 5대, 6대 대통령이었던 박정희는 이제 나올 수가 없었지요.

까짓거 헌법이 문제라면 헌법을 바꾸면 되는거 아니겠어요?

하지만 당시 박정희의 후계자로 지목받던 김종필은 삼선개헌에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헌법'상 박정희 3번째 출마는 위헌이므로, 공화당 후보로는 '김종필'이 나오는 것이 순리였지요.
아마 이런 이유였을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5.16 군사정변의 실력자 박정희가 그리 호락호락 당할 위인이 아니죠.
공화당내 김종필과 그 세력을 제거하고 야당인 신민당의원을 포섭하여
국회 개헌정족수인 122명을 채우는데 성공합니다. 
그렇지만 국회 본회의장 점거반대농성을 벌이는 야당의원들 때문에 개헌안을 상정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날치기가 투입된다면 어떨까?

날.치.기.

1969년 9월 15일
본회의장을 피해 국회 제3별관으로 이동한 공화당의원들은 1200명의 경찰의 호위아래
무려 새벽2시에 개헌안을 통과시킵니다. 

이 개헌안은 10월 17일 국민투표에 부쳐져 65.1%의 찬성으로 확정됩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다시 출마한 박정희후보는 
새파란 김대중 후보를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면 좋았을텐데...

공화당후보 박정희 6,342,828표
신민당후보 김대중 5.395.900표

의 접전을 거쳐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하게 됩니다.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의 윤보선 후보와 맞붙을 때보다 표차가 더 줄었고,
공화당 내부에서의 정권투쟁도 감지되던 때였지요. 

선거당시 박정희 후보의 유명한 멘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여러분께 다시는 나를 찍어달라고 하지 않겠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러니 찍어달라. 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어쨌든 박정희후보는 자신의 말을 지켰습니다.

< 제8대 대통령 취임기념, 1972 >

우표 사이즈가 커졌습니다. 
1970년에 발행된 대형보통우표와 같은 사이즈입니다. 
(지난번 포스트 참고)

이것역시 평범한 도안입니다. 
왼편에 인물이 배치되고, 오른편에 문구와 도안이 있지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태극기'가 하늘에서 펄럭이고 있으며,
경제발전의 상징 '고속도로'가 농지와 도시, 공장을 잇고 있습니다.
트랙터의 출현은 현대화된 농업을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제7대 대통령 취임기념우표가 나온지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 
제8대 대통령 취임기념우표가 나왔습니다.
(나중에 전두환이 따라하는 패턴.)

제7대 대통령선거를 위해 내부질서 정리도 해야했고,
야당세력이 만만치 않음을 감지한 박정희대통령은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삼선개헌 같은 걸로는 어렵다...그러면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가야할까요?

유신같은걸 끼얹나?

아래는 제8대 대통령 취임기념 우표 발행에 대한 안내문입니다. 

"1972년 12월 27일은 우리나라의 제8대 대통령이 취임하시는 날이다. 제8대 대통령은 국가의 안정과 번영 그리고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여 겨레의 활로를 개척해 나가기 위한 한국적인 민주주의를 우리땅에 깊이 뿌리박을 유신헌법에 의해서 실시된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 당선되시어 그 직에 취임하시게 된 것이다. 이번에 취임하시는 제8대 대통령은 다극화된 국제권련정치의 소용돌이 가운데 오직 국력을 고도로 조직화하여 모든 국가기능의 능률을 극대화함으로써 국가의 안정과 국민 모두가 잘살 수 있는 번영을 그리고 겨레의 숙원인 평화적 통일을 향해 탁월하신 지도적 역할을 다 하실 것이다. 체신부에서는 우리 겨레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위대한 영도자이신 박정희 대통령의 애국이념을 높이 받들어 우리 민족사에 찬란하게 길이 빛날 제8대 대통령의 취임을 경축하기 위하여 기념우표를 발행한다." 

'한국적인 민주주의'를 우리땅에 깊이 뿌리박을 유신헌법에 의해서 제4공화국이 출범한 것입니다. 

유신헌법.
대통령의 위엄을 한껏 드높이는 헌정질서지요.

지금까지 걸림돌이 되어온 '헌법'의 효력을 일시 정지키실 수 있는 '긴급조치권' 부여.
국회의원의 1/3을 대통령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
사실상 국회 1/3은 대통령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해산시켜버리는 '국회해산권' 부여.
전국의 모든 법관에 대한 임면권 부여.

헌법을 정지시키겠습니다.
입법부를 장악하겠습니다.
사법부를 장악하겠습니다.
모든게 잘 되어가는군.

게다가 국민투표로 선출하던 대통령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하는 간선제로 바꾸게 됩니다.
제6대 대통령선거 중 했던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아주 훌륭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께 다시는 나를 찍어달라고 하지 않겠다"

그리고 연임에 대한 제한이 없습니다. 
무제한적인 연임. 수명이 다해야 대통령직을 관둘 수 있는 것이겠지요.
이른바 '종신집권'
임기제한이 6년인데...이럴바에야 뭐하러임기제한을 두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

전국에서 모은 대의원들을 통한 간선제(통일주체국민회의)로 장충체육관에 모인 2359명 중 2357명의 '찬성'으로 
제8대 대통령에 선출(!)됩니다.
* 이중 2표는 무효표 -ㅠ-;;

< 포드 미국대통령 방한기념, 1974>

양국의 국가원수 존영과 국기가 좌우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한반도가 가운데에 도안되어 '방한'이라는 의미를 전달합니다.

이 우표는 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우표에서 나타나는 특성 중 하나가
'미국 대통령'과 만나는 경우에는 초상이 바뀐다는 것이거든요.
그 특이한 점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
얼굴모습이 이전 우표와 다르지요.
결정적 차이라면 넥타이랄까요?
 이전 우표속의 넥타이와 초상을 비교해보시면 더욱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한동안 이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쓰입니다.
(물방울넥타이 초상)

포드 대통령은 나름 미소를 지은 것 같은데...왠지 타이틀매치 분위기를 내는게..on_
미국대통령으로서는 3번째 방한이었습니다.

< 대통령영부인 육영수여사 추모, 1974 >

본래 교육자출신으로 박정희준장과 결혼하여 영부인이 된 육영수여사는
'청와대 제1야당'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울 정도로 정치적 조언자의 역할도 수행하였으며,
 여성복지, 어린이사업, 한센병환자구호 등 사회봉사활동에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항상 한복차림으로 국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으며, 후대의 영부인들에게도 귀감이 되었습니다.

이 우표가 발행된 직접적인 이유는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발행한 총격사건때문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을 기도한 문세광은 일본경찰의 권총을 탈취하였으며, 위조여권을 통해 입국하였지요.
광복절 기념식장내에서 연설중이던 박정희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총격을 가했으나 총격은 빗나갔고, 
경호실장 박종규가 문세광을 향해 총격을 가하자, 문세광이 박종규를 향해 다시 총격을 가했는데, 
이 총탄이 육영수여사에게 직격한 것 이라는게 정설입니다만...이설도 존재하지요.
문세광 자리 뒷편에 있던 경호원이 문세광을 저지하기 위해 총격을 가했는데, 
그것이 육영수 여사에 맞았다는 이야깁니다.
문세광의 박정희 대통령 암살기도 사건 자체에 의혹이 있다는 이야기에
경호실이 개입했다는 설도 나오면서 음모론 등이 제기되어 복잡하기는 합니다.
당시 사건영상과 음성기록이 존재하고 있지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단상뒤로 몸을 피했다가 사태가 진정되자
연설을 다시 시작해 예정대로 기념식을 마치는 카리스마를 보여주었습니다.

사건의 발생일은 8월 15일이지만, 추모 우표의 발행일은 11월 29일입니다.
11월 29일은 육영수여사의 생일로 49회 생일에 맞추어 발행된 것입니다. 
육영수 여사는 국민적인 인기가 높아 박정희정권에 대한 반감도 
어느 정도 감쇄하는 효과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녀의 사후,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을 것이고,
박근혜의 내조도 어머니에게는 미달하였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부군과 함께 인기가 높은 인물로 이 우표는 인지도가 높은 상품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표수집에 취미가 없는 중장년층이 구매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지요.

< 대통령영부인 육영수 여사 추모 특별우표 >

본래 발행계획이 없던 것을 '특별'히 발행하는 경우가 가끔있습니다.
이 육영수 여사 추모 우표는 하나의 도안으로 1종4색 색별인쇄를 하고 있습니다. 

< 슈바이쳐박사 탄생 100년, 1975>

이 우표도 1종4색 색별인쇄를 하고 있습니다. 
육영수 추모 특별우표의 발행은 1974.11.29
슈바이쳐박사 탄생우표 발행은 1975.1.14

두 우표의 발행일이 불과 2개월차이도 나지 않습니다만 도안자는 서로 다르고요. 
이 때만 1종4색 색별인쇄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당시 체신부에서 색별인쇄를 한 번 밀어보았다고 할 수 도 있지요.
제 생각(추측)으로는 당초 발행계획이 없던 육영수여사 추모 '특별'우표를 도안하기 위해
기존에 도안되어있던 슈바이쳐박사 탄생 100년 기념우표를 참고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발행일을 두고 보면 슈바이쳐우표가 육영수여사우표를 참고했다고 보는게 옳겠지만,
우표도안은 미리 만들어져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죠.

< 가봉 공화국 엘 하지 오마르 봉고 대통령 방한기념, 1975>

양국의 국가원수와 국기가 나란히 도안되어 있으며,
특이하게 목에는 무궁화가 둘러져있습니다.
환영의 의미일지도 모르겠네요.
예전에 말레이시아 국왕 방한 때의 센스라면 양국의 국화를 교환하는 정도도 좋았을텐데요.

'가봉'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이름이 '봉고'입니다. 
봉고의 대통령이 아닌 점을 염두하셔야합니다.

이 '봉고'는 아주 유명한 사람이지요.
무려 42년간 집권했던 아프리카 독재자 중 하나입니다.
42년간 집권하고 '자연사'한 매우 드문 케이스이죠.
본래는 '부통령'이었는데,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31세의 젊은 나이로 대통령이 된 행운아이기도 합니다.
이후에 계속 연임하면서 42년동안 집권하게 된 것이죠.
가봉공화국의 현 대통령은 봉고의 '아들'입니다. -_-;

우리나라와의 각별한 인연(?)으로 기아자동차의 '봉고' 모델명을 이 독재자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습니다. 
신문, 방송에서도 이 설을 채택해서 무분별하게 퍼뜨리고 있어서 마치 '정설'로 받아들여지기까지하는데...
기아자동차의 '봉고'는 일본자동차회사 '마즈다'사의 '봉고'를 라이센스 생산한 것입니다.

"봉고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아시아자동차(기아)에서 나온 승합차에 '봉고'라는 이름을 붙였다"
는 식의 보도가 많습니다만 기아차의 '봉고'출시는 1980년입니다.
우표를 통해서 알 수 있다시피 봉고대통령의 방한은 당연히 1975년이고요.
(* 마즈다사의 봉고 첫 출시년도는 1966년입니다.)

이밖에도 연예인 정소녀가 흑인아기를 낳았는데, 상대가 이 봉고대통령이었다라는 식의 루머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었고, 나중에 본인이 자녀를 언론에 노출하면서 이런 루머는 불식되었습니다.

참...우리나라에 이런저런 뜬소문을 많이 만들어낸 장본인이죠.
그만큼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은(?) 인물로 
1975년 외에도 1984년, 1999년, 2007년 등 모두 4차례 방한했습니다.
(1984년에도 방한기념우표가 나옵니다.)
대한민국 정권이 어떻게 바뀌는가는 상관이 없었던 경우지요.
매번 훌륭한 대우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제3세계, 특히 아프리카 신생국가에 대한 북한과의 국제외교경쟁사례로서도 의미가 있는 대상입니다.

이 봉고대통령의 방한은 당시 '대한늬우스'를 통해서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 새마을 운동 특별, 1976 >

이 5종의 우표 중 하나입니다. 

도안은 새마을깃발이 펄럭이는 아래에 박정희 대통령의 초상이 도안되어있습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물방울넥타이초상입니다.
이 물방울넥타이초상은 이것을 포함하여 3번 쓰였습니다.

근면, 자조, 협동의 표어의 새마을운동.
1970년 4월 22일 시작된 새마을운동의 6년째를 맞이하여 발행된 우표입니다.

< 제9대 대통령 취임 기념. 1978 >

대한민국과 대통령을 상징하는 태극기와 청와대기가 나란히 있고
그 중앙에 박정희 대통령의 초상이 도안되어 있습니다.
중간에 쓰였던 물방울넥타이초상이 아닌 줄무늬넥타이로 회귀하였습니다.
이 흰줄무늬넥타이초상이 쓰여진 기간을 생각하면 지금 이 이미지를 쓰는 것은 좀 지나친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인의 나이도 생각해야하는 것이니까요.
1978년이라면 박정희대통령도 나이가 많이 들었던때입니다. 이미 환갑;
상대적으로 젊어보이는 초상을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를일이지요.

어쨌든 유신체제만세.
제9대 대통령 선거는 마찬가지로 장충체육관에서 조촐하게 치뤄졌고,
2593명의 대의원 중 2578명이 출석하여 2577표를 얻어 99.9%의 득표율로 당선되었습니다. 
(1표는 역시 무효표)

박정희 대통령의 가장 최근(마지막) 취임 기념 우표로
다른 대통령(최근)우표와 더불어 '대통령 우표 패키지' 상품을 구성하는 주요한 파트이기도합니다.
기념품가게의 상품으로 취급되기도 하지요.

< 세네갈공화국 레오뽈 세다르 셍고르 대통령 방한기념, 1979 >

양국의 국기가 교차하는 형태로 드리워져있는 것을 배경으로
양국의 국가원수가 좌우에 위치한 도안입니다.

역시 줄무늬넥타이초상입니다.

세네갈도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으로서 북한과의 국제외교경쟁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1962년 수교했고, 북한과는 1972년에 수교하였습니다.
중립국이죠.

< 카터 미국대통령 방한기념, 1979 >

양국의 국기가 배경으로 있고, 좌우에 국가원수가 도안된 전형적인 방한기념우표입니다.

특이한 것은 '얼굴'이 흑백이 아니고 살색을 넣었다는 점이죠.
한미 양국의 국가원수의 얼굴색이 비슷하다는 것이 좀 어색하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이런 총천연색시도는 처음있는 것이었습니다.
인쇄방식은 기존과 같은 그라비아 4도색이었지요. 
딱히 신기술이 도입된 결과는 아닙니다.
근데 반응이 안 좋았는지 다시 흑백으로 회귀합니다.
뭔가 보수적반응이 있었었던 것일지도 모르지요.

박정희 대통령의 초상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전의 세네갈대통령방한(4월)우표와는 다르게 최근 초상을 도안에 넣었지요.
이 우표는 6월에 만들어졌습니다. 
불과 2개월의 차이이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같지요.

카터 대통령도 포드처럼 이를 드러낸 웃는 표정인데, 인상이 너무 다르네요. 
박정희 대통령의 굳은 표정과 더욱 대비를 이룹니다.

당시 한미관계는 유신체제로 인한 인권문제와 핵개발문제로 껄끄러운 상태였지요.
그런 현안문제해결은 물론 공고한 한미동맹을 재확인하는 방한이었을 것입니다.

발행량이 엄청많은 우표입니다.
900만장을 찍었거든요.
박정희 대통령 우표 중에서는 가장 많은 발행량을 자랑하는 우표입니다. 
취임기념우표보다 발행량이 2-3배는 많습니다.
때문에 가격이 저렴해서 저도 전지로 가지고 있습니다. 

< 제10대 대통령 취임기념, 1979 >

기존도안과는 다르게 인물이 우측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런식으로 본인이 우파라는 것을 나타내실 필요는...
좌측에 무궁화와 태극모양의 리본이 지나가고 있는 도안이지요.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자, 
'헌법'에 따라 당시 국무총리이던 '최규하'가 대통령'권한대행'으로 취임하였습니다.
그러나 12.12 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제4공화국 헌법을 존속시키면서 10대 대통령선거를 실시합니다.

마찬가지로 장충체육관에 대의원이 모여 단일후보로 출마한 최규하후보를 선출하였습니다.
당선일은 12월 6일. 우표발행은 12월 21일입니다.  

최규하는 말레이시아 대사, 외무부 장차관 직을 거쳐 1975년 국무총리가된 인물로
외교와 행정업무로 단련된 서민형 재상으로 인식되던 인물입니다.
당시 정계투쟁노선상 대통령이 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고 봅니다만, 
10.26 이후 급변하는 국내 정세 속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 인물이지요.
현재의 정쟁을 통해 선출되는 대통령들과는 매우 다른 타입의 인물입니다.

< 박정희 대통령 추모 특별, 1980 >

이것도 역시 발행계획이 없던 특별발행우표입니다.

박정희대통령의 기본초상(줄무늬넥타이)을 영정으로 하여 도안으로 하고 있습니다. 

10.26 당시만해도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장계를 어떻게 치뤄야하는지 명확한 정치적 판단을 내리지 못했지요.
12.12 이후 신군부에 의해 정권이 장악된 이후에는 신군부의 안정을 위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추모분위기를 띄우는 것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 SPECIAL POSTAGE STAMP IN MEMORY OF THE LATE PRESIDENT PARK CHUNG HEE >

   추모느낌을 살리기 위해 적갈색과 암자색 2종으로 인쇄하였습니다.
당연히 인기있는 우표상품 중 하나입니다.

당시 발행안내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 각하는 1917년 11월14일 (음 9월 30일) 경북 선산군 구미읍 상모리에서 태어나셨다.
그동안 민족중흥의 위업에 선명을 바치다가 1979년 10월 26일 번영과 성장의 80년대를 눈앞에 두고 불의로 서거하셨다. 그분은 생전에 시골농부와 논두렁에 마주앉아 텁텁한 막걸리와 풋고추 안주를 즐기신 서민 대통령으로서의 소박하고 자상하신 성품을 지니셨으며 반공을 위한 국방태세나 경제건설, 공무원의 부정척결 등 일에는 누구보다도 단호하고 강직하셨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세계속의 한국, 앞서가는 신생공업국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은 그분의 위대한 영도력과 애국 애족의 경륜에서 비롯된 국민적 노력의 결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분은 가셨지만 그 이룩하신 민족사의 금자탑은 영원히 불멸할 것이며 새 역사를 창조하신 민족중흥의 위대한 영도자로서 그분의 정신은 우리 마음속에 길이 살아 계실 것이다.
체신부에서는 강직 근면하시면서도 의리와 인정이 넘치는 인간미를 지니신 고인이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시다 가신지 100일을 맞아, 그의 유덕을 길이 추모하기 위하여 이 우표를 발행한다."

전체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관련 우표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긴 집권기간을 생각하면 오히려 관련 발행 우표가 적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후기(?)에는 인쇄기술과 도안하는 디자이너들의 실력도 늘어나 
뭔가 안티적(?)인 도안은 사라지게 되고, 도안이 다듬어져 전형적인 구도가 자리잡게 됩니다.
by MessageOnly | 2010/08/12 19:45 | ■ 즐거운 취미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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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대한민국 친위대 at 2010/08/12 19:50
카터 미국대통령 방한기념 우표를 보고 생각난건데, 카터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카터 대통령과 빡통이 많이 싸웠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조져라 부셔라 황상과 달리 카터 황상은 도덕적인 천조국을 외치면서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해 지적하는데 빡통가카는 그에 대해 입닥쳐라 어째라 하고 훈훈한 분위기를....(...)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0/08/12 19:58
우표의 도안만으로도 두 사람의 성향이 극명히 대비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카터가 좀 인권인사인것도 컸지요.
Commented by 無碍子 at 2010/08/12 21:38
79년도 우표인데 셍고르 때와 카터 때의 박대통령의 얼굴이 많이 다릅니다. 카터 때의 우표 사진이 실제모습과 가장 비슷한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0/08/12 22:20
불과 2개월차인데도 불구하고 차이가 너무 나죠. 실제로는 해당 초상과 10년 정도 차이가 납니다.
대표 초상이 아무리 맘에 들어도 서서히 바꿔나가는 것이 좋은 것이겠죠.
존슨, 포드, 카터 방한 때의 초상이 전부 다른 것도 재밌는 부분입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10/08/12 23:04
워낙 보위에 계신 기간이 길다보니 초상이며 도안이 참 다양하군요. 그나저나 전두환 시기 우표도 다루실 계획이신지요?(우표가 너무 많아 전지째 할인판매한다는데...)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0/08/12 23:17
...네 전두환은 고민이 좀 됩니다. 도안이나 초상도 별 다를게 없기도 하고요...워낙 밀도있는 발행종, 량을 자랑하기 때문에 -_-;; 그런데 하는 김에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ㅠ-; 너무 많아서 상, 하 정도로 나눠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Allenait at 2010/08/12 23:55
물방울무늬 넥타이가 묘하게 강렬하군요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0/08/13 00:07
줄무늬 넥타이가 기본형입니다.
Commented by 아브공군 at 2010/08/13 08:28
서울대 대학본부 앞에 저 봉고 대통령이 심었다~ 라고 돌에 새겨진 나무가 하나 있죠. 학교에 있을 때 많이 보곤 했는데.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0/08/13 13:40
봉고 대통령은 전생에 우리나라사람일지도 모릅니다. (...)
Commented by 맛있는쿠우 at 2010/08/13 09:40
역사와 결부시킨 우표 이야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좋으나 싫으나 아직도 우리 나라는 박통의 그늘에서 못 벗어난 것 같네요.... 아무 정치적 공적없는 수첩공주님께서 여당의 실세로 작용하고 계신 걸 보면-ㅁ- 어르신들은 더더욱이나 그 시절의 향수에 젖어드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0/08/13 13:43
제5대 박정희 대통령 취임기념우표가 5만~10만원 정도하는데, 거리낌없이 거금을 주고 구입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의 지갑이 열리는 걸 봤는데, 그걸 구입하고 나니까 천원 한 장도 안 남던....(...) 꼭 고가의 매물이 아니라도 '박정희' 우표라면 일단 눈길을 주고 보시는게 보통이죠.

Commented by rumic71 at 2010/08/13 16:55
카터는 선거 때부터 이를 몇 개 드러내며 웃는가 하는 것까지 치밀하게 이미지메이킹을 했었더랬지요. 정작 집권하고 한 것은 CIA 박살내놓고 이란을 영영 잃어버린 것...그리고 델타포스 작전 말아먹은 것...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0/08/15 17:19
지금 이란 돌아가는거보면 (...아니 이란 혁명일어나고부터 사이좋을 일은 없었군요; ) 그 때의 실수(?)가 더 아프게 여겨질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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