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에 나온 세계지도는 고증오류입니다.에 이어서
< 마르터 묄터, 1507 >
< 메르카토르 1569 >
< 오르텔리우스 1570 >
제작연도를 보면 임진란이 일어난 1592년에
풍신수길이 실제 눈으로 볼 수 있는 범위에 들어가지만
이런 지도는 <징비록>에서 쓸래야 쓸 수 가 없습니다.
위 지도에서 아시아 부분을 확대해서 보면 이렇습니다.
아예 '조선'이란 존재가 없어요.
1570년 이전 서양지도에는 조선은 섬도 아니고 아예 존재자체가 없었습니다.
일본은 큰 섬으로 존재하지만.
이렇게 아시아 부분이 워낙 부실하다보니
조선을 넘어 명을, 명을 넘어 천축국까지 가겠다는
풍신수길의 야망을 표현하기에는 매우 부족하니
그렇게 쓰기에는 적절하지 않죠.
< 조선의 천하도지도, 1700년대 후반 >
드라마 <징비록> 소품 원본이 되었을 이 지도는
아시아 묘사가 뚜렷하기 때문에 그런 연출이 가능한 면이 있죠.
시대적으로 200년 뒤에 나왔지만
그런 것 때문에 소품으로 투입되었던 것일겁니다.
< 곤여만국전도, 1602 >
사실 약 200년 후의 작품임에도 천하도지도는
곤여만국전도보다 디테일이 좀 떨어집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두루뭉술하고 둥글둥글한 외곽선이
당대에 있을 법한 고지도라는 이미지 연출에는 좋기는 했을거라 생각합니다.
위도, 경도도 그런 생각으로 의도적으로 제거했겠죠.
제 생각에 <징비록> 제작진은
일본은 이미 서양과의 교류를 통해 '세계'에 대한 인식을 하고 있었고
조선은 성리학에 사로잡혀 우물안 개구리와 같이 시각이 좁았다'
라는 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론 그렇게까진 아니었지만)
드라마 <징비록>에 쓸만한 세계지도는 아예 없는걸까하고 찾아보면
< 일본지도 병풍 >
비슷한 시기에 나온 일본지도 수준이 이렇습니다.
디테일은 많이 떨어지죠.
근데 이 지도가 의미가 있는게
금박이 입혀진 고급스러운 느낌이
태합 앞에 두기에는 적절합니다.
그리고 북해도는 아직 미지의 세계로 인식하고 있던 당시 일본의 인식을 확실하게 엿볼 수 있죠.
(북해도는 미지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일본이 서양과 교류하며 세계지도에 일본이 반영이 되었어도
북해도는 계속 생략되고 있었습니다.)
이 지도 병풍을 보면
병풍 왼쪽 끄트머리를 보면 조선땅이 보입니다.
그 위로는 구름이 끼어있고 더 이상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듯 하지요.
어차피 주인공이 '일본'인 만큼
지도에서 조선을 다 묘사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걸 보다보면 아예 이런 '화풍'으로
새롭게 조선과 중국을 그리는 식으로 해도 될 듯 싶죠.
그렇게 연출을 한다고 하면
병풍을 추가한다거나 가려져 있던 조선과 명을 드러내보이면서
부하들 앞에서 야망을 펴보이는 식으로 할 수 도 있겠고요.
< 세계지도 병풍 >
그리고 세계지도 형태로 투입한다고 하면 이것도 고려해볼만 합니다.
이 지도는 '서양식지도죠.
곤여만국전도처럼 아시아가 중심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과 교류하고 있던 일본'이라는 이미지연출이 가능합니다.
이것도 역시 병풍이고 금박을 입혀 일본식으로 꾸몄죠.
남만느낌이 물씬 풍기는 일본식 병풍이라면
풍신수길 앞에 두기 제격이죠.
게다가 이 지도는 제작연도가 '불명'입니다.
그래서 연도에 사로잡히지가 않아요.
물론
조선이 반도로 붙어있는 걸 볼 때 꽤 아슬아슬하죠.
최대한 높게 잡아야 1590년대 후반 정도까지 가능해집니다.
1602년 곤여만국전도가 출현한 이후에는
그것이 동아시아권에서 '세계지도'의 패자가 되버리기 때문에
이후 동아시아에서 제작유통되는 세계지도들은 대개 곤여만국전도의 아류를 벗어날 수 가 없게 됩니다.
그런데 위 지도는 곤여만국전도의 철학이 전혀 라고 할 만큼 반영되어 있지 않죠.
그리고 지도 하단부를 보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과 남극대륙의 윤곽이 많이 다른데
사실
곤여만국전도나 천하도지도에서
등장하는 남부의 '묵와랍니가'의 정체는
서양인들이 아직 탐험해보지는 않았지만
남쪽에 거대한 대륙이 있을것이라는 관념적 대상으로 그려진 남대륙입니다.
'묵와랍니가'라는 음차자체가
'마젤라니카'에서 온거거든요.
Magellanica
마젤란의 땅.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남아메리카 끝을 통과하면서
전설상의 남부대륙에 가장 가깝게 항해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그런 이름이 붙게 된거죠.
1533년부터 1640년대까지 제작된 서양식 지도에는
이 관념상의 남대륙이 꾸준히 그려지는데요
유럽인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처음 발견한 1606년 이후부터는
대략의 윤곽이 잡혀나가면서 조정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 프레드릭 위트, 1665>
이 시점이 되면 '호주'의 해안선이 뚜렷하게 그려지기 시작합니다.
근데 그 탐험의 내용을 모르는 조선에서는
제임스쿡이 오세아니아를 누비고 다니는 와중에도
곤여만국전도로 터잡아
여전히 '묵와랍니가'가 담긴 천하도지도를 그렸던 것이고요.
그러니까 지도상에 존재한 '묵와랍니가'는 관념상의 남대륙일 뿐이지
정확하게 '오스트레일리아'나 '남극'을 지칭하는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지도병풍이 다소 유리한 면이 있는 것입니다.
곤여만국전도(1602년)의 영향권에서 자유롭고
오스트레일리아 지리상의 발견(1606년)을 기준으로 하면
여전히 관념상의 남대륙이 표현된 서양식 지도이기 때문에
무리하게 집어넣으면 아슬아슬하게 넣을 수 는 있는 수준이 된다는 거죠.
물론 이것도 여러가지 따지다보면 무리가 있긴 합니다.
1606년 호주에 최초 도착했다고 해도 아주 일부분에 불과했기 때문에
1640년대 쯤이 되어야 대략의 윤곽이 나옵니다.
여기선 제작연도가 '불명'이라는 점이 역으로 작용해서
1640년대까지도 확장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죠.
하지만
1700년대 후반 조선제 세계지도를 1592년 무대에 등장시키는 것보다는 훨씬 (...)
다른 단점이라면
족자에 비해 병풍의 제작비용은 많이 들어가는게 사실이고
거기에 금박느낌까지 살리려고 하면 아무래도 그 만큼 비용이 더 들어가겠죠;
예산 때문에 생략에 생략을 거듭하는 제작진 입장에서 그렇게 공들이기도 힘들겁니다.
사실 천하도지도를 써먹은 것만 해도 나름 신경은 쓴거겠죠;
두고두고 쓸거면 모를까 몇 번 쓰지도 않을거 그렇게 공들이긴 좀 그렇고....
존재한다면 차라리 일본에서 만들어서 써먹어야하는 소품이니까요.
천하도지도는 사실 좀 아깝습니다.
어차피 세계지도에 위도 경도 반영하는 것은 당대에는 당연한 정도의 일이었고
나중에 정조 시대 드라마 제작할 때 조선의 과학수준을 이야기하기에 좋은 소품이니까
그렇게 또 써먹을 수 도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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