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들와나 전투에서 영국군 패인 중 하나로 거론되는 탄약보급지연

 영국군이 줄루족 전사들에게 캐발살난 '이산들와나 전투'는 

100년이 훨씬 지난 현대에도 자주 언급되는 전투입니다. 

왜냐하면

우수한 화기로 무장한 근대식 군대가 

창과 방패로 무장한 원주민 군대에게 패한,

그것도 전멸해버린 

보기드문 기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1870년대

영국 제국주의자들은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만들기위해 여념이 없었고,

남아프리카의 독립국인 줄루왕국을 정복하러 나섰습니다. 



줄루왕국은 유명한 '샤카 줄루'가 세운 아프리카 왕국으로

선교사들을 통해 유럽의 문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곤 해도 유럽의 신식 무기를 많이 입수한 것은 아니었고

이미 구식이 된 머스킷 정도나 가지고 있던 정도로 

주된 무장은 창과 방패였던 전형적인 원주민 전사집단이었습니다. 

영국군과 줄루왕국군이 맞붙은 곳은 

남아프리카의 이산들와나

요런 동네인데요.

당시 전투상황과 비교해서 보면 됩니다. 

영국군이 등지고 있는 고지가 위 위성사진에도 나오는데

이산들와나 관련 그림을 보면 꼭 배경으로 나오죠.

< 줄루족의 '물소의 뿔' 전술 개념 >

줄루족이 영국군을 공략한 전술은

전통적인 '물소의 뿔' 전술로 주력은 중앙부대에 있고

적 측면을 기습하는 '뿔'로 구성되었습니다. 

이산들와나 전투는 그 줄루족 주도하에 자기들의 전술을 마음껏 뽐낸 전투였던 것이죠.



줄루족이 창과 방패를 든 전사들이었지만

숫자가 좀 많았습니다. 

줄루왕국의 왕인 케츠와요는 4만명의 전사들을 모았고

그 중 2만5천명을 이산들와나에 투입합니다. 

< 마티니-헨리 단발 후장식 라이플 >

영국군은 후장식 강선총으로 무장하고 

거기에 포병대, 기병대까지 포함된 잘 훈련된 집단이었습니다. 


당시 영국군이 식민지정복할 때 늘 그랬듯

이산들와나 전장에도

영국에서 고용하고 훈련시킨 원주민 군대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산들와나에 있는 영국군 총 병력은

1700명+






그런 영국군이 어떻게 털리는가는 영화에서 나온 전투장면을 참고로 보세요.

CG없는 시대에 나온 영화라 박력이 장난아닙니다. 

1979년에 전투 100주년으로 나온 작품이죠. 


영화적 상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산들와나 전투는 서구에서 굉장히 인기있는 전투이기 때문에

관련 연구가 많고 그런 고증이 반영된 영화입니다. 



영상이 둘로 나뉘어져 있는데

첫번째 영상은 전투 초반 줄루족 학살타임.

두번째 영상은 영국군 개발살타임.

이산들와나 전투에 관한 좀더 자세한 이야기는 이곳에서 





전투결과

영국군 1329명 전사

모조리! 쓸어버렸던 것입니다. 

아예,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도륙(屠戮)을 내버렸던 것이지요.



줄루족 전사들이 승리한 것이지만

줄루족 전사들의 승리로 기억되기 보다는

영국군의 패배로 기억되는 사건입니다. 
스포츠신문 1면 선동렬 홈런 허용



영국군이 패한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줄루전사들이 엄청 잘 싸운거죠.

1700명+ VS 20000명+

이기는 하지만

줄루족 전사들의 숫적 우세는 별게 아닌게

당시 영국군에게 숫적열세는 큰 장애요소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전역에서 더 많은 적과 심지어 같은 화기를 갖춘 적과의 싸움에서도  승리를 해왔습니다. 

단순히 줄루족 전사들이 숫적으로 우세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던 건 아니죠. 

일부 머스킷 무장도 있었지만 대부분 창과 방패로 무장한 전사들이
총과 화포로 무장한 군대를 물리쳤다... 
아무래도 리듬과 파워 그리고 집중력에서 앞섰다고 밖에...


< 물소의 뿔에 혼쭐난 '라이온' >

 지형에 익숙했기에 영국군이 개활지에서 포위되고 있는 줄도 모르게 은밀하게 기동했다거나 

정면에서만 닥돌한게 아니라 정예병력은 우회하여 측면을 공격했다거나

빠른 돌격으로 거리를 좁혀 냉병기 전투를 강요했다거나 
(맨발로 하루 80km씩 달리도록 훈련했다니; 뭐;)

등등

영국군은 영국군대로

애초에 원정군 병력을 분산해서 이동중이라 병력집중이 안되었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전투의 주도권을 잡지 못해 당황하셨고

줄루군 공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대열을 너무 퍼뜨렸고

이로인해 보급마차와 전열보병의 거리가 멀어졌고

길고 옅어진 전열의 일제사격 위력은 약해졌고

전투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줄루족전사들의 접근을 빠르게 허용해버렸고

등등

그렇게해서 탈탈 털려버렸습니다. 




여기에 탄약보급이 제대로 안되었기에 그랬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영국군의 비대칭전력은 당연히 월등한 '화력'인데 

화력우세를 위해 사격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사격이 유지 되지 못하고 지연되어 줄루족 전사들의 접근을 허용했다는 가설입니다. 



위 영상을 보면 보급관이 탄약배급을 거부하고 돌려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너네 중대 보급마차가서 달라고 해 저리 껒!'

보급마차에 올라앉아서 혼자 박스따고있고 그 마저도 달라는대로 제대로 안 주죠.

당시 레드코트가 사격에 열중하면 
분당 10~12발이 소모되었다고 합니다. 
기본 휴대량은 80발.

이미 전투는 줄루족의 의도대로 시작되었고 빠르게 진행중이었으며

준비가 덜된 영국군이 탄약배급을 저런식으로 했다는건...;



그럼 저 병사들은 왜 자기네 중대보급마차가 아닌 엉뚱한 보급마차에 갔나?

병사들 잘못인가?

전투가 갑작스럽게 전개되어 각 중대 배치가 제멋대로였고,

가장 가까운 보급마차 찾아간게 죄라면 죄겠죠;


결국 탄약을 다 내주지도 못하고 그대로 끝나버립니다. 



탄약을 다 소모했더라도 줄루족 전사들의 돌격을 막아냈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만

탄약배분이 원활했다면 그럴 가능성은 높아지죠.

곧바로 이어진 로크스 드리프트 전투를 보면

불과 139명(+환자 35명)의 병력으로 

4000명의 줄루족 전사들의 공격을 방어해냅니다. 

게다가 완전히 고립되서 증원을 기대할 수 도 없었던 상황.

이 때 제1성공요인은 인공장애물로 형성한 방어진지구축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국면 국면의 승리는 화력투사의 집중에 있었습니다. 
역시 싸움은 리듬과 파워 그리고 집중력




이것은 먼저(1964년작) 만들어진 영화인데

이 영화는 로크스 드리프트 전투만을 다루고 있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게;

이산들와나는 '백인'들이 캐발린 내용이고

로크스 드리프트 전투는 백인들의 '불굴의 의지'을 보여준거라

먼저 나오는게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중대병력만으로 방어할 수 있었던 것은 '화력'이 뒷받침 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죠.


로크스 드리프트 전투에서 승리한 영국군의 전투 종료 시점 잔여 발수는 고작 900발이었습니다. 

그러니까 1인당 6~7발이 끝인 상황.

 = 일제사격 가능횟수 6

줄루족 전사들이 좀더 희생을 각오했더라면 탄약을 완전히 소모하여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죠.

로크스 드리프트에 있던 중대병력이 보유한 탄약은 2만발이었습니다. 

다 써버린거죠.


반면 이산들와나 캠프에서 캐발린 영국군이 보유했던 실탄은 40만발.

전체적으로는 실탄이 넘쳐났는데, 
일선 보급이 제대로 안되서 병사들은 실탄부족을 느끼고 사기가 하락↓

또 달라는대로 주지도 않고 권위로 깔아뭉개버림;



이렇게 영화에서 대놓고 까이는 양반은....실존인물입니다. 

실제사건을 다뤘으니 극중 인물들도 실존인물들을 반영하는게 당연하죠;

< 팀의 화력을 책임진다! 중대보급관! 블룸필드! >

에드워드 블룸필드라고

이산들와나 전투 당시 2대대 중대 보급관이었습니다.

계급은 우리식으로 하면 '원사'

그러니까 군생활로 잔뼈가 굵은, 
병사들에게 꼬장꼬장하게 대할 수 있는 지위를 가진 탑 부사관이었다는 이야기죠;
극중에서 못 개기고 보급병한테 하소연하는 이유가 다 그렇고 그런거;

이 양반이 저렇게 까임의 대상이 된 이유는

결정적으로 '증언'이 나와서 그렇습니다. -ㅠ-;

생존자가 극히 적기 때문에 

생존자들의 증언이 절대적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는데

생존 장교 중 한 명이 그렇게 이야기를 했거든요.

아예 이름까지 특정해서 탄약배급에 꼬장꼬장하게 나왔다고요.

극중에서 풀네임으로 나오진 않지만 '블룸필드'라고 나오는데는 이런 이유가 있는겁니다;

그게 누군지는 뻔한거죠;




탄약상자의 설계자체도 논란인데

영화에서도 잘 나오고 있지만

습기차단을 위해 주석으로 밀봉된 양철박스를 두꺼운 목재로 감싸고 있습니다. 

상단 중앙부에 밀어서 잠금해제할 수 있는 덮개가 있는데

이 덮개가 나사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이걸 풀려면 드라이버로 돌려서 풀어야 한다는 것인데

영화에서 보면 혼자 드라이버 돌리고 

그걸 또 하나씩 하나씩 꺼내서 나눠주죠.

둘이서 박스까고 박스채 날라도 시원찮을 판에;

< 당시 사용된 것과 유사한 형태의 탄약상자 >

이와 관련하여 지적된 부분은 

'탄약상자 개봉이 매우 불편하다'

'이러한 불편한 원활한 탄약배급에 장애가 된다'

'탄약배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화력투사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아서 줄루전사들의 접근을 허용하게 된다'


실탄 보존에는 좋았겠지만

급작스런 전투전개시에는 결함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이야기.
< 한국남성들에게 익숙한 840발들이 탄통 >

이 탄약통은 아주 편리하죠.

개폐가 원터치로 쉽고 빠르게~

특히 저 경우는 10발씩 클립이 끼워져 있어서 탄창에 끼워넣기가 편리한 구조고요.

물론 이것들도 나무상자에 포장되어 있는 것은 마찬가집니다. 
그걸 뜯는 것은 병기관과 보급병의 몫이지만
그건 수십만발씩 관리하는 탄약고 차원의 일이죠.
수령할 때는 손잡이들고 나르면 되고요.




< 마더러시아식 탄약포장>

속터지는 통조림따개에 실탄은 또 하나씩 하나씩.

근데 이걸 너무 뭐라하기도 뭐한게

이건 1955년 냉전시기 '치장용'으로 이렇게 만들어진거죠.

보존성을 높이기위해 편의성따윈 무시해버린 케이스니;




워낙 인기(?)있는 전투다보니

영화는 당연하고 다큐도 제작되죠.

여기서는 탄약상자가 열기 불편해서 탄약배급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설을 부정합니다. 

탄약상자의 설계가 열기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병사들은 개머리판으로 덮개를 쳐서 열었다.

그렇게 되면 고정나사가 휘거나 부러지게 되는데

이산들와나 현지에서 그렇게 휘어진 나사가 실제로 발견되었다. 

이것은 일일이 드라이버로 돌리면서 풀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부정하는 근거가 된다.

라는 것이죠. 


그리고 영국군의 사격이 지연되었다고 하면

그것은 탄약분배문제가 아니라

지속사격에 의해 총열이 과열되어 급탄 불량이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것.



* 탄약상자에 'FOR NATAL'이라고 써있는데

나탈은 당시 영국군이 점령하고 있던 지역으로 

이산들와나에 참전한 영국군 휘하 개척민지원부대와 원주민구성부대가 나탈출신입니다. 



영화에서도 개머리판으로 까는 장면은 나옵니다. 

극에서는 절충적으로 반영한거죠.

초반에 보급관 혼자 드라이버로 까고 나눠주다가

사태가 급박해지니 개머리판으로 까기 시작했다는 것으로요. 



극중 블룸필드도 '태만한' 사람으로는 그려지지 않습니다. 

'융통성'이 없고 '고집'있는 인물로 그려질뿐이죠. 

영화에서는 이 꼬장꼬장했다는 양반만 나오고 있지만

당시 이산들와나 전투에 참전한 보급관은 에드워드 블룸필드를 포함해서 6명입니다. 

이산들와나 전투를 수행한 24보병연대의 병력이 6개 중대였으니 당연히 6명이죠. 

잘 안나눠줬다고 언급되어 비난받은 대상은 에드워드 블룸필드뿐인데

다른 보급관들도 그랬을 수 있고, 아닐 수 도 있죠. 




영국군 탄약보급지연을 부정하는 입장에서는

영국군의 탄약분배에는 다른 전역에서 있었던 탄약분배와 비슷한 수준이었을 것이고

줄루족 전사들과의 교전에서 이것은 크게 부각될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줄루족 전사들의 전술과 개개인의 전투능력을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고

패배요인을 영국군의 부실에서만 찾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하는 입장입니다. 



줄루족 전사들의 포풍기습에 탄약분배할 시간조차도 부족했다거나

탄약배급이 딱히 원활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줄루족 전사들이 너무 빨랐다거나

급박한 사태에 직면하여 일부 부사관의 융통성없는 행동으로 탄약배급이 원활하지 않았다거나

 워낙에 탈탈털려버린지라 정확하게 알 수 가 없지만

확실한 것은 40만발이나 보유하고 있던 24보병연대가 
창과 방패로 무장한 줄루족전사들을 상대로
실탄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털렸다는것입니다.



어쨌든 긍정론이나 부정론이나 모두 동의하는 것은

탄약은 적시에 원활하게 보급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The Battle of Isandlwana
                  South Africa 1878-9

위키백과 : Battle of Isandlwana
               Battle of Rorke's Drift
by MessageOnly | 2013/12/25 14:24 | ■ Marine Corps | 트랙백 | 덧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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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Allenait at 2013/12/25 14:46
탄약 중요하죠. 탄약 없으면 그냥 몽둥이 휘두르는 병력으로 전락하는게 현대 군대인데..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3/12/25 14:58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UNMISS가 대비차원에서 한빛부대에 탄약보급을 한 것이죠.

실전 상황에서 일본애들 실탄을 쓴다고 해서 뭐라고 한다면 '너네 보급마차가서 달라고 해!'식의 사고방식과 다를게 없는거죠. 부대단위로 볼게 아니라 사령부에서 큰 그림을 놓고 볼 일인데요.
Commented by 에이브군 at 2013/12/25 15:28
고로 우리는 독터 개틀링과 세인트 막심 그리고 보급의 혁신인 두돈반을 찬양해야합니다. 우리 기도 합시다.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3/12/25 15:43
패배를 용납할 수 없었던 영국군이 결국 개틀링까지 몰고가서 줄루족을 다 날려버렸으니;;
Commented by Real at 2013/12/25 16:22
군수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전투지요. 아무리 첨단군대라고 해도 군수가 원활하지 못하면 개박살난다는 역사적 교훈을 각인시켜준 전투니까요.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4/01/01 17:17
창병이 만년 수련하지 않아도 총병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죠;
Commented by Ladcin at 2013/12/25 16:56
보급전의 역사와 저 전투를 보면 역시 보급만큼 중요한건 없다는걸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야이 줄루군 놈들 ㅅㅋ야, 내가 지금 개틀링을 들고가서 늬놈들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갔어!' 가 되는거군요(...)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4/01/01 17:17
어설프게 이겼으면 줄루족도 영국 용병에 편입되고 그랬을텐데;
복수를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참패를 당한 케이스니;
Commented by Ladcin at 2014/01/01 17:53
만약에 편입됐다면 후에 구루카 용병과 같이 무서운 존재가 됐을수도 있군요
Commented by 이명준 at 2013/12/25 16:56
중요한거는 남수단의 대한민국 평화유지군은 공병이다 보니 대전차화기나 박격포나 야포 같은 중화기가 없는데 반군은 탱크까지 끌고 다니니 잘못되면 엄청 큰일 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반군이 정신나가지 않는 이상 UN평화유지군을 깔아뭉게려고 들지는 않겠지만요 .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4/01/01 17:17
휴전합의까지는 해놨으니 거기서 UN평화유지군을 건드리면 서로 곤란해지죠. 교전은 계속한다고 말은 했어도 -ㅠ-
Commented by 홍차도둑 at 2013/12/25 23:18
고대 로마인들이 '보급' '군수' 관련해서 사용한 단어가 괜히 '아르스' 즉...'아트' 가 괜한 말이 아니지요.
일을 해야 할 때 일에 필요한 것이 없으면 ... 캐안습만 나옵니다ㅣ.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4/01/01 17:17
로마인들이 그렇게 사용했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긁적 at 2013/12/26 12:54
역시 군수는 중요하죠. 저게 잘 안되면 무기가 있어봐야 쓰지를 못하게 되니. 포스트 잘 봤습니다.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4/01/01 17:17
잘봐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푸른별출장자 at 2013/12/26 22:34
조선의 총병 4만이 겨우 6천도 안되는 청의 군대 그중에서도 400의 기병대에게 탈탈 털린 쌍령 전투도 있습니다.

그 원인이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병사들이 사거리가 되지 않는 거리의 적에게도 발사를 해대는 통에
보급책임을 맡은 썬비장수 하나가 겨우 10발 발사분의 화약만 총병에게 나눠줘서
정작 청 기병대가 돌진해 올 때는 총을 쏠 수가 없었다는 슬픈 이야기...

당시에 이들 제대로 훈련되지 않았던 사만 총병대와 이들을 이끌던 문관출신의 장수들이 작전과 보급에 실패하는 총체적 부실로 인해
남한산성에서 임금 없다 까꿍하던 인조는 지원병이 없어서 결국 GG 쳤죠...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4/01/01 17:18
맞아요. 조선의 쌍령전투가 있었죠.
후방에 쌓아놓으면 뭐합니까;
전방에서 쓸 수 있게 해야죠;
Commented by Megane at 2014/01/01 03:00
이런~
새해인사하려 왔다가 글 읽고서 멍~ 때리다가 창을 닫고 나니, 앗! 아직 인사를~!!
결국 두 번째 다시 들러서 인사드립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한 2014년 되세요. ^^: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4/01/01 17:18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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