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차
2019/07/09   보스턴 차 사건이 심각했던 이유.jpg [6]
2013/09/21   양인들이 차를 만났을 때 - 찻잔편 [22]
보스턴 차 사건이 심각했던 이유.jpg

라는 글이 도는데요. 


몇 가지 부분에서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굳이 보스턴 티파티에 대해서 구구절절 이야기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고,

저기에서 언급된 내용 몇 가지만 의식의 흐름으로 건드려보면,





1. 보스턴 티파티 때 버려졌던 찻잎의 모습인가?


결론부터 빠르게 

NO.



저런 형태로 차를 만들긴 합니다. 

저런 형태를 보이는 것을 '전차'라고 하는데

磚茶

작으니까 잘 안 보이죠.


벽돌전, 차차 

즉, '벽돌차' 라는 뜻입니다. 

영어로 Tea Brick, Brick Tea 라고 적는데

결국 다 모양을 가지고 하는 이야깁니다. 

이것도 모양잡아서 눌려져 있으니 전차로 오인할 수 도 있는데

아예 써져 있죠.

餠茶라고요.

떡차라는겁니다. 

떡모양이다 이겁니다. 

다른거 없고, '모양'이 그런거에요


왼쪽 상단 커다란 원반형은 '병차' (떡 차)

오른쪽 상단 사각진 형태는 '전차' (벽돌 차)

왼쪽 하단 덩어리는 '단차' (덩이 차)


그런겁니다. 


이런 종류를 총칭해서 '긴압차'라고 하는데,

뭉쳐서 눌러줬다는거에요.

영어로 Compressed Tea


존재해요. 

이런 차 블럭



뜯기 쉽게 이렇게 모양을 낸 경우도 있고,

아예 조각단위로 단차를 만들어서 개별포장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이거는 호북성에서 만드는 '미전차'입니다. 

그 시대에 잉글랜드상인이 손에 넣을 수 도 없었어요. 

그럴 필요도 없었죠. 

왜냐하면 복건, 광동에서 만드는 차를 사가면 되니까요. 
(물론 복건, 광동에서도 '전차' 만듭니다.)

근데 저거는 19세기(청나라시절)에 수출용으로 제작한게 히트쳐서 현대에 복각판도 나오고 그러는 겁니다. 

복건, 광동에서 전차를 안 만드는게 아니고 저 모양이 그렇다는 거에요.
 
무이암 대홍포는 이런식으로 만드네요.

만들고 싶은 형태로 만드는거에요. 

이런거는 일부 양키들이 '캬! 이것이말로 오리지널 차이나!!' 라고 호들갑 떨면서

보스턴 차 사건에서 던져진 찻잎이 바로 이 형태!라는 썰로 이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저런거 팔 때 속닥속닥 하면 속아넘어가서 잘 사거든요.

'바로 이거시 보스턴 티파티때 차 형태라는거 아입니까! 귀한 겁니다 이거. 자 하나 사가시죠'

이러면 구경왔던 사람이 홀딱 넘어가서 사는겁니다. 

누군가가 마케팅으로 시작한게 아닐까 싶네요.




어쨌든 어떤 형태가 되었든간에 

압착한 '전차'가 존재는 했는데,

적어도 '미전차'는 될 수 도 없다는 이야기구요.

그리고 보스턴 티파티할 적에 저런 미전차는 아니더라도 다른 전차를 사갔느냐...


안 사갔어요. 


식민지사람들에게 아직 전차는 이른 물건입니다. 

동인도회사가 더 잘알아요.

그냥 찻잎 말린거 가져갔습니다. 

당시에 모호크족으로 분장한 '자유의 아들들'이 

도끼들고 올라타서 뭐합니까?

차 상자 찍어서 구멍내고 바다에 탈탈 부었습니다. 

그냥 던져버리고 하고...

뭐...당사자들이 그랬다는데...;

벽돌투척이 아니고 부었대요.


물론 저런 그림들이 모두 당시에 그린 건 아니지만은

보고 들은게 있으니까 그걸 참고해서 그리는 겁니다. 

이 당시 미국 식민지 사람 대부분은 긴압차가 뭔지도 모릅니다. 



 이거는 당시 바다에 던져진 상자 중 하납니다. 

보스턴 박물관에 보관중이죠. 

동인도회사에서 얼마나 털렸는지 상부에 다 보고했습니다. 

목록을 보면 그렇대요. 

무이암차가 240상자
(위 목록에서 Tea Bohea라고 적힌 것)

공부차가 15상자
(congou 공푸차)

소종차가 10상자
(souchong, '소우총'으로 많이 알려져 있죠)

송라차가 60상자 
(Singlo)

hyson차가 15상자

hyson은...우전녹차(雨前)인데, 잉글랜드사람들이 그렇게 이름을 붙인겁니다. 

아무튼 송라하고 hyson은 녹차구요.

무이암, 공부, 소종이 홍차구요.


보시면 셋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배 3척이 털려서 그런거에요. 

배 3척에서 피해입은 목록을 써서 보낸거죠. 

합산하니까 총 단가가 9659 파운드라더라.


중국 복건, 광동에서 사가지고 온 찻잎들 피해액수가 9659파운드.

추정무게 92000파운드, 환산하니 대략 46톤.


근데 저 표를 합산해 보면 340상자입니다. 

흔히 보스턴 차 사건에서 투척된 상자를 342라고 하는데

동인도회사에 보고된걸 보면 340이에요. 

그러면 2상자가 어디서 튀어나온건지....미스테립니다. 

모르죠. 선장이 개인적으로 꿍쳐왔는데 털린건지.


아무튼 그래가지고 현대에도 보스턴 티파티를 재현하는데 

어떻게 해요?

상자채로 던지고 상자속 찻잎을 털어 붓습니다. 

고증문제는 '모호크족'으로 분장하지 않은게 문제인거죠. 

 할거면 당당하게 가서 털어야지

왜 애먼 모호크 족으로 분장해서 덤터기 씌울라고 했나....

그게 캥기니까 이제와서 저렇게 차려입었나본대....뭐 아무튼

찻잎을 붓더랩니다. 



뭐 이런 기록도 있대요.

'자유의 아들들'의 행적을 기술한 것 중에...

얘네가 모호크족으로 분장하고 가서 터는데...

왜 분장씩이나 하고 가서 텁니까?

당시에도 캥겼으니까 모호크족인척 한 거죠.

그래서

그 소위 '자유의 아들들'이라는 인간들이 

그래도

그래도 

우리가 '도둑질'을 한 거는 아니다!

도둑질은 안 했다! 

떳떳(?)하다!

라고 계속 강조를 합니다. 

그래서 나오는 이야기가 

여럿이 올라갔는데 그 중 어떤 놈이 차상자 터는 와중에 눈치보면서

자기 옷주머니에 '인 마이 포켓'하려는 것을 매의 눈으로 적발해서

내가 그 놈 딱 보고 혼꾸녕을 내주었다고

자랑스럽게 기술해놨습니다. 

'도둑'은 아니다! 도둑은!

 이럴려구요. 

근데 '주머니'에다가 한 웅큼 챙겨넣으려면 어떤겁니까?

이런 거니까 상자 뿌시다가 옷 주머니에 쓱싹 할 수 있는거에요. 






2. 찻잎이 수십년어치 분량이었는가?

위에서 이미 나왔죠.


톤으로 환산하니 대략 46톤이더라.

자 46톤.

이것도 계산하고 그러는거 좋아하는 사람이 이미 계산을 해놨답니다. 

구글치면 바로 나옵니다. 

천팔백오십이만 삼천 잔.

1775년 미국 인구가 어림 240만명이랍니다. 

보스턴 차바다사건은 1773년.

나누기 하면 한 사람이 7.7잔 마시면 되것네요. 

1년이 365일이고

한 사람이 하루 한 잔씩 먹...는다고 하면 열흘안에 순삭 분량인거네요. 

뭐...그렇게 딱 떨어지게 먹을 수 는 없을테지만..

좀 싱거우니까 다르게 계산해볼까요?

보스턴이 있는 메사추세츠주만 따로 31만명으로 계산하면

그러면 한 사람 당 59잔씩 돌아가네요.

하루 한 잔으로 돌리면 그래도 두 달은 마시겠네요.

이것 역시 현실성 있는 계산은 아니지만서도

아무튼 어떤 기준으로 한다고 해도

미국 식민지를 기준으로 할 때 수십년 분량 정도는 아닌 거죠.


그리고 이미 그 보다 많은 물량이 창고에 쌓여 있었습니다. 

보스턴 티파티때 털린 거는 새로 들여온 걸 턴겁니다. 

근데 보스턴 티파티 이후에 다른 동네에서도 비슷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긴 했습니다. 

전체 피해규모로 따지면 더 늘어나긴 하지만 그걸 이야기한 것도 아니니까요.






3. 현재 물가로 1700만 달러 어치인가?

네 이것도 엉터립니다. 

$1.7 millon USD라고 했었네요. 

1.7백만 달러

170만 달러죠.

원화 20억원정도네요. 

이거 번역한 놈은 절대 요직에 앉히면 안됩니다. 

회사 말아먹을 놈이죠. 
by MessageOnly | 2019/07/09 01:01 | ■ 다른게 또 뭐있나.. | 트랙백 | 덧글(6)
양인들이 차를 만났을 때 - 찻잔편
< 쳐묵온 찻잔 세트 >

대항해시대.

양인(洋人)들은 아시아의 신묘한 '차'라는 문화컬쳐와 함께 

'찻잔'이라는 신문물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귀한 차를 아무 그릇에 담아 마실 수 는 없는 노릇이고,

귀한 것은 귀한 것에 담을 때 그 값어치가 오르게 마련이죠.


동인도회사입장에서도

'차'만 운송하기에는 무게가 덜 나가서
 배 무게 중심맞추느라 무거운 돌을 넣는 것보다는
'찻잔'으로 무게중심 맞추는 편이 훨씬 이익이었을겁니다. 

물에 젖어도 닦으면 그만이고, 
돌 만큼은 아니지만 무게도 상당히 나가는데다

무엇보다

쓸모없는 돌은 팔 수 가 없지만, 찻잔은 비싼 값으로 팔 수 가 있습니다. 


그러니 '차' 와 '찻잔'을 함께 사서 함께 파는게 여러모로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양인들은

'차'를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도 몰랐고....

'찻잔' 또한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몰랐습니다. 

전부 사와야했죠.



정확히는 '자기 찻잔'



을매나 신묘한 물건이었던지

자기를 보고 'china'라고 부르게 되었읍지요.


그래서 'tea china set'라고 찾으면 저런 검색결과가 나옵니다. 

< GJ부 >

오늘날에는 찻잔을 이렇게 들고 마시는게 보통이고, (응?)

이것을 매우 우아한 방식으로 여깁니다만 (으응??)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단 '차'라는 문화컬쳐를 겪은 초창기 양인들은

'찻잔'도 동아시아의 그것을 그대로 수입해 쓰고 있었습니다. 


그 동아시아의 찻잔에는 손잡이가 달려있지 않지요.


명품 MADE IN CHINA 


반도는 물론이요.


< 차를 마시자!! >

열도도 마찬가지.


오늘날에도 동아시아권에서 '차'를 마신다고 하면

손잡이가 없는 둥근 찻잔일 따름입니다. 



뭐; 손잡이가 있는 것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스탠다드가 아니었지요.


이런 찻잔은 당시 유럽에 존재하질 않았습니다. 

자기를 만들 줄 모르니

귀한 MADE IN CHINA 찻잔을 그대로 쓸 수 밖에요. 


< 네덜란드 화가 Pieter Gerritz van Roestraten(1627~1698) 작품들>

< 오후의 티파티, 1781 스위스>


중국에서 선적한 차와 찻잔이 유럽에 도착하고

값비싸게 팔려나갑니다. 

각 가정에서는 차를 끓여마십니다. 

어떻게 마시냐하면




그윽한 차 향기를 한껏 음미하는 조교의 표정을 보십시오.

이렇게 찻잔'받침'에 차를 부어 마시기 좋게 식힌 후 마시는 것입니다. 

소서(saucer)를 한 손으로 받치는 솜씨가 아주 능숙하네요.

< 웃지마십시오 >

당시 양인들이 여유롭게 차를 마시기에는

'차'는 너무 뜨거웠던 것입니다. 


동아시아식의 대칭미 돋는 찻잔을 

손으로 쥐고 마시기에는 

너무나 많은 인내심을 요구했기에

양인들은 양인들만의 방식을 고안해낸 것이었습니다.


'찻잔'에 담겨 있는 '차'를 '받침'에 부은 후 천천히 식혀 마시는 것이


당대 유럽의 흔한 차 마시는 법이었습니다. 



물론 인내심이 뛰어난 사람도 동시에 존재했습니다만,

양인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동아시아식 찻잔에 적응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 선명한 VOC >

차업계의 큰 손인 동인도회사는 

이제 '주문제작'에 착수하기 시작합니다. 

그전부터 유력가문의 문장 등 을 넣어달라는 주문은 계속 있었지만


마침내 아시아 찻잔 생산공장에

 '손잡이'를 달아달라는 파격적인 요구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봉춘 드라마에서는 광해군과의 러브스토리에 올인하고 있습니다만,

소설들은 사기장 백파선이 일본에 끌려가서 거기서 자기를 빚는 장인정신 돋는 스토리입죠.


일본은 조선 도공들을 통해 

자기제조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고,

화란상인과 교역하면서

동인도회사 주문을 받아 주문생산까지 할 정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중국은 비싸서 甲질이 심했던 탓에

일본이 상대적으로 괜찮은 자기 공급원이었던 것도 있지요. 

일본입장에서는 계약 따내는게 중요했던 시점이었고요.

조선은 집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이리하야

양인들은 취향에 맞는 찻잔을 갖추기 시작하였습니다. 

 양식 찻잔에는  '손잡이'가 있는 것이 당연시 되었고,

'손잡이'의 곡선을 어떻게 만들어내는가가 찻잔 제조 기술의 포인트가 되기도 했습니다. 



거기다 양인들도 '자기 제조'의 비법을 입수하는데 성공!

본격적으로 양식 '티 세트'를 뽑아내기 시작합니다.

'본 차이나'도 그 와중에 탄생하게 되고....



이런식으로 

더이상 대칭미 돋는 둥근 찻잔만을 쓰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양인들은 더이상 소서에 부어마시지 않고

한 손으로는 받침을 한 손으로는 찻잔손잡이를 꼬나잡고

뜨거운 찻잔의 고통은 과거로 묻어두고

느긋하게 차를 즐기기 시작하였답니다. 

해피엔딩. 해피엔딩.






































그러나 차를 소서에 부어마시는 법은

< Nikolay Bogdanov-Belsky 1930년작 >

뜨거운것을 잘 먹지 못하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 Nikolay Bogdanov-Belsky 1913년 작>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 Andrei Ryabushkin 1903년 작 >

공식석상에서도 애용되는 방식으로

< Konstantin Makovsky(1839 ~1915) >

손잡이가 있다든가 없다든가 하는 것은 상관없이

소서에 부어 먹는 것은 


러시아에선 오래도록 상식이었습니다. 

이 분도 실은 이 고풍스런 다도를 지켜오시는 분이었던 것.






저것은 도저히 부어 먹을 수 없는 

얕은 소서......

카츄샤가 화가 날만도 하네요.
by MessageOnly | 2013/09/21 23:42 | ■ 다른게 또 뭐있나.. | 트랙백 | 덧글(22)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