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여신상에 대한 국내의 오해 (1/3)

요 며칠사이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이 엄청 까이고 있네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몬가....몬가 많이 올라있어서 여러군데 찾아봤습니다. 


몇 군데 추려서 보면 이렇습니다. 

대체로 같은 사진 같은 문구로 구성이 비슷하면서도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아마 복붙하는 정도였겠지요. 

 펨코 , 루리웹 짱공유 <- 이쪽은 거의 판박이고. 

클리앙 <- '솜방망이 처벌에 공정성이 없다는걸 증명한다'라는 문구가 추가되었습니다. 

와이고수 <- 여기도 클리앙 복붙

근데 클리앙에는 다른 게시물도 있던데 이것도 재밌는 부분이 있어서 뒤에서 언급하겠습니다. 


<- 개드립은 이미지도 많이 챙겨넣고 문구도 좀더 첨가했네요. 

대체로 구성이 이렇습니다. 



(클리앙)


(개드립)


(클리앙)



올라온게 이렇거든요. 

보시는대로 다른 나라 정의의 여신상은 

검도 들었고,

 눈가리개도 하고 

마! 할거 다 했으!

근데 한국 정의의 여신상은 그동안 대체 뭐했느냐 이거에요. 

검도 없고, 눈가리개도 없고....

이거 순 엉터리아니냐 이건데...



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일단 정의의 여신상이 세계 여러나라에 만들어져 있지만, 

그게 다 같지가 않습니다. 

아니, 사람사는 동네가 다른데 그게 어떻게 다 같겠냐구요. 

나라마다 정의의 여신상 다 제각각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마! 로마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도 모리나!'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는 천칭, 검, 눈가리개가 상징물이다!'라고 

바로 호통을 치시는 분도 계십니다. 

막 뭣도 모르는 놈 취급을 하는데....


근데 

...그게 아니라니깐요?

백문이불여일견이죠?

일단 이미지 투척들어갑니다. 

< 브라질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

천칭 X
검 O
눈가리개 O

옷주름으로 볼 때 상반신누드네요.

현대적 감성이 물씬 느껴집니다. 

앉아있습니다. 

< 캐나다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

천칭 X
검 O
눈가리개 X

눈을 잘 뜨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전체적느낌은 고고한 여검사 타입이네요.

서 있습니다. 

< 미국 알버트 비커스 브라이언 주니어 법원 >

천칭 △
검 X
눈가리개 O

천칭이라는 도구는 저울대가 있어야 하는데

이건 여신의 두 손으로 대체한 타입입니다. 

앞으로 나오는 듯한 포즈가 재밌죠? 

서있습니다. 

< 이탈리아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

천칭 X
검 O
눈가리개 X

눈가리개 없지만 눈 뜨고 있습니다. 
아주 부릅뜨고 있어요.

천칭 대신 법전을 끼고 있죠.

위엄을 한껏 살린 모습입니다. 화려합니다.

앉아있습니다. 

< 아르헨티나 후후이주 청사 앞 정의의 여신상 >

천칭 O
검 O
눈가리개 X

눈부릅뜨고 있고, 상반신누드입니다. 

쵸큼 야하네요. 조각가는 여성.

앉아있습니다. 

< 미국 제퍼슨 카운티 법원 앞 정의의 여신상 >

천칭 O
검 O
눈가리개 O


천칭이 좀 허전한데... 원래 있었는데 도둑맞은거에요. 

3요소(?)를 갖추고 있는데 특이하게 등짝에 날개가 달려있습니다. 

서 있습니다. 

< 싱가포르 대법원 건물장식 정의의 여신상 > 

천칭 O
검 O
눈가리개 X

두 눈 뜨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석상인데, 천칭과 검이 청동제입니다. 

여신 맞습니다. 

앉아있습니다. 

< 호주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

천칭 O
검 O
눈가리개 X

눈 뜨고 있습니다. 

균형감있게 천칭을 들어보이고 있네요.

서 있습니다. 

< 미국 연방대법원 앞 정의의 여신상 >

천칭 △
검 X
눈가리개 

왼팔에 끼고 있는게 법전이고,

오른손으로 '눈가리개를 하고 '천칭'을 팔에 낀 작은 '정의'을 보좌관으로삼아 들고 있는겁니다. 

작품명 자체가 '정의의 관조(The contemplation of justice)'인데 좀...스케일이 남다르죠?

이 조형물은 연방대법원 건물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왼편에 놓여있습니다.
오른편에는 남성으로 표현된 '법의 권위'가 법(LEX)이 써진 타블렛을 들고 앉아있어 균형을 맞추고 있어요.

오른발을 발올림대에 올려두고 있는 것도 특징입니다. 

앉아있습니다. 

 < 러시아 연방대법원 현관 정의의 여신상 >

천칭 O
검 X
눈가리개 X

눈 뜨고 있고 정면바라보고 있습니다. 

'방패'를 쥐고 있는 것이 독특하네요.

서 있습니다. 


< 오스트리아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

천칭 X
검 O
눈가리개 X

눈뜨고 약간 아래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게 오스트리아 대법원 실내에 있는데,

높은 곳에 위치헤서 현관부터 계단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형상입니다. 

천칭이 없고 대신 법전을 펼쳐서 안고 있네요. 

구성요소로 따진다면 이탈리아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과 비슷한데, 이탈리아만큼이나 고급져보이네요.

앉아 있습니다. 

< 우크라이나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

천칭 O
검 X
눈가리개 X

근데 눈을 반쯤 감았다고 해야할지, 반쯤 떴다고 해야할지 애매하네요.

앉아 있습니다. 


< 헝가리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

천칭 O
검 O
눈가리개 X

왼손 손가락으로 천칭을 들고 있는데 법전도 옆에 끼고 있습니다. 

욕심쟁이 후후훗

앉아 있습니다. 



< 이란 대법원 건물 입구 좌측벽면장식 정의의 여신상 >

천칭 O
검 O
눈가리개 X

부조인데 눈동자까지 묘사했네요. 

당연히 눈을 뜨고 있는 것이죠.

특이한건 '이슬람 문화권'인 이란 법원에서도 정의의 '여신'을 장식으로 쓰고 있다는 점이죠.

이란이 이슬람혁명이전에 진행했던 서구화의 흔적입니다. 

그렇다고 혁명수비대의 손에 파괴되거나 하진 않았어요. 

다에시같은 애들이라면 부수고도 남았겠지만...

아무튼 이슬람권에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서 있습니다. 


< 방글라데시 대법원 앞에 서 있는 정의의 여신상 >

천칭 O
검 O
눈가리개 O

오랜만에 3요소를 갖춘 정의의 여신상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현대 미술경향이 많이 반영되었네요.

그럼 뭐합니까 

지금은 철거되었어요. 

왜냐하면 신앙심 깊은 이슬람 신자들이 우상숭배라면서 과격시위에 나서면서

당국에서 치워버린겁니다. 

이란이 참 대단한거에요.


뭐 이런 식이다보니 '외국'이라고 해도 모두 '정의의 여신상'을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게 범지구적인 상징물로 용인되기에는 장애가 있어요.




근데.....

더 봐야합니까?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요?

한번 복기해보세요.

과연, 모두 칼을 들고 단호함을 보여주고 있다거나

모두 눈가리개를 써서 선입견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나요?

그리고 눈가리개 없는 경우 눈을 감았나요? 


그렇지 않았죠.

제각각이었습니다. 

각기 개성이 흘러넘쳤습니다. 


한국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이 받은 비판을 대입해서 생각해보면 말이죠.

칼을 들지 않아서 단호하지 않을 것 같으면

미국러시아 연방대법원은 권위가 서지 못한 법원이 될 것이고

천칭이 없다고 공평하지 못 할 것 같으면

캐나다와 브라질, 오스트리아는 공평성이 없는 대법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눈가리개를 하지 않아서 문제될 거 같으면

미국, 러시아, 이탈리아,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등등은 선입견에 찌든 나라가 되겠군요. 

방글라데시는 정의가 아예 사라져버린 나라



'야! 너가 눈가리개 없는 것 골라 놓은거 아니냐! 어디서 선동질이야!'

라고 하실 분도 계실 겁니다만...


맞아요.

제가 고르긴 골랐습니다. 

하지만 딱히 눈가리개있고없고로 고른게 아니에요.

뭐, 대법원 말고 다른 법원, 청사의 여신상도 있었습니다만

'주로' 각 나라 '대법원'에 있는걸로 살펴본겁니다. 

적어도 대법원 클라스는 되어야 비교대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한국도 일단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이 떠오른거였잖아요.



혹은 '대부분'이라는 표현으로 써서

 '모두 '다' 그렇다고 한건 아니라도 이야기할 수 도 있을텐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회피하려고 한 건 좋은 시도였습니다만

그 구멍이 너무 크지 않나요?


저게 과연 '대부분'이라고 할 수준이 되긴 합니까?

지구상에서 이름값 좀 있는 나라들에 있는 법원, 청사 앞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이었고

역사성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만든지 100년 넘은 것들이 수두룩해요.

 그 놈의 '눈가리개'

그거 하고 있는 정의의 여신상이 과연 '대부분'이라고 할 정도로 비중이 높은가요?

오히려 눈가리개 안 한 정의의 여신상이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 너가 눈가리개 안 한 것만 교묘하게 모아놔서 그러거잖아! 이 선동꾼아!'

이럴 분들 계실겁니다. 



그래요? 

그럼............

 진짜로 눈가리개 없는것만 

골라서 올리는게 어떤것인지 보여드리겠읍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왕궁

체코 올로모우츠 

체코 프라하

아일랜드 더블린

벨기에 앤트워프

미국 뉴욕

칠레 발파라이소


미국 오리건주 벤톤카운티

독일 함부르크


독일 만하임

독일 바덴뷔르템부르크

프랑스 파리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독일 비벤베르크

스웨덴 웁살라

독일 괴를리츠

이탈리아 베네치아

캐나다 온타리오

이탈리아 로마

여신님은 눈가리개 따윈 안 한다네


Korean netizens 아직도 불만 있어요?

정의의 여신은 두 눈을 뜬 훌륭한 여신, 나 또한 찾아보았다.



인터넷으로 '눈가리개'하고 있는 정의의 여신상 찾으면

'탁자'위에 올려놓을 소품들이 굉장히 많이 나올겁니다. 

개중에 이 이미지를 올려놓고

 '눈가리개를 하지 않았지만 눈을 감은 정의의 여신상'이라고 자료랍시고 올려놓는데

...아니 장판바닥에 놓고 A4용지로 배경처리한 

이런 걸 '근거자료'랍시고

이러고 있는겁니까?

나원참.





보면 보통 상급법원이나 정부청사, 공원 등에 놓는 것들은

 눈가리개 안 한 정의의 여신상이 '대부분'이고

눈가리개를 한 정의의 여신상은 

주로 하급법원, 법학교육기관, 가정용 실내소품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절대적'인 숫자로 따지면 눈가리개를 한 정의의 여신상이 많긴 할 거에요.

왜? 그런것들은 공산품의 영역의 것이다 보니 그렇습니다.

인터넷 쇼핑몰에 엄청 많아요.
 
검과 천칭을 들고 눈가리개한 정의의 여신상.

대중의 선택을 받으려면 조금은 튀지 않아야합니다.

러시아 연방대법원처럼 방패 들고 있으면 '검'을 기대했던 대중들이 소품으로 사서 집에 놓겠어요?

캐나다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같으면 아예 구분을 못할걸요?

독창적이고 작품해석의 여지가 많다?

안 팔리면 어쩔거에요? 

그러니까 그런건 안 만드는겁니다. 

대중상품으론.

작가가 예술혼을 발휘해서 만들지 않는다고요.





이것도 '눈가리개'한 정의의 여신상의 근거자료로 자주 애용되곤 하는데

이게 어딨는거냐하면

런던 중앙형사재판소 꼭대기에 있습니다. 


눈가리개 신봉자분들은 이제야 안심하실지도 모르겠군요.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잉글랜드의 심장부

런던 최고권위의 재판소

그 꼭대기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안됐네요! 눈가리개 따윈 안 한 정의의 여신상이었습니다~

대영제국 시절부터 있어왔던

런던 중앙형사재판소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도 눈가리개따윈 안 합니다. 

근데 우리나라의 많은 눈가리개 신봉자들은 이 정의의 여신상을 눈가리개한 여신상이랍시고 갖다넣죠.

정말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우리나라 웹에서 영향력이 큰 '나무위키' 항목입니다. 

'그리고 법의 이상인 선입견이 없음을 나타내는 눈가리개를 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눈가림이 없는 경우에도 눈을 감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놓고 올드베일리 '정의의 여신상'을 대표이미지로 올려놓는 센스!



오히려 올드 베일리의 정의의 여신상은

'눈가리개'를 하지 않는 정의의 여신상의 대표작입니다. 

사람들이 왜 이런 오해를 하냐면요.

너무 멀어서 잘 안보니까 그럴 순 있겠습니다. 


백여년전에 이걸 만들 때 제작자가 고민했답니다. 

런던 최고 권위의 재판소 꼭대기를 장식할 정의의 여신상을 대체 어떻게 만들어야할까.

눈가래를 씌워냐하는지 안 씌워야하는지

그러다가 결론을 내린거죠.

안 씌우는걸로

Why?

그게 '원형'이라는 이유로

정의의 여신은 눈가리개를 안 하는게 '원형'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올드베일리 정의의 여신상 제작자가 연구한 바로는 
눈가개를 안 하는게 정통이다 이거에요.


근데 눈가리개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두 팔을 쫙 벌리고 힘차게 서 있는 포즈가 굉장한 임팩트를 줍니다. 

정의의 여신상계의 마스터피스에요.

그래서 나무위키 대표이미지로서 손색은 없습니다. 

거짓설명이 달려있는것이 문제일 뿐이에요.

나이지리아 대법원 앞 정의의 여신상 포즈도 여기서 온겁니다. 

눈가리개는 했습니다.

국내 소재의 법테마파크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도

올드베일리의 정의의 여신상을 어레인지한 것에 불과합니다. 

근데 원본은 눈가리개를 안 했는데, 법테마파크판은 눈가리개를 했죠.

법테마파크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공산품수준으로 복제되었습니다. 

한 때 초등학교에 도배되던 단군상수준이죠.

그러니까 숫자는 참 많아요.




사실 이런거죠.

정의의 여신상이 눈을 떴는가? -> 정상

정의의 여신상이 눈을 감았는가? -> 정상

정의의 여신상이 눈가리개를 했는가? -> 정상

저 정의의 여신상은 왜 눈가리개 안 했어요? 순 엉터리네? -> 비정상






눈가리개를 한 정의의 여신상도 확실히 많습니다.

그 중에 좀 오래된걸 찾아보면

< 스위스 베른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1543년>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16세기작품에서 눈가리개를 하고 있으니

이게 바로 정통파아니냐

위에서 나온 눈가리개 안 한 정의의 여신상들이 비정통 아니냐

이럴 수 있겠는데요.



'연대'로 대결갑니까?

<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 마르코 대성당 모자이크화 >

그럼 이건 어쩔건데요?

르네상스 이전에는 정의의 여신에게 눈가리개가 없었습니다. 

후광은 있네요. 

심지어 검도 없었어요.


<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 마르코 대성당 모자이크화 >

근데 왜 산 마르코 대성당에 이런 모자이크화가 있냐하면....

1204년 십자군전쟁때 베네치아가 비잔티움을 무더기로 약탈했잖아요...

동로마, 

로마제국 '정통' 정의의 여신은 눈가리개 없었어요.



근데 왜 '검' '눈가리개' 이런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냐면

르네상스시대로 접어들면서

도상학이 발전합니다. 

그림속의 인물, 포즈, 구도, 소품(상징물) 등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그런거요.

물론 르네상스 이전에는 그런거 없었냐하면 그건 아니고

 이전에도 그런게 당연히 있었지만,

그 시대에 이르러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겁니다. 


< 로마 교황청 서명의 방, 프레스코벽화, 라파엘로작, 1512년>

 르네상스 시대 '정의의 여신'입니다. 

로마 교황청 정도되면

굉장히 보수적인 공간이 되겠지요.

그러니까 그만큼 수준높은 도상을 요구하기도 한 것이겠고요.



아, 눈가리개 안 했지만 눈감은거 아니냐!

이럴 분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눈입니다.

이것도 눈감았다고 주장하신다면야 할말은 없네요.



시대적으로 따져보면 이 시대는 카노사의 굴욕같은건 이미 옛말인 시대입니다. 

세속권력이 성장했고, 교회권력은 하락했어요.

도시가 성장하고 각지에 재판소, 법원이 설치되었습니다. 

사법권력이 완전히 교회법에서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사법권력은 교회, 세속군주에게 오랫동안 눌려있었습니다. 

섬나라에서는 마그나카르타같은 사건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진짜로 왕이 법 아래에 놓여있는건 아니었죠. 

그래도 그만큼 법체계의 성장이 두드러진 건 사실이니

서서히 성장하는 사법권력은 스스로에게 '권위'가 필요하다고 여겼을 겁니다. 

그러다보니 '검'과 같은 상징물을 법조계에서 스스로 부여하기 시작한겁니다. 

그런 직관적인 '검'과 같은 상징은 비교적 일찍 받아들여졌습니다. 

눈가리개는 좀 더 이후에 생겨나고요.





근데 눈가리개가 예술품에서 등장하는 방식이 좀 웃깁니다. 
< 눈가리개를 쓴 정의의 여신, 알브레흐트 뒤러 작, 1494년작 >

독일 세바스티안 브란츠가 쓴 '바보들의 배'라는 문학작품입니다. 

제목부터 대놓고 '바보'가 들어가는거 부터가 심상치가 않죠.

당대의 유명한 풍자물이었던 만큼

현대에도 패러디될정도의 위상을 가진 작품입니다. 


풍자극인 것을 감안하고 보셔야합니다. 

이게 어떤 장면이냐면

두 눈 뜨고 똑바로 바라봐야할 정의의 여신이 

'광대'에 의해 눈가리개가 씌워져서 제대로 된 판단을 못 하게 되는 장면입니다. 

작품해석에 따르면

소송남발로 사법기관의 업무를 마비시키는 소송광들을 풍자한 것이라고 합니다. 


웃기죠. 

'선입견'을 배제한다는 의미의 '눈가리개'가 

제 앞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하게 하는 '눈가리개' 그 자체라니.



기실 정의의 '여신'이라면,

'신'이라면

눈가리개같은게 왜 필요하겠습니까?

'신적 존재'라면 좀 능력이 빠방해야죠.

'두 눈'으로 꿰뚫어보는 능력이라든가

오히려 '눈가리개'같은 방해물이 있더라도 흑막을 가려낸다든가 

뭐 이런 극적인 요소도 가능할거 잖아요?


하지만 이런건 '신'에게 인격을 부여하기 그런거죠.

상징물도 그런겁니다. 

어떻게 보면 서양 천사에게 '날개'가 굳이 필요한 이유가 있겠나 싶습니다. 

동양 선녀는 '날개'가 없잖아요.

하지만 '날개옷'을 입죠.

그런 '수단'이 필요한 것으로 묘사하죠.

천사나, 선녀도 날개가 꺾어거나 날개옷이 없으면 날지를 못하죠.



이런 관점에서 '정의의 여신'에게 '눈가리개'라는 상징물을 고안해내고 씌운 것인데

이걸 법학계에서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이들은 '눈가리개'의 상징(선입견 배제)를 굉장히 선호했어요. 


'정의의 여신상'의 '눈가리개'가 정확히 어느 시점에 나타났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현존하는 미술작품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알브레히트 뒤러의 풍자화에요.

그렇다고 이게 최초일까 하면 그건 좀 아닐 것 같습니다.

생각컨대, 세바스티안 브란츠와 알브레히트 뒤러의 협업으로 

'눈가리개'가 탄생했다기보다는

법조계를 중심으로 '눈가리개'상징을 형성해놓고 자뻑에 빠져 있으니까

세바스티안 브란츠가 그걸 보고 '허이구, 지랄들을 하세요' 하면서 풍자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건 제 주장입니다. 정설이 아니에요.)

아무튼 눈가리개의 등장이 15세기 즈음인 것 만은 확실합니다. 

연구결과가 그렇대요. 

전 그런거 보고 얘기하는겁니다. 

 이 그림이 역할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반대로 이 그림이 '눈가리개를 한 정의의 여신상'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1400년대가 되면 유럽은 구텐베르크에 의해 인쇄물이 발달하게 됩니다.

근데 까막눈들이 많잖아요?

글만 있으면 아무래도 재미없잖아요?

삽화도 있어야할 거 잖아요?

그러면 잘 팔리겠죠?

이제 전 유럽에 퍼지는겁니다. 

저게 '판화'입니다. 

전파, 확산에 최적화된 그림이죠.

알브레히트 뒤러가 얼마나 대단한 판화가냐하면

알브레히트 뒤러는 코뿔소를 본 적이 없어요.

그냥 전해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그려낸 겁니다. 

그래서 자세히보면 '실제 코뿔소'와는 꽤 많이 다르죠. 

근데 문제는 그럴싸하다는겁니다. 

그럴싸하니까 20세기 독일 과학 교과서에까지 실리는거죠.
'그 대단한 뒤러선생님 작품!'

'그래?'와 쩐다!'

'오오 눈가리개 오오'

이렇게 되는겁니다. 


마침 작품자체도 베스트셀러겠다.

찍어내기도 좋은 판화겠다

그렇게 유럽 각지로 퍼져나가면서

'정의의 여신'은 '눈가리개'를 해야 제 맛이라는 생각이 전파/확산되는데 큰 영향을 줬다고 그럽니다. 


그렇게


'대안대(眼帶)시대'를 맞게 된.....

것 같지만


앞에서 본 것 처럼 모두가 그런 '눈가리개'상징의 도입에 동의한 것 아니었던 거죠.

15세기 유럽에서 '눈가리개' 상징이 형성되어서 500여년의 세월을 보냈지만

'눈가리개'를 한 정의의 여신상이 셩겨나서 자리잡아가기 시작한 것 뿐이지

정의(正義)의 여신상의 정의(定義)를 완전히 바꾼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1543년에 만들어졌다고 언급한 이것도 

매우 이른 시기에 '눈가리개'를 한 정의의 여신상으로 그 역사적 가치가 있습니다. 

조형물로는 이게 가장 오래되었으니까요.


'상징물' 외의 특징을 보면

채색이 되어있고,

중부유럽식 복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장 기둥위에 서 있는 형태로 세워졌죠.

1561년

1585년

1643년

1714년

이런식으로 아류작이 생겨났습니다. 

우리도 저런거 하나 만들어놓자는 식으로 유행을 하긴 했는데...

이런 조형물은 그 전파속도가 느립니다. 

저 형태의 '정의의 여신상' 은 이웃 마을, 도시로 퍼지는 정도로 끝났습니다. 

저거 전부 스위스에만 있는거에요. 

지역적 특성으로 나타나는 수준이죠.


어쨌든 스위스는 저게 '표준'이라고 할 정도로 그 위상이 확고합니다. 

그리고 정의의 여신이 로마신화 속 유스티티아라고 해도

로마식 복장이나 로마의 검, 로마의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지는 않아요. 

자기 동네 스타일에 맞게 변형한겁니다. 
반면 이것은 종이로 전달되기 때문에

전유럽에 '눈가리개'속성을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안대'를 쓴 여성이라는 것은

어딘지 '관능'적이지 않습니까?


성화를 그린다는 명목으로,

  인체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그려내는 예술가들에게

'합법적'으로 눈가리개를 씌울 수 있다는 점은 크게 어필하는 바가 있었을 겁니다. 


현대 대중미술에서조차 이런걸 잘 써먹습니다. 
안대 못 잃어

에로티시즘 못 잃어



항상 blindfold를 사랑해주신 여러분 앞으로도 감사하십시오. 

and I also 안대조아



하물며 성화를 그린다는 명분으로 인물을 벌거벗겨 인체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그렸던

유럽의 예술가들에게 '합법적으로' 안대를 그려넣을 수 있다는 것은

크게 매력적인 부분이었을 것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눈가리개가 유럽으로 '서서히' 확산되면서

 족히 500년은 된 꽤 '전통'을 이야기할 만한 세월을 보내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15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 유럽인, 세계인들이 '눈가리개'의 상징을 용인하고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눈가리개 '상징'을 받아들인 그룹과 받아들이지 않은 그룹으로 나뉜 세월이 500여년인 것 뿐이에요. 



아무튼 중세 유럽 정의의 여신상은 이렇다고 치고

그럼 그 원형이 있을것 아닙니까?

개드립 게시판이용자는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카'라고 자신있게 써놓았는데

사실....유스티티카가 아니라 유스티티아죠.

이런건 그냥 오타지만......

그런데말입니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가 눈가리개를 했겠냐고요. 

15세기에 눈가리개 아이템이 추가되었는데 고대로마시대에 무슨 눈가리개를 합니까?


당연히 그런건 없었습니다. 

중세 유럽의 정의의 여신상에는 '눈가리개'가 있을 수 도 있고 없을 수 도 있지만

고대 로마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는 눈가리개를 쓴 적이 없어요. 

신화에서 '눈가리개'같은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상징물이 필요하지도 않았던 겁니다. 



다음 이야기는 '로마 신화 속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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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ssageOnly | 2018/08/20 20:43 | ■ 水去一人生 | 트랙백(1)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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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기침 가래엔 용.각.산. at 2018/09/17 22:59

제목 : 정의의 여신상에 대한 국내의 오해 (3/3)
인터넷 커뮤니티 자유게시판에서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을 깔 때 매우 자주 등장하는 안대를 쓴 정의의 여신상입니다. 거의 고정출연 수준이죠.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이 그 놈의 안대를 하지 않았다고 깔 때 이미지를 딱 2장만 골라 넣어야한다고 하면 짝을 이뤄서 나올 정도로 매우 자주 출연하는 정의의 여신상입니다. 국내 유명 위키사이트 나무위키 '유스티티아' 대표이미지로 사용되는......more

Commented by Gull_river at 2018/08/21 00:42
여성 동상만 찾으시다니, 여혐이시군요! 그래서 믿을 수 없습니다! (물타기)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8/09/17 23:26
어때요...? 왠지 두근거리지 않나요? (도망)
Commented by bolivar at 2018/08/21 09:02
스크롤 내리면서 비교나열만 봐도 배불렀는데 바보배까지 나오다니 포스트 보고 디저트까지 먹은 기분이네요. 잘 봤습니다.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8/09/17 23:27
잘 보셨다니 저도 만족할 수 있네요.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아빠늑대 at 2018/08/21 11:19
신인데 눈으로 보면 선입견이 있음!! , 그래서 눈을 가려서 안보이면 어떻게 검을 쓰고 어떻게 저울을 보냐 했더니만 신이라서 가려도 됨!! 이라고 함.

08년인가? 그때 누군가의 주장에 이야기를 하다가...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8/09/17 23:29
많은 교육자들이 그런 마인드를 갖고 있습니다. (...)
Commented by 바람불어 at 2018/08/21 11:54
글 참 재미있네요. 원래부터 그랬던 불변의 단일한 표준으로 알았는데, 알고보면 오랜 시간 각자의 의도와 환경에 따라 이런저런 요소가 쌓이고 빠지고한 이 시대의 표준일뿐이라는 거.

게다가 지금 논란 자체 역시 지금시대 누군가의 의도가 되는거고.

이 글 쓰기위해 사진도 모으고 시간이 많이 걸렸겠네요. 공 들인 글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8/09/17 23:31
관점에 따라 여러가지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번에 올리려고 작성기로 다 썼던걸 오류로 다 날려먹고 셋으로 나누기로 했습니다.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레이오트 at 2018/08/21 12:49
결론은 한국 사법계에 대한 불신과 여기서 나오는 증오의 발로였다, 그거군요.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8/09/17 23:31
그건 별론이죠.
Commented by SUPERSONIC at 2018/08/22 17:35
지식채널 e에서도 대놓고 저런 뉘앙스로 말하던데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8/09/17 23:33
전부 동의하진 않지만 큰 줄기는 맞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우와 at 2018/09/06 09:36
좋은글 잘 봤습니다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8/09/17 23:33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KKAE at 2018/09/10 11:10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18/09/17 23:33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액시움 at 2018/09/20 18:35
눈을 뜨고 있되 '시각을 포기하고 오직 진실만을 보는 동술을 개안했다!' 상태라면 너무 나루토스러우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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