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과 고양이 살처분 (2)


< 바스테트 여신 고양이상과 아비도스 고양이 미이라 >

이슬람세계에서도 특히 이집트는

고양이애호의 선구자였습니다. 

'고양이'를 인류곁에 두기 시작한 것을 고대 이집트에서 찾을 정도로

이집트는 오래전부터 고양이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고양이여신 바스테트는 '풍요와 다산'의 여신으로 섬겨졌습니다. 

이집트의 고양이 애호문화가 인접 아랍권에도 전달되었을 것이고,

이슬람권에서 고양이를 존중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지요. 

그렇지만 고양이 천국이었던 중동 이슬람세계도 
유럽 기독교세계와 마찬가지로 흑사병 충격을 받아
인구가 절단났습니다. 

특히

고양이 종주국 이집트가 가장 심대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고양이를 모셔오고,

신앙으로까지로도 발전시켰던 이집트는

1346~51년 흑사병 대유행 이후

< 파멸의 역병 디버프 >

지속피해를 입었습니다. 

1300년대 이집트의 인구는 800만 정도로 추산되었는데

수백년간 흑사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경제가 파탄난 탓에 

유럽이나 중국처럼 인구를 회복하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아버렸습니다. 

현대 이집트의 인구는 8천5백만명 수준입니다만,

1798년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할 당시 이집트의 인구는 300만 수준.

내려갈 인구는 내려간다




나폴레옹 이집트 원정에서 흑사병에 관련한 빠질 수 없는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 자파의 '임파선열' 환자를 위문하시는 황제폐하, 1804년 작>

1798년 나폴레옹은 프랑스군을 이끌고 이집트 원정에 나섰을때

이집트만 정벌한게 아니고 시리아도 정벌하려고 했는데,

시리아로 가는 길목인 시나이 반도를 건너가면서 '자파'라는 도시를 점령합니다. 


근데 '자파'는 아직도 흑사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프랑스군 병사들이 병으로 쓰러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슬람 사원을 환자를 수용하는 병원으로 이용했지요. 


위 그림은 그랬을 적에 

'당시 황제 폐하께옵서는 장병들을 걱정하시어 몸소 위문을 하시었다'

라는 내용으로 그려진 겁니다. 


나폴레옹은 '화면 중앙'에 위풍당당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위문에 감읍하여 벌떡일어선 장병의 몸을 만지고 있습니다. 
왼편의 군의관은 나폴레옹의 팔을 잡으며 만류하고 있죠.

반면 부관은 나폴레옹 등뒤에 숨어 있으며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리기까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폴레옹의 '영웅적인' 풍모를 더욱 강조하는 장치죠.
브라보~ 마담! 여기 상파뉴 한 잔 더!




근데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나폴레옹이 흑사병에 전염된 환자를 위문한다거나 몸을 만졌을리가 없죠. 

나폴레옹이 실제로 한 것은

1.흑사병이 만연한 장애지대 돌파 중단. 
(시리아 원정 취소)

2. 흑사병에 전염된 장병들의 안락사(!)
(고통을 덜하기 위해 아편을 줬다는 이야기가)

3. 그리고 절대 '흑사병'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원정중에 무서운 '흑사병'에 당하고 있다는 인식이 돌게 되면

병때문이 아니라 병에 대한 공포때문에 

장병들의 사기가 엄청나게 떨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죠

덕분에 나폴레옹의 군의관들은 '임파선열'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위 그림도 자기가 캥기는게 있으니까 일부러 저런 그림을 그리라고 주문한 거죠.
(위 그림을 그릴 때는 '임파선열'이라고 안 하고 페스트라고 명시합니다.)

- 프로파간다는 원래 이렇게 하는 겁니다. -



근데 그렇게 수백년간 흑사병에 시달렸던 이집트에서

나폴레옹의 원정 이후 흑사병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수백년간 이집트를 지배했던 맘루크 왕조에서

흑해연안 코카서스에서 전사들을 충원해왔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흑사병의 배양지가 된 유라시아 초원지대.

지속적으로 신선한 흑사병 병원체들이 이집트로 유입되고 있었단 이야기죠.

근데 나폴레옹이 맘루크 왕조를 무너뜨리자 
이집트와 그 동네와 유대가 끝나서 더이상의 유입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이집트에서 흑사병이 사라지게 되었다

는 분석도 있습니다. 

누구의 잘못인가?

집에서 자고 있던 고양이








< 역사를 바꾼 100가지 실수 >

'마녀사냥 -> 고양이 살처분 -> 쥐 증가 -> 흑사병 확산 -> 유럽인구 폭망'

의 속설을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인터넷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죠.

신문 칼럼에서 그런 내용을 쓰는 경우도 있고..

자주 접할 수 있는 이야깁니다.  




'마녀사냥 -> 고양이 살처분 -> 쥐 증가 -> 흑사병 확산 -> 유럽인구 폭망'

이걸 이전 포스트에서

반은 사실이고 반은 뻥인 이야기이라고 했는데



일단

유럽에서 흑사병 유행시기 전후로 마녀사냥을 열심히했다 (참)

유럽에서 마녀사냥하면서 고양이를 죽였다 (참)

고양이를 죽여서 쥐가 이상 증식 했다 (참)

유럽에서 흑사병이 대유행했다 (참)

유럽에서 흑사병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참)

흑사병 대유행으로 유럽인구가 폭망했다 (참)



잉? 지금까지 한 이야기랑 다른거 같죠?

고양이랑 크게 상관없다고 해놓고 말입니다. 

저 이야기들이 왜 '참'이냐 하면

다 따로 따로 떼어놓았으니 '참'인 것이고

서로 붙여놓으면 '거짓'이 됩니다. 




 유럽에서 마녀사냥 열심히 했죠.

근데 꼭 흑사병 때문만은 아니고 
마녀사냥은 그거랑 관계없이도 꾸준히 시행되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머니가 최고!

그리고 

마녀사냥하면서 고양이도 죽였다고요?

그렇죠. 

고양이 많이 죽였습니다. 

< 마녀 & 고양이 학살자 >

인노첸시오 8세가 참 죄 많은 인물이죠.

마녀도 죽이라고 하고 고양이도 죽이라고 하고
  
요즘 젊은 사람들이 천주교에 감정이 좋은것 같아. 나 한테 당해(?) 보지도 않고




뭐랬더라

'고양이를 다 죽였더니 쥐가 늘어나서 페스트가 퍼졌고 유럽인구가 폭망했는데'

'잘못을 깨달은 유럽인들이 고양이를 다시 키워서 페스트에 걸리지 않게 되었다'

뭐 이런 이야기도 있지요.

자 저 양반이 칙령을 내린게 1484년입니다. 

그 시기 유럽인구는 완전히 증가세로 돌아섰고

1500년대에도 흑사병 유행이 지역적으로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있었지만

1346~51년 처럼 유럽인구 전체가 폭망할 수준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14세기때 유럽인구가 폭망한 것은 

순전히 1346~51년의 흑사병 대유행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만,

당시에 대대적인 고양이 살처분령이 내려지지도 않았고,
고양이를 죽였다고 해도 국지적으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그걸 기록에 남길정도로 여유가 있던 시기가 아닌)

그리고  고양이를 애지중지한 중동 이슬람세계는 물론
중앙아시아, 동북아시아까지 사이좋게 개발살났고요.


저 그래프를 보면 1600년대도 유럽인구가 폭망하는 시점이 있습니다. 

물론 1600년대에도 주요도시에서 흑사병이 유행했습니다. 
이탈리아 흑사병 유행이 1630년에 있었고,
암스테르담 흑사병 유행이 1664년에 있었고
런던 흑사병 유행이 1665년에 있었죠.


'자. 모두들 보쇼.

멍청한 유럽놈들이 그렇게 무고한 고양이 잡아가지고

 1600년대 유럽인구가 이렇게 폭망한 거 아니여!'

'시나리오 쓰고 있네 미친 새끼가'



일단 1600년대 흑사병 유행시에는
 1346~51년의 대유행처럼 유럽 전체 인구가 '반토막' 나지는 않았습니다. 

1600년대 흑사병 유행은 주로 '도시'를 중심으로 일어났고,

물론 도시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전파해서 
시골에서도 많이 죽었지만

1346~51년 대유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가 적었습니다. 

1600년대 흑사병 유행은 
이미 유럽국가들이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1600년대 유행은 
그 전까지 간헐적으로 일어나던 유행에 비해 
그 피해의 정도가 좀 컸다는 수준입니다. 

유럽인구는 흑사병 지속피해를 입으면서도
 계속 상승하고 있었다는 얘깁니다. 

올라갈 인구는 올라간다

그럼 17세기 유럽인구가 급감한 이유는 모다?

<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섭다는 전쟁 ㄷㄷ >

넵. 30년 전쟁.

특히 독일은 인구 2/3 감소크리를 맞았습니다. 
(2/3로 줄어든게 아니고 2/3가 죽음)



인노첸시오 8세가 마녀사냥이나 고양이 척살령 따위의 병크를 저지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럽인구를 위협할 만한 정도의 '생태계 위협'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고양이살처분 -> 쥐 급증 -> 흑사병 확산 -> 사망자 증가' 

이것은 국지적으로 일어난 흑사병 유행을 분석한 가설이었습니다.

이 가설은 1346~51년 대유행을 설명하지도 않으며

유럽 전체에서 발생한 인구폭망을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하나의 국지적 가설에 이것저것 그럴싸한 살이 붙으면서 뻥튀기된 이야기란 말이죠.



근데 마녀사냥하면서 고양이를 죽여댄 것이었다고 하면

수백년간  유럽고양이가 씨가 마르지 않은건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합니까?
다시는 쉽캣을 무시하지 마라!

고양이 씨가 마르지도 않았고 더불어 생태계가 파괴되지도 않았죠.



결코 고양이들이 유럽에서 홀대받지 않았고
떼죽음을 당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고양이들은 유럽에서 홀대받았고 많이 죽었어요.

근데 생태계가 파괴될 만큼 죽지는 않았단 말입니다. 
도둑고양이를 살처분하면 다른 도둑고양이가 그 영역을 차지할 뿐



문제는 '1665년 런던 흑사병 대유행'


< 1665년 런던 흑사병 대유행>

1665년 런던에서 흑사병 크게 유행합니다. 

'Great Plague of London'이라고 해서

제법 크게 인식하고 있는 사건인데...

그레이트...라고 해도 1346~51년의 대유행에 비견될 정도는 아닙니다. 

이게 왜 크게 인식되냐면

그전부터 간헐적으로 흑사병 피해를 입어왔지만

1665년을 기준으로 이전과는 다르게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파멸의 역병 디버프 >

1665년 대유행 이전의 

런던 상황을 기록으로 보면

간헐적으로 흑사병으로 지속 피해를 입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연도별 흑사병사망자 통계

1603년   30578명 사망
1604년      896명 사망
1605년      444명 사망
1606년    2124명 사망
1607년    2352명 사망
1608년    2262명 사망
1609년    4240명 사망
1610년    1803명 사망
1611년     627명 사망
1612년      64명 사망
1625년  41313명 사망
1630년   1317명 사망
1636년  10400명 사망
1637년   3082명 사망
1638년    368명 사망
1647년   3597명 사망
1665년 68596명 사망

< 1610~66년 주별 런던 흑사병 사망자 추이 >

그 전에도 간헐적으로 흑사병 지속피해를 입어왔는데

1665년에 크게 터졌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런던에서는 흑사병이 예전부터 이미 간헐적으로 돌고 있었던 상황이란 이야기.




1664년, 

런던에서 그리 멀지 않은 

네덜란드의 항구도시 암스테르담에서도

흑사병이 대유행했습니다. 

< 자화상, 렘브란트, 1659 >

당시 네덜란드 사람들은 새로 운하를 팠는데

그것때문에 병이 돌게 된게 아닌가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도 무역도시 답게 '격리조치'를 익숙하게 시행.

배의 입항을 30일동안 막는 등의 조치를 취합니다. 

검역과 격리조치 외의 
네덜란드인들의 흑사병 대책은

위험한 도시에서 떠나는 정도였고, 

그중 특이한 것은 
신대륙에서 들여온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습니다. 
(...)

결과는 전체인구의 10% 정도 감소.

렘트란트는 튤립투자로 폭망한 상태에서 가족들을 흑사병으로 잃었죠.

암스테르담의 흑사병 대유행은 1666년까지 지속합니다. 





비슷한 시기

1665년 런던에서도 흑사병 사망자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같은 무역도시의 숙명이죠;

독토르 쉬나벨 폰 롬, 1656 >

이웃한 암스테르담의 소식도 심상치 않고

1665년 봄부터 흑사병 사망자가 발생하기 시작하자 런던 시당국은 해결방안을 찾아야했습니다. 

이 때 흑사병 전문의 '플레이그 독타'께서 런던에 찾아오십니다. 

그 양반이 대략 이런 조언을 합니다. 

'동물들이 병을 옮기니까 싹 죽이세요'
(나중에 이야기할 거지만 이게 틀린 진단이 아닙니다.)
런던 시당국은 그 조언을 받아들여서

개와 고양이들을 잡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짚을 점.

플레이그 독타께서는  '교회세력'으로서 '마녀와 마녀의 동료'라는 이유로 고양이를 지목했나요?

아니죠. '동물이 병을 옮기고 다닌다'고 지목한 것입니다. 

교회와도 상관없고 마녀와도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대개 유럽 흑사병 유행이라고 하면

1346~51년의 2차 대유행을 이야기하지만

런던 흑사병 대유행은 연대가 이미 1665년입니다. 

플레이그 독타가 1346년부터 활동한게 아니고

저 새부리가면으로 특징되는 의상이 개발된 게 1619년입니다. 

그전에 플레이그 독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플레이그 독타가 주로 활동한 시기는 

1346~51년 흑사병 대유행 시기가 아니라

16~17세기입니다. 

14세기 흑사병 대유행시기에는 딱히 플라그 독타라고 할 존재가 없었고

그 후 수백년간 간헐적으로 시달리다보니까 

그 경험이 축적되면서 출현한 것이었죠. 


< 흑사병 전문의께서 왕진오셨습니다. 사망선고 >

당시 흑사병의 전파경로나 원인, 치료 

어느 하나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었지만

수백년간 축적된 지식을 모았습니다. 

복장부터 신체를 외부로 차단하기 위해
온 몸을 덮은 옷에 장갑,
숨구멍을 허브로 채워넣고 보안경이 달린 새부리형태의 가면을 쓰죠.

물론 괴상한 진단이나 말도 안되는 치료도 했습니다. 

체액균형이론을 신봉하며 방혈이나 환자에게 쓴 거머리를 쓰고 또 쓰고 그랬죠.



이들은 '마녀와 마녀 종자'라고 해서 

'고양이'를 살처분하라고 한게 아니라

정확한 전파경로는 모르겠지만

'동물'에게 뭔가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동물'을 살처분 하라고 한거죠.

이들이 런던에서 '동물 살처분' 하라고 한 것은 그런 추론에 따른 것이었지

교회세력이나 마녀사냥과는 상관없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그런 생각을 했나?


< 지롤라모 프라카스토로 1478~1553 >

당시엔 다들 그랬지만 이 양반도 멀티플레이어였습니다. 

천문학자이시고 하고 의사이시기도 하며 등단까지 하신 당대의 지성인

< 전염, 전염성 질환 그리고 치료에 대하여, 1546>

그 의 저서에서 분류한 전염성 질환의 전염방식은

'접촉'에 의한 전염

'매개체'에 의한 전염

'원거리 전염' 
(아주 작은 병원성 유기체는 바람으로 운반이 될 수 있다라는 추론)

당시로서는 '세균'같은 것을 발견할 수 는 없었습니다만

그래도 수백년간 시달려오면서

나름 '무언가에 의해 질병이 전파된다'라는 추론까지는 했던 것입니다. 

19세기초에 그려진 그림입니다만

이 그림에서 주목할 부분은

군의관의 만류와 부관의 행동입니다. 

군의관은 나폴레옹이 환자를 만지는 것을 만류하고 있고

부관은 나폴레옹 등뒤에 숨어 있으며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있기도 합니다. 

더욱 극적인 장면은 나폴레옹이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환자를 만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대에도 이미

그런 행동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라는 것이 널리 인식되어 있기 때문에

나폴레옹의 행동이 더욱 '영웅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19세기초에도 역시 흑사병의 전파경로나 치료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없었지만

수백년간의 경험에 의해 '무언가'에 의해 전염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이야깁니다. 





1665년 플레이그 독타께서 런던시당국에

'동물 살처분'을 권한 것은 그동안 그런 추론에 따른 것이었지

교회에서 했다는 '마녀와 마녀종자'가 퍼뜨린다는 이야기에 휘둘려 살처분하라고 한게 아닙니다. 

런던시민 중에 '의사양반도 고양이를 잡으라고 하는구만 역시 마녀랑 한패들이었던게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을 수 는 있겠지만 






아무튼 

그래서 

런던시당국은 대대적인 살처분 작업에 착수하여

개 4만 마리와 고양이 20만 마리를 살처분합니다. 


믿기힘들정도로 많은 개와 고양이를 
잡아죽였단 이야긴데....
뭐 그렇다고 하니깐
그런 줄 알아야죠;



근데 항간에 돌고 있는 이야기에 따르자면 

이미 유럽에는 고양이의 씨가 말라있어야할텐데

런던에 고양이가 20만 마리나 살고 있었단 이야기잖아요?

대체 유럽인들은 고양이를 미워한 겁니까; 사랑한 겁니까;




아무튼 런던사람들은 병의 전파를 막는다고 생각하며

 개와 고양이를 수 없이 잡아댔습니다. 

'고양이'만 잡아죽였다는 것도 아니고

'개'도 잡아죽였다는 것에 주목. 

그러니까 '마녀'나 '마녀종자'와는 상관없이 진행된 동물 살처분이었단 이야기죠. 



런던의 개와 고양이를 대량으로 잡아죽인게 

1665년 7월 여름입니다. 

< 주별 흑사병 사망자 발생 추이 >

7월에 사망자수가 주당 최대 2000명 수준이었다면

8월 사망자수는 주당 4000명.

9월 사망자수가 주당 7000명 수준으로 증가합니다. 


그래프를 보면 초기에는 예전에 간헐적으로 유행하던때와 
사망자수가 크게 다르지 않았었습니다. 
오히려 적기까지 했죠.

그런데 사망자수가 전과 다르게 계속 증가했습니다. 


어째서 1665년에는 유난히 사망자수가 늘어난 것일까?

1625년에 비교하자면 여름에 절정을 찍고 하강했어야했는데 
어째서 가을에 접어들며 사망자 수가 늘어난 것일까?

왜 2달동안 사망자가 증가하기 시작한 것일까?

1656년과 1625년의 대처방식에 차이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7월에 취한 어떤 조치로 인해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7월에 개와 고양이를 '일시적'으로 대량으로 잡았으니

쥐의 뛰어난 번식력으로 쥐가 '일시적'으로 늘어났고

먹을게 많아진 벼룩이 '일시적'으로 늘어나면서

런던에서의 흑사병 확산 속도가 늘어난 것이 아닐까?

라는 가설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고양이살처분 -> 쥐 증가 -> 흑사병 피해확대'의 테크트리는 여기서 나온겁니다. 

항간의 속설은 이게 뻥튀기된거죠. 

1665년 런던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일어난 일을 두고 세운 가설이

 '유럽인구가 폭망한'  1346~51 대유행과 겹쳐지고

런던 흑사병 대유행과는 상관도 없는 마녀사냥까지 겹쳐지면서

'마녀사냥 -> 고양이 살처분 -> 쥐증가 -> 유럽인구 폭망'이라는 속설이 나온겁니다. 

그래서 따로따로 떼어내면 참이지만

붙여놓으면 거짓인 겁니다. 



1665년 런던 흑사병 유행은 마녀사냥과도 관계가 없고,

 고양이살처분하기전부터 흑사병은 돌고 있었죠.

고양이 살처분으로 쥐가 일시 증가한 탓이 아닐까 하는 가설은 있지만 

런던에서 일어나 국지적인 유행으로 인해 

유럽인구가 폭망하지는 않았습니다. 
30년 전쟁 ㄷㄷ



ㄱ. 고양이가 있었으면 흑사병을 막을 수 있었다 (X)

ㄴ. 고양이를 죽여서 흑사병이 퍼졌다 (X)

ㄴ. 고양이를 '일시적'으로 제거한 탓에 쥐가 '일시적'으로 급증, 돌고 있던 흑사병 피해가 커졌다. (O)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다른 가설도 있습니다. 

1664~5년 겨울이 유난히 포근했다. 
1665년 여름도 유난히 더웠다. 

더운 날씨가 쥐의 번식을 촉진했고, 
흑사병 피해가 증가했다. 

복합적으로 본다면

쥐가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갖춰졌는데,
거기에 천적 제거까지 인간이 해줬으니 쥐가 번성하고
먹을 것이 많아진 쥐벼룩도 늘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런던이 좁은 주거지에 과밀상태로 있었고
병이 돌기시작하면 격리조치가 안되면 사람이 사람에게 옮깁니다. 

이 시기는 의심환자에 대한 격리조치가 강하게 시행되던 때입니다만
현대에 비해 잘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죠.

런던에서도 암스테르담에서 하던대로
담배연기가 효험이 있다고 믿고 담배를 피우긴 했습니다만; 뭐;
건강을 해치는 담배 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







언급했지만 
당시 런던은 흔히 생각하는 흑사병에 허덕이는
 암흑기의 중세가 아닙니다. 

당시 런던의 정치상황은 
호국경 크롬웰이 물러나고 찰스2세가 복고한 상태였죠. 
(흑사병 유행동안 런던에서 솔즈베리로 튐)

< 아이작 뉴턴, 1642 ~ 1727>

당시 흑사병이 유행하던 런던을 떠나 시골로 피했던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런던의 인구과밀과 위생환경이 매우 나빴던 것은 말할 것도 없죠. 

존 스노우가 오염된 물펌프를 폐쇄한게 이 때로부터 200년 후의 일입니다. 

17세기가 현대보다 지식이 적을 수 는 있어도

우리세기 역시 위대한 세기다

당대 유럽을 떠들썩하게만 국왕을 참수(1649)한 청교도 혁명과

물리학마스터 아이작 뉴턴(1642~1727)과

프랜시스 베이컨의 냉동닭이 있던 시대였다고

다시는 17세기 영국을 무시하지 마라


 런던도 마지막 흑사병 대유행을 마치게 됩니다. 

결과는 전체 인구 15% 사망

확실히 인구가 반토막난 1346~51년 대유행때와는 다르죠.



 런던 흑사병 유행이 주목받게 된 이유는

그게 북서유럽권에서의 큰 규모의 유행으로는 '마지막'이었던 이유입니다. 
(따뜻한 남쪽의 프랑스와 에스파냐는 이후로도 피해를 입습니다)

그리고 기록을 매우 확실하게 남겼기에 연구자들이 달려들기 좋았고요.
그래서 관련 연구저작이 굉장히 많습니다. 
거기서 '개와 고양이 살처분'의 영향에 대한 가설이 나왔고
여기저기서 인용되었을 것은 뻔한 일이죠.

< 1666년 런던대화재 >

1665년 9월 절정을 찍었던 흑사병 사망자는 감소하면서 
겨울 이후 사망자는 별로 발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9월 런던 대화재 이후에는 자취를 감추었죠.


여기서 또 다른 가설이 나오는데

당시에는 흑사병의 전파경로나 대응책을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당대의 보건정책을 통해 흑사병이 차단되었다고 보기힘들다.

따라서 1666년에 있었던 어떤 특별한 변화로 인해 흑사병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쥐와 벼룩이 살기 좋았던 나무와 짚으로된 집에서 살던 사람들이

대화재로 인해 집을 잃고
쥐와 쥐벼룩은 낙원을 잃고

그 후 돌과 기와로 된 집을 새로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과거보다 쥐와 사람과의 사이가 멀어져서 흑사병과는 바이바이한 것은 아닐까? 하는게 그 가설입니다. 


런던에 고양이가 다시 살면서 흑사병이 사라졌다는게 아니라

쥐와 사람사이가 멀어지면서 런던에서 흑사병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죠.



by MessageOnly | 2013/12/09 17:53 | ■ 다른게 또 뭐있나.. | 트랙백(1)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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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기침 가래엔 용.각.산. at 2013/12/10 18:29

제목 : 흑사병과 고양이 살처분 (3)
&lt; 세계대전Z &gt; 좀비 아포칼립스를 다룬 가상소설이죠 중국 오지에서 괴질이 발견되었는데, 중국정부가 쉬쉬하는 동안 난민들이 전세계로 탈출하면서 바이러스가 전세계로 확산되고 말았고 전세계 인류들이 각지에서 바이러스와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들과 싸우는 이야기 예르시나 페스티스 페스트의 병원이라고 합니다. 를 옮긴다는 벼룩. 땅에 굴파고 사는 설치류들이 관련되어......more

Commented by 창검의 빛 at 2013/12/09 18:05
하나하나는 참인데 한꺼번에 뭉뚱그리면 구라.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3/12/10 18:47
결론 = 구라
Commented by DreamersFleet at 2013/12/09 18:57
막스 갈로의 <나폴레옹>에서는 나폴레용이 장군으로 조국을 방위해 주면 국내 정치인들이 모든 걸 망쳐놓는다며 나폴레옹이 전선을 포기하고 아예 정권을 잡기 위해 원정군을 놔두고 프랑스로 돌아가는 장면이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안락사" 문제와는 별도로, 동양의 오기의 고사를 생각하면 나폴레옹이 진짜 위문하러 갔을 수도 있었을 것 같긴 합니다.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3/12/10 20:02
나폴레옹이 귀국한 건 정권을 잡기위해서였지만 시리아 원정은 휘하 지휘관에게 맡길 수 도 있었죠. 그러나 남겨진 부대는 방치되었습니다.

꼬마하사관이 위문하러 갔으면 전염되서 죽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Commented by 토나이투 at 2013/12/09 19:01
그러니까 냥이들은 애굽에서 태어나는것이 신상에 좋을것입냥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3/12/10 18:48
오오 고양이님 오오
Commented by Ladcin at 2013/12/09 19:13
저 근데 1346~ 1351년 대유행은 왜 일어났나요?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3/12/10 18:49
고양이의 태업사태
Commented by 흐흐 at 2013/12/09 23:53
도둑고양이가 쥐를 잡아먹는 행동이 페스트를 막아준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그것들이 감염된 쥐와 접촉하면 훌륭한 흑사병의 매개체로 기능하거든요 그래도 예전에는 상식이 지배해서 이치에 맞는 정책(도둑고양이 살처분)을 폈는데 지금은 머저리 같은 냥빠 단체 놈들이 장악한 후로 반대하는 정론은 뭇매맞아 자취를 감춘지 오래입니다 줄여야 할 도둑고양이를 먹이를 주고 살처분하지 않고 TNR 시켜서 계속 살게 하다니요
Commented by 그래도 at 2013/12/10 00:02
tnr시키면 최소한 증가는 막을수있지않나요?고양이 학살보다는 인간적이고 나름 괜찮은 타협안같다고 생각했는데..
Commented by eu4 at 2013/12/10 01:04
조류독감유행한다고 비둘기 다 잡아 죽일기세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3/12/10 18:49
그렇습니다. 고양이는 페스트를 막아줄 수 없지요.

쥐의 개체를 줄이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지만 쥐를 다 잡는 것도 아니고 고양이 자신도 페스트의 매개체가 되니까요.
Commented by 흐흐 at 2013/12/10 00:06
그거 학계에서는 인정한 적 없습니다. 한국 땅에서는 접하는게 TNR 찬성하는 캣맘들 주장뿐이니까 그게 사실인 줄 아는거죠. 오히려 미국수의사학회와 미국질병관리본부, 호주수의사학회 등등 TNR 반대합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에서는 TNR을 실패한 방법으로 분류했구요. TNR은 학계의 주장이 아닌 alleycatsally spca 같은 외국 냥빠단체 주장이고 그걸 국내 냥빠단체가 따라한 거죠
Commented by 애쉬 at 2013/12/10 03:13
목숨의 위협 앞에서 사람은 대단히 떳떳하게 대량 살처분을 시행하는군요.... 아;;;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3/12/10 18:51
사람이 무서운 점은 그 와중에 사람도 죽인다는 거죠;;;

최근 조류독감 발생시 우리나라에서도 가금류 수십만 마리를 살처분하고, 야생조류도 살처분대상이 되었습니다. (멕시코는 800만 마리를 살처분한 적도 있네요.)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도 아닌 '구제역'같은 경우도 대대적인 살처분을 했고, 매몰했던게 얼마전이죠.
Commented by 흐흐 at 2013/12/10 07:34
이미 다른 동물들에 대해서는 당연하다고 여겨져 시행되고 있는 일입니다 마치 공기처럼 그 혜택을 국가가 무상으로 해 주어서 모르고 사셨을 뿐이죠 요상하게 도둑고양이가 그 대상에 속해 있다가 빠져나갓고 그 임무를 국가가 유기한 덕에 고양이 기르지도 않은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보고 있지요 쥐가 우글거리는 풍경과 도둑고양이가 우글거리는 풍경이나 더럽기는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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