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에 나오는 지명 문제

드라마 <징비록>에서

풍신수길이 발바닥에 먹물을 묻혀 발도장을 찍는 장면이 있었죠.

이걸 캡쳐해놓은 걸 보게되었는데

이렇게 고화질판 캡쳐를 보게 되니 방송때에는 볼 수 없었던 것까지 볼 수 있네요. 



이 지도는 여러모로 어처구니가 없는 지도죠. 

해안선 윤곽이 현대 지도에 필적할 정도인게 그 첫째인데

정작 그 내용이 개판인게 두번째입니다. 

연두색 사각형 안을 잘 보시면

대동강 물줄기가 히리비리한 것도 문제지만

평양, 개성 위치가 영 요상하죠. 

평양은 서해안쪽으로 치우쳐야하는데 내륙 깊숙히 들어앉아있고

개성은 경기도를 벗어나 황해도로 이전했습니다. 


전라도 전주-장수-남원 트라이앵글을 보면

전주는 전남 장성 위치에 들어 있고 남원은 순천정도 되겠네요. 


해안선은 현대 지도에 필적하는데 지명표기는 실제 위치와는 영 따로노는 요상한 상황.

일부러 부정확하게 해서 옛날 지도 느낌을 내려고 한 것일까요? (...)


다음은 빨간 원에 주목


漢城

大邱



요 두 지명이 걸립니다. 

한성과 대구.


이 두 곳이 왜 문제냐 하면

먼저 한성.

< 해좌전도 경기도부분 확대 >

조선의 지도에서는

여간해서는 한성을 '한성'이라고 적지 않습니다. 

임금님하께서 계시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보니

빨간 원으로 강조표시를 하고 


이라고 하고 있죠?

서울, 수도, 도읍 이런 뜻을 가진 한자죠.

< 천하도 경기 부분 >


< 여지도 경기도 부분 >


< 조선팔도여지전도 경기도 부분 >


< 동국지도 >


< 여지도 중 아국총도 >

웬만해선 京입니다.

< 조선국 팔도통합도 >

조선지도에서 '서울'을 찾아보면

다른 표기보다는 '京'으로 표기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물론 京으로 일괄 통일되어 있는건 아니죠.


< 신증동국여지승람 중 동람도의 팔도총도 >

여기선 京 이라고 짧게 쓰지 않고

京都(경도) 라고 쓰고 있습니다.


근데 그게 그거죠;



'경도' 하면 일본의 옛 수도 교토(京都)가 연상되는군요. 

그런겁니다. 

중국, 일본애들도 수도를 칭할 때 ○京, 京都 이런거죠. 

도쿄도 東京 이잖아요. 동쪽수도.

중국 수도 베이징?

北京 북쪽에 있는 수도. 북경.

평양도 한때는 서경, 경주는 동경.

京이 우리말로 서울이잖아요;

일찌기 중앙집권체제가 자리잡힌 동아시아권에선

현지 고유 지명을 계속 유지하기보다는

도읍지 자체를 '京'이라고 인식하고 대우해왔던거죠.


< 조선팔도지도 >

심지어 일본에서 만든 지도에서조차 이렇습니다. 

이게 1785년에 제작된 지도인데요. 

확대해서 보면 이렇습니다. 

京師(경사)

그냥 다른거 없고 '수도'라는 의미입니다. 


< 광여도 중 도성도 >

그리고

'도성(都城)'이라는 표현도 있죠. 

< 도성삼군문분계지도 >


드라마보면 굉장히 자주 쓰이는 표현이죠

'즌하 어찌 도성을 버리고 가시나이까'

여기서 

'즌하 어찌 한성을 버리고 가시나이까'

이래버리면 뭔가 어색하죠.


< 수선전도 >

首善

수도의 首입니다. 

善은 뭔고하니

사기에 나오는 

建首善自京師

'으뜸가는 선을 건설함은 서울에서 시작한다'

에서 따와서 저렇게 이름을 붙인겁니다. 

京師



서울, 수도자체를 가리키는 표현들이 다양해서

경도, 경사, 경성, 왕경, 왕도, 왕성, 도성 등등등 이 있습니다.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는 황도(皇都), 황성(皇城)으로 지칭하기까지 함)


경성(京城)의 경우 일제강점기때 한정적으로 쓰인 이름으로 생각할 수 도 있지만

조선시대에 서울을 지칭할 때 '경성(京城)'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습니다. 

여기서는 '지명'으로서의 지칭이 아니라

도성, 경성, 경사 등과 같이 '수도 서울'을 일컫는 흔한 표현 중의 하나였던 것이죠. 

조선시대로 타임슬립해서 서울을 지칭해 말할 때 '경성'이라고 해도 아무 문제 없는겁니다. 

일제강점기 때의 경성은 '지명'으로서의 개칭이라 문제가 된거구요.



'한성'이나 '한양'은 지명인데

이 둘은 수도라는 의미가 아닌 서울(지명)의 이명.

서울의 옛 이름인 '한양'의 경우는 실제로 쓰입니다. 

< 한양도 >

조선시대를 배경으로한 영화나 드라마같은 걸 보면

'한양'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 한양도 >

지명 자체를 이야기할 때는

'한성'의 쓰임보다는 '한양'의 쓰임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 한양도 >

한양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경우는 상당히 많죠. 

사실 한양(漢陽)은 고려 대의 명칭으로

조선을 개창하고 수도를 옮기면서

한양을 한성으로 개칭합니다. 

근데 이게 잘 보시면 '한성부'죠. 

'한양부'를 '한성부로 고치다.


조선에서 府는 도시권역에서 좀 큰 도시를 '부'로 대우해줬습니다. 

조선 초기 한성부 외에 부가 있던 곳은 

개성부, 경주부, 평양부, 전주부, 함흥부 이렇게 다섯 곳을 '부'로 삼아 일종의 광역시 취급을 해줍니다. 

네임드 도시만 부가 될 수 있었는데 

원래 태조 이성계의 출신지인 영흥도 영흥부로 시작은 했지만 
'조사의의 난'때문에 반란이 일어난 영흥에서 부를 떼고 함흥이 부가 됩니다. 

나중에 부로 승격하는 고을은 계속 늘어가게 되고요. 


이렇게 한양부를 한성부를 개칭하기는 했는데 

'한성'자체는 '한성부'로 쓰일 때나 주로 사용되는 이름으로 

그 자체가 지명으로 쓰인 것은 좀 약한 편이었습니다. 

이마저도 '한성부(漢城府)'라고 해야할 것을 

'경조(京兆)'라고 돌려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동여도 >

京兆 = 한성부(漢城府)

京兆 五部는 경조(=한성부)의 다섯개 부(部)를 말하는 것으로 

부는 오늘날의 '구'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중앙, 동서남북 5개의 부를 두고 그 아래 또 방을 둬서 구역을 나눈거죠.


어쨌든 '경조'라고 쓰지 한성이라고는 하지 않았죠.

< 한성부 >

어? 여기에 '漢城'이라고 똑똑히 나오지 않느냐!

그렇군요. 

하지만 이것은 '한성'이 아닙니다. 

한성이라고 나온것 아니라

'한성부'

라고 나온겁니다. 

'한성' 하고 '한성부'는 같으면서도 다른겁니다. 

이거는 예를 들어서(실제와는 다르지만) 'New York'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New York City'라고는 지도에 써도 

'New York'이라고는 지도에 안 쓰는 거랑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디까지나 '한성부'라고 되어 있지

'한성'이라고 된건 아닌거.

< 신증동국여지승람 중 동람도의 팔도총도 >

이 동람도 중에

경기도 부분을 보면

< 신증동국여지승람 중 동람도의 경기도 >

역시 한성(漢城)이 아니라 한성부(漢城府)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쩌다가 '한성'이 나오긴 하지만

그것은 '한성부'로 나올 때 그 부분으로 나오는거죠. 


정리하면

수도자체를 지칭하는 '京'과 그와 비슷한 호칭들인 경사, 도성 등으로 표기하는게 주류이고

어쩌다 '한양'이라고 하는 경우는 꽤 되는데

'한성'은 굉장히 보기 어렵고 

그 마저도 '한성부'로 쓴다 이겁니다. 

그래서 결론은,

 지도에서 '한성'이라고만 하는 것은 당대 상식과는 맞지 않는 표기법이다. 

라는 거구요.




그 다음 

대구.

大邱

< 大邱市街, 1903년 >

< 영남읍지 중 大邱府邑地圖, 1895 >

< 아국총도, 조선 정조시기 >

확대

< 동국지도 중 경상도 , 18세기 >

< 신증동국여지승람 중 동람도의 경상도, 16세기 판본 >

어느새 大邱大丘가 되었죠.


대구는 원래 대구가 아니라 대구였습니다. 
(大邱는 원래 大가 아니라 大였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원래 大였는데

조선에 유교탈레반들이 가득해지다보니

'공자님의 이름인 를 함부로 쓰는게 말이나 되느냐!'며
(공자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어서 높여서 '子'를 붙여 칭하는 판이니)

고을이름에 붙은 '丘'를 떼어달라고 청원합니다.



영남 유림들을 고깝게 본 영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야이 십선비들아!
중국에서도 안 하는 짓거리를 늬들이 왜 한다고 나서니?
그리고 그렇게 중요한 거면 3백년동안 대체 뭐하고 있었다니?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그래 진짜 짜증나게!


그러던게 영조가 승하한 이후에

슬그머니 '丘 피휘신청'이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 아아 영남에 반역의 기운이 가득해.jpg >

이리하야

에서 로 바꾸어달라는

유림의 오랜 바람이 마침내 이뤄졌다고 합니다그려~ 




하지만 이 때 大邱로 바꾼다고 하긴 했는데

이후의 기록물이나 지도 디벼보면

정조 이후에도 여전히 大丘라고 된 경우가 많고

철종실록에서도 大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정조 ~ 철종 실록을 보면 大丘와 大邱가 혼재되어 있죠. 

(오늘날에도 Taegu에서 Daegu로 영문표기를 바꿨다고는 하지만
언제 전부 Daegu로 바뀌겠습니까; )



이것도 실질적으론 정조대가 아니라 정조실록이 만들어진 시점인 순조대에 바뀌었다고 할 수 도 있겠죠.

정조실록에 처음 나타난 년도는 정조 2년(1778년)이지만 

정조실록이 편찬된 년도는 순조 5년(1805년)이니까요.




근데 1592년인데 이미 大邱.
풍신수길의 선견지명

이로써 <징비록> 지도들이 시간을 달린다는 것이 다시한번 증명되었군요.
알고보니 풍신수길이 십선비라고 합니다. 글 내려주세요.



18세기 이전에는 大邱라는 지명이 있을 수 가 없지요.

그래서 대구를 大丘라고 하는가

 大邱라고 하는가에 따라

정조시대 전후의 물건이라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감정의 주요 포인트가 됩니다.

1. 고지도 감정이 들어왔는데 大丘라고 되어 있다.

→ 음...정조대 이전 물건인가보네요?

2. 임진왜란때 약탈당한 조선 고지도라고 팔러왔는데 大邱라고 되어 있다.

→ 넌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이 그래픽에서도 대구(大邱)라고 하고 있는데

대구(大丘)라고 해야 옳죠.


이 문제에 대해 당대 시점이 아니라 

시청자가 현대 시점에서 이해하기 좋게 

大邱로 해도 되는거 아니냐고 말 할 수 도 있을겁니다. 

현대 지명에 맞춘다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장면에서는 

한양(漢陽)이라고 하지말고 서울이라고 했었어야 합니다.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 거죠.



'이리역 폭발사고'를 그린 영화를 만든다고 할 때

배경에 '익산역'이라고 걸어놓는게 맞겠습니까?

<징비록>에서 앞으로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겠는데

이순신이 이끄는 전라좌수영에 '흥양수군'이 있습니다.

흥양은 나중에 고흥으로 바뀌는데

극중에서 지도로 표시할 때 흥양현이라고 나와야지 고흥군으로 나오면 안되는거죠.

< 냉동대구.jpg >

저 시대를 이야기할 때

대구를 大邱라고 하면 오타인겁니다. 

大丘라고 하는건 오타가 아니죠. 


사실 한자병기 안하고 대구라고만 했으면 아무 문제도 없을 일입니다. 

大丘하고 大邱는 차이가 있지만

대구는 대구니까요. 




그리고 한자병기를 하려거든 인명도 한자병기해야지

지명만 한자병기 하고 인명은 그냥 한글만 하는건 대체 뭐랍니까;

하려면 그냥 다 한글로 하든가

아니면 다 한자병기하든가
by MessageOnly | 2015/05/16 20:47 | ■ 다른게 또 뭐있나..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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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egane at 2015/05/16 21:05
그런고로 과거보게 해 주세요!!
- 아냐~ 내가 구해줄께...
과거보게 해 달라구요. 제발~
- 구해준다니까!!
그거 필요없고 과거보게...
- 구(邱)!! - 그리고 광속으로 도주.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5/05/18 00:43
이게 다 연잉군 때문이다.

이렇게 될 때까지 이인좌는 대체 뭘 했나!
Commented by JOSH at 2015/05/16 23:49
> 'New York'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New York City'라고는 지도에 써도

이건 뉴욕주 와 뉴욕시를 명확하게 하기 위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5/05/18 00:43
말씀하신대로 실제로 New York City라는 명칭을 명확히 구분할 목적으로 사용하지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New York을 안 쓰는게 아니고 혼용해서 잘 쓰고 있으니까요. 이해를 위한 예로 들긴 했는데 실제로는 New York, New York City, City of New York 다 혼용하고 있으니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한성과 한성부와의 관계와는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와는 다르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것입니다.
Commented by 듀란달 at 2015/05/16 23:57
그냥 우리나라 고지도 중 시대 맞는 거 하나 카피해서 쓰면 되는데 왜 고생해가며 욕먹는지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5/05/18 00:44
초기에 사용한 지도 소품들이 좀 엉망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시대에 맞는 지도를 찾아가는 기묘한 모습을 보이더라고요. 처음부터 그렇게 했으면 될걸 -ㅠ-;
Commented by 잭 더 리퍼 at 2015/05/17 01:48
개노답 삼형제 생각나네요
지가 왜 욕먹는지도 모를거야


상관없는 이야기긴 한데 옛날 지도는 참 추상적이라고 해야하나...

경상좌도병영성과 울산읍성은 걸어가도 한시간이 안걸리는 거리에 있고(같은 울산 중구 내)

경상좌수영은 부산인데(뇌입원 지도 찍으니 약58km)

열배이상 먼 거리가 지도상엔 등거리로 표시.
그냥 대충 이쯤 있다는걸 알려주는 역할밖에 못하겠네요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5/05/18 00:44
오늘도 '대구(大邱)'라고 해놨더군요. 근데 다른 지명들은 또 한자병기 안 하고 부산, 진주, 대구 정도만 한자병기하고 다른 지명들은 또 한자병기를 안했습니다. 도무지 일관성이 없어요.
Commented by 漁夫 at 2015/05/19 08:13
저 대구역 사진 한국에 계신 일본 분 트위터에서 보셨습니까? 저도 웃겨서 ㅋㅋ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5/05/24 16:31
작성프로그램에서 한자자동변환으로 저렇게 했다거나 포탈검색에 '동대구'넣고 바로 나오는 단어로 변환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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