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erans Korea - 천조국의 지우고 싶었던 역사


< Veterans Korea, 1985, 미국 >

 오늘은 이 우표를 주제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이 우표는 1985년에 미국에서 발행된 우표로

'Korea'라고 써있는 것만 봐도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을 기념하는 우표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 Veterans World War I, 1985, 미국 >

1985년에는 요것도 같이 나왔습니다. 

아시겠죠?

요건 와르도와완  제1차 세계대전.

하지만, Veterans Korea는 7월 26일에 나오고, 
Veterans World War I은 8월 26일에 나왔습니다. 

한 달을 두고 나왔지만, 도안이 통일감이 느껴지죠?

디자이너는 Richard Sheaff로 같습니다. 

두 전쟁에 참전한 미군 용사들을 기려 만든 우표 시리즈(?)인 셈이죠. 

근데 요 'Veterans' 우표는 딱 이 2종만 나왔습니다. 

그렇다고 제2차 세계대전 등 다른 전쟁에 참전한 용사들을 기념하는 우표가 나오지 않았는가 하면
그건 그렇지가 않고요. 

저런식의 도안으로  나온 우표는 2종 이라는 것입니다. 



사실...제1차 세계대전이나 6.25전쟁은 미국에선 좀 안 쳐주는 전쟁이죠.
(예를 들면 '잊혀진 전쟁' 취급 받는거)

독립전쟁, 남북전쟁, 제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쟁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지명도가 좀 쳐지는 편입니다. 

< 이오지마 1945년, 미국 >

지명도 높은 전쟁을 주제로한 우표가 안 나올리가 없잖아요.

위 우표만 해도 이오지마에 성조기 꽂은건 1945년 3월인데, 
동년 7월 11일(아직 전쟁중)에 우표가 발행되기도 했습니다. 

지명도 높은 전쟁을 주제로 다룬 우표는 

심지어 전쟁중에도  나오기도 했고,
이후로도 꾸준히 나왔습니다. 

그동안 별로 안 쳐주느라 안 나오던 제1차 세계대전하고 한국전을 
뒤늦게나마 다루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단 이 우표에 대해서 먼저 설명을 하자면...

이 도안은 제1차 세계대전 중 '마른 전투'에 참가한 미군을 묘사한 것입니다. 


마른전투가 1차, 2차로 나뉩니다만....

미군이 참전한걸로 따지면

당연히 제2차 마른전투가 되는 것이겠고요.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 기관총병 >

요 그림이 유명하다면 유명하겠네요. 

이 양반도 

..에서 언급했던 지노 보카실레처럼

본업은 일러스트레이터였는데,

전쟁이 터지자, 
나라의 부름을 받고

각종 선전포스터 등을 그렸던 양반입니다. 


뭐; 예술가입장이 그렇습니다. 
좀 잘나간다 싶으면 나라에서 가만히 내버려두질 않습니다. 

아예 미 육군 예술 프로그램에 참가했지요.
'너 미대나왔다며? 와서 페인트 좀 칠해라'

이 우표속의 그림은
이 양반이 숯으로 스케치한 것을 
디자이너가 따가지고 도안으로 옮긴 것인데요. 

이 그림의 주제인 '마른전투'가 참 그렇습니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끝물에 

유럽에다가 원정군을 대거 파견했는데..


호옹이?


< 어서와, 참호전은 처음이지? >

페르디낭 포슈 원수의 영도아래

전도유망한 젊은이들이 떼죽음을 당했죠 (...)


마른 전투의 참상을 생각하면

이런 우표 나오는게 전혀 이상하지가 않습니다;

물론 미국도 남북전쟁도 치르고 하면서 
이래저래 희생을 많이 겪었지만

유럽에서 겪은 그것은 
과거 어느 전쟁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충격과 공포였을테니까요.

통조림으로 참호바닥을 깔아버린...
천조국이 이런 소릴하면 영프입장에선 욕이 튀어나오겠지만;





그 다음으로 잊혀졌던 충격과 공포.

이제서야 본론으로 들어옵니다만...

예. 

이 우표 속의 도안도 미군이 그 때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충격과 공포를 담고 있습니다. 


6.25전쟁 초반 낙동강까지 밀려나긴 했지만,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으로 기세를 크게 떨치고 

승승장구하여 압록강을 향해 레이스를 펼치던 무렵이었지요. 




여기서 천조국은 지우고 싶은 기억을 맞이하게 됩니다. 

....



장진호 전투는 어떻게 짧게 쓰기가 좀 그런데...

아무튼 장진호 전투의 이야기는

아빠늑대님의 글위키백과의 글엔하위키의 글을 참고하도록 하십시다. 

전황에 대한 평가는 거기에서.




결론적으로 UN군은 매복중인 대규모 중공군에게 허를 찔렸습니다.

물론 미 제1해병사단장 스미스소장은 
상부의 지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근차근 대비하며 진군했기 때문에 

포위상태에서 수 많은 중공군에 맞서싸우고도 부대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중공군만 있었다면 그래도 조-금 나을 수 있겠는데...

거기에 더해 동장군의 맹위까지 겹쳐서 

연합군은 엄청난 손실을 감수할 밖에 없었지요. 


1950년 12월 25일에 나온 LIFE 표지입니다.

12월 25일. 

표지는 역시 성탄분위기를 한층 살려주는 아늑한 느낌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특별 섹션' 함유! 총천연색!

....는 훼이크고

페이지를 넘기면

혹한속에서 겪는 미해병대원의 참상부터 나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표지는 그저 낚시일뿐. 

앞부분의 광고페이지 좀 넘기고 목차나오는데,

첫 편성이

'THERE WAS A CHRISTMAS IN KOREA'

이게 성탄절 맞춤형기사죠.


사실 이 기사가 나온12월 25일에는
장진호 전투는 종료된 시점이었습니다. 

제1해병사단은 12월 11일에 흥남에 도착했고,
24일에는 흥남 철수 작전도 완료했으니까요. 


링크로 들어가시면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보실 수 있습니다. 

뭐; LIFE야 이전부터 계속해서 한국의 전쟁상황을 계속 싣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독자들은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는 기사이기도 했을겁니다. 

이 사진에 대한 설명은 대충 이렇습니다.

이것은 눈속에서 얼어버린 레이션을 먹고 있는 해병대원의 얼굴이다.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식사를 중단하고 달려나가 싸우다 죽을 수 도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바로 그 1950년 12월 25일호에

이 우표의 도안이 된 사진이 실립니다. 



종군화가가 아니라 이제는 종군사진사의 시대


철수중인 미군병사가 

길가에 쓰러져있는 시신들을 뒤돌아보며 계속 걷고 있습니다. 


이 사진이 어떤 곳에서는 잘못 소개가 되서

'중공군' 혹은 '북한군'의 시신을 바라보며 걷는 미군으로 설명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죽은 북한군을 지나 진격하는 미 해병대원....이라는 설명은 

본래 이 사진에 붙는 설명입니다. 


뭐.... 미군이 미군시신을 바라보면서 철수한다는게 
상상하기 힘든것이긴 하죠.


위 사진은

LIFE 1950년 9월 18일호에 실린 것으로

연속촬영된 것 중 하나입니다. 


사진사양반은 유명사진작가인 더글라스 던컨. 

미해병대를 함께다니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베트남까지도 따라다녔죠.

곧 100세를 바라보는 장수노인이기도 합니다. 



미해병대를 따라다니다보니

장진호 전투에 관련한 서적들의 표지를 장식하는 것도

더글라스 던컨의 사진이 대부분입니다. 


그렇다고 장진호 전투 사진이 전부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미해병대와 다니며 부지런히 찍고 있었지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위 세 사진은 장진호전투와 직접관련이 없습니다.


그런데 국내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위 사진들을 '장진호 전투'이라는 제목하에 올려놓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아마도 


여기에 올라온 18장의 사진을 그대로 옮기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장진호전투 사진이 많기는 한데,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죠. 

그냥 같은 사진작가의 사진들일 뿐입니다. 



척봐도

서울사진은 도심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고,

배경이 야지라고 해도 

복장을 보면 '매서운 추위'로 기억되는 '장진호 전투'와는 거리가 먼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얇은 옷 차림, 풀어해친 앞섶이라든가 하는건 
계절적으로 ''겨울'과는 거리마 먼 것이니까요. 

< 탄약이 떨어졌다는 보고를 받은 중대장의 심정.jpg >

장진호 전투에서 미 해병대가 보급문제로 고생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사진이 '장진호 전투'의 제목아래 올라 있으면 그것은 좀 곤란한 이야기입니다. 

이 사진 속 배경은 '낙동강 방어선'이었거든요.

옷도 얇고 목이 그대로 드러나는 차림새입니다. 

영하 30도에 저러고 있으면 당장 얼어죽습니다. 


* 구글북스 서비스를 통해 직접 보실 수 있습니다. 

< 미해병대원 동절기 전투복 풀셋 >

이것은 장진호 전투 직전에 LIFE(1950.11.27)에 소개된 것인데....
(자세한 것은 구글북스를 통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당시 LIFE에 나오는 사진들을 시간순으로 보면 

동절기로 접어드는 전쟁의 변화양상이 조금씩 보입니다. 

장진호 전투가 있기 전까지만해도

꽁꽁언 내복바지(long johns)를 들고 서 있는 익살스런 사진이 담기기도 하고 그랬지요.

11월...쯤만해도 상황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던 때였고요.
(자세한 것은 역시 구글북스 서비스를 통해서)




더글라스 던컨 외에도 장진호 전투에 관련한 사진을 찍은 사람은 많지만,

연속성 차원에서 더글라스 던컨이 찍은 사진만을 놓고 보겠습니다. 



< 눈덮힌 계곡 외길을 따라 함흥으로 향하는 해병대원들 >

어떤 시선으로 보면 

마치 거지떼의 행렬같았다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 완전히 지쳐서 곯아떨어진 해병대원과 강아지 >

아무 데서나 쓰러져 잠을 청하거나하는

< 행군 중 휴식 중인 해병대원들>

이런저런 모습에서 '바짝 든' 군기를 찾아보기는 어렵지요. 





어떤 사람들은 이런 면을 보고서

마치 거지떼같고 군기가 없어보인다고 이야기할 것입니다만

미 제1해병사단은 결코 군기가 형편없는 그런 부대가 아니었지요. 

오히려 자기보다  열 배나 많은 적들에게 포위된 상황에서

수많은 적군을 쓰러뜨리며

흥남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한 정예부대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전과에도 불구하고

장진호 전투는 

추위로 인한 피해가 워낙 커서

미국에게 '한국전쟁'을 '매우 추웠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꼭 장진호 일대만 추웠던 것은 아니지만;

장진호 전투가 대표격이 되었지요. 

< The Korean War, 1999, 미국 >

그래선지 미국에서 발행한 한국전쟁 관련 기념우표는

배경이 죄다 '눈밭'입니다. 

<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2003, 미국 >

2003년에 나온 우표도 마찬가지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시설물이 워싱턴에 있는데요.

'굳이' 눈 온 날 찍은 사진을 우표의 도안으로 삼은 거죠.

미국에서 발행한 한국전쟁 기념우표는 죄다 배경이 겨울입니다. 


미국은 한국전쟁의 이미지를 '겨울'로 기억하고 있는 셈이죠.


그만큼 뼈저리게 기억에 남은 추위였다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발발시점인 6.25~낙동강방어선~인천상륙작전~서울수복' 을 강조하고 있어서
'겨울'이미지보다는 '여름'이미지에 가깝다고 봅니다.)




자기보다 열 배나 많은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는 것은 성공했지만,

매복중인 중공군의 습격으로 전사한 미군 병사들의 시신들이 

'길가에 아무렇게나 놓여져있다'

는 상황자체가 

미국의 자존심이 큰 상처를 줄 일이죠. 


더구나

미군 병사가

전우의 시신을 바라보면서 행군중이라는 것. 


천하(!)의 그 미군이 말이죠.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사진속에서 시신쪽으로 돌아보는 병사의 모습을 보면

시신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면서도

동시에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아군의 시신이 저렇게 놓여 있는 것자체도 어리둥절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멈춰서서  그 시신을 수습하지도 못하는 그런 어정쩡함이 드러나죠. 

 물론 위 상황은 사진촬영 후 곧 시신을 수습했기 때문에

미군이 전우의 시신을 버려두고 갔다는 식의 이야기를 할 수 는 없습니다만,




실제로 이 때는

미 10군단 참모장이 시신후송을 반대할 정도로 

상황이 매우 안 좋았습니다. 


< 미 제1해병사단장 올리버 스미스 소장 >

하지만 육군 말에 고분고분 따르면 해병대가 아니죠(?)

'미해병대는 전우의 시신은 무조건 챙긴다!'

* 이 사진도 '부상병'을 옮기는 중이라고 잘못 설명한 경우가 있는데, '전사자'가 맞습니다.

부상병을 저렇게 트럭 바깥에 다리가 나오게 싣지도 않을 뿐더러,
사람다리가 저렇게 짐칸 바깥에 나오면 무릎이 자연히 굽혀집니다.

근데 다리가 쭉 뻗어있죠.

왜?

얼어서




이렇게 시신을 수습하긴 하는데...

이것도 참....그렇죠.


이건 전우의 시신을 실어놓은 트럭을
앞에다 두고 행군을 해야하는 끔찍한 현장입니다. 

하다못해 천이라도 덮거나해서 
시신을 가리든가해야하는데 다 드러나 있죠. 

그만큼 사정이 급박하여
영현처리를 제대로 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이고,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시신을 수습해갔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그렇지만 다  후송하지는 못했습니다. 

중공군과 동장군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우의 시신을 수습하려다 또 다른 희생이 유발되니

급박한 곳은 현지에 가매장해야했고, 

휴전 직후

북한, 중공군 시신과 교환하는 형태로 되찾아갔습니다. 
(1954년 7~11월)
그리고 

 1996년부터 북한과 협의하여 추가로 미식별된 유해를 발굴해갔지요.
(북한은 댓가로 달러를 받았고요.)


이 사진은 당시 미국이 받은 충격을 상징한다고 봐도 좋을 겁니다. 

그러니까 우표의 도안으로 선정이 된 것이겠지요. 

이 우표의 감상포인트는

종군기자가 찍은 장진호 전투 사진을
 한국전쟁 참전용사 우표 도안을 썼다는 것 뿐 만이 아닙니다. 

비교해서 보시면 

위 사진을 우표로 옮기는 과정에서

길가에 있던 시신이 지워졌습니다. 





이게 근데....

'미군의 시신'을 바라보면서 걸어가는 '미군'을 묘사하는게 또 그렇잖아요?

그렇다고 리얼하게 '미군 시신'을 우표속에 넣었다고 하면 

그것도 문제라면 문제니까요.

'어른의 사정'이라는게 바로 이런 것이죠.

이해는 합니다.


그렇게 되서

지워졌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니까 

앞열에서 돌아보는 병사나 뒷열에 있는 병사의 시선이 모이는 지점이 있는데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표 도안 속에는요. 


이 장면은 당시의 참상을 너무나 생생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에 

그대로 우표에 담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웠던 것이겠지요. 

장진호 전투를 다룬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이 장면을 영화 속에 담을 것인가......

제 생각엔 담을 것 같습니다. 

이 장면은 장진호 전투를 상징하는 영상기록이기도 하고,

요즘은 '영웅담' 보다는 '전쟁의 참상'을 표현하는게 영화계의 트렌드니까요.




1985년, 그 때만 해도 우표속에서 지우고 싶을 만큼 아픈 역사였겠지만,

이제는 담담하게 영화속에서 재현될 듯 싶습니다.
by MessageOnly | 2013/04/02 14:00 | ■ 즐거운 취미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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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K I T V S at 2013/04/02 14:08
1차 대전도 그렇고... 6.25 전쟁도 미국에선 '동인 게임'으로 조차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정말 잊혀진 전쟁이라거나 그걸 잊고 싶은 전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차 대전의 경우엔 다크스트 오브 데이즈라는 게임에서 독일 제국군과 러시아 제국군이 전투 장면 말고는 FPS로 즐겨본 적이 없을 정도니깐요;;)

스펙옵스 더 라인 처럼 참혹하고 우울한 플레이나 엔딩도 매우 비참하게 끝나는 방식으로 만들어져도 낫긴 할 텐데... 흠;;
(다만 이러면 우리나라 이미지가 더 안좋아지려나;;)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3/04/02 14:15
1차 대전은 미국의 지분(?)자체가 좀 적은 면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6.25전쟁에서는 주연이었는데;

장진호 전투로 인한 결과가 흥남철수로 이어졌으니 심하게 비참한 엔딩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전쟁이 멋진 것만은 아니란다' 정도로?
Commented by Ladcin at 2013/04/02 14:11
끔찍했던 추위이니...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3/04/02 14:15
동장군 빠와
Commented by kuks at 2013/04/02 14:31
정말로 초신휴(Chosin Few)의 희생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3/04/02 14:56
(묵념)
Commented by 어찌보면 at 2013/04/02 15:08
베트남전만치나 미국 자존심을 구길정도의 전투였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누구네 말마따나 복장이 후지고 무슨 거지같아서 군기들지 않았기 때문에 패배했다는 그런수준보다는 당시 미군이 남북전쟁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저정도의 동장군과 싸워본 경험이 부족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최근 미군 파병 수요를 보면 대개가 사막이나 이런데던데 혹여나 최근 미군의 파병지중에 저런 혹한기의 환경이 얼마나 될까요? 최악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다시 북진해서 올라갈 경우 그때 다시 그 추위를 만나면 한국군은 장비 수준에서 열악하고 미군은 저런 산악지형+기온급강하에 의한 작전력 저하가 생긴다면;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3/04/02 15:28
경험해보지 못한 동절기 작전 + 대규모 퇴각작전 등 여러가지 요소가 있지요.

근데 미군만 대비가 부족했던게 아니라 11월에 부산에 도착한 프랑스군은 도착할때 반소매, 반바지 차림이고 그랬습니다;
전반적으로 한반도라는 '전장'에 대한 사전 이해가 부족한 상황이기도 했던거죠.

60년동안 이제는 장차전에 대한 준비를 꾸준히 하기도 했고, 장비에 대한 내한성능시험도 진행하는 이유들이 그런 것이겠지요. 최악의 경우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조기에 종결시켜야겠지요. 최근 미군 파병지 중 추운 곳이라면 아프가니스탄이겠네요.
Commented by 장진호 at 2013/04/02 16:16
장진호 이후 동계전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미군도 동계전 관련 매뉴얼을 마련하고 트레이닝을 수행했습니다..알라스카 주둔 XXX여단이 대표적인 동계전 전문 부대이죠.. 산악전이야 10산악 사단이 전문적이고요..오히려 한국이 주변강국에 비해 개인장구나 기타 장비 등을 따져보면 동계전 준비가 열악합니다..
Commented by 곰돌군 at 2013/04/02 16:15
12월~3월 중에는 솔직히 북한 애들도 전쟁하고 싶어하지 않을듯..(...)

Commented by MKD at 2013/04/03 09:54
청년대장동지는 추위 같은 거 뭔지 몰라요. 먹는 건가요? 우걱우걱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3/04/03 19:30
뭐....전쟁하기 좋은 때라는건 없죠. 계절별로 장단이 있을뿐;;
Commented by 딜레마 at 2013/04/03 12:34
역사벨리에 일기를 쓰고계시는 어느분의 주장에 따르자면 전투력이 전무하다시피한 약골 부대로군요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3/04/03 19:31
일기는 일기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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