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황제
2014/07/21   고종은 이미 격상(?)된 표현입니다. [18]
2013/12/03   사극황제 진도명 [12]
2011/07/16   조선국왕 VS 중국황제
고종은 이미 격상(?)된 표현입니다.


 [단독] 을 붙인 기사의 경우 대개 정말 특종이거나

딴 기자들은 거들떠도 안 보는 상한 떡밥이거나 그렇습니다. 
< 근데 기사작성하면서 '천왕'이라고 써놓음.(...) >

뭐....저 기사의  핵심 내용은 저겁니다. 

'일왕'은 천황'으로 격상해 표기했고

'광무황제'는 '고종'으로 격하해서 표기했다. 




아니거든요?


'고종'은 격하된 표현이 저얼대 아닙니다. 



'~조', '~종'이라는 동아시아 군주 중 '황제'에게 붙는 '묘호'입니다. 

살아있을 때는 존호 혹은 연호로 부르고 죽은다음에는 '묘호'로 불립니다. 


그러니까 '대한제국'의 '황제폐하'이신 '광무황제'께옵서 

'승하'하신 다음에 '묘호'로 '고종'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 문제도 없는 일이에요. 

오히려 공식적으로 '황제'였기 때문에 묘호를 받는 것이 더욱 자연스러워진 것뿐.

나는 나의 훌륭한 백성들을 굽어살피는 깨우친 임금, '세종'이오.>

자. 그럼 '세종'. 

이거 문제죠?

네.

문제 맞습니다. 

본래 묘호는 '황제'에게만 써야해요. 

근데 '조선의 군왕'들은 ''에 어울리지 않게 '묘호'를 쓰고 있었던겁니다. 


셀프 '격상'을 이미 하고 있었던 거죠. 

그 탓에 정말로 '황제'가 된 시점에 별로 격상된 것 같지 않은 

일종의 착시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 문명5에서 대사처리할 때도 본인 입으로 '세종이오'라고 했는데
'세종'이라는 '묘호'는 죽은 다음에 붙는 것이기 때문에
본인은 자기가 어떤 묘호를 받을지 모르는 상태여야합니다. 
근데 '~깨우친 임금, 이도요' 라고 했으면 
알아들을 사람이 적으니까 어른의 사정상 그냥 저렇게 처리했다고 봐야죠 -ㅠ-;


< 논란은 무슨 놈의 논란 >

'천황'은 일본의 왕에 대한 칭호로 일제시대 일본 군국주의 상징이기도 해

대한민국 언론 등에서는 일왕(日王), 덴노 등으로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기사 본문이 이렇게 되어 있는데

자, 이 부분에서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언론 등에서는~ 보통이다.' 이렇게 썼으니까요.


대한민국 정부에서 앞으로 '천황'이라고 표현하고 공식적으로 사용한다고 했습니다.

'정부'에서요.

근데 저 기사에서는 '대한민국 언론 등에서는....'이라고 애둘러 써놨죠. 

역시 이런 부분에서는 묘하게 치밀하단 말입니다. 


자, 오히려 '일왕'이라고 쓰면 그게 문제가 됩니다. 

왜냐 저 기사에 나오는대로 '국방부 산하'인데

국방부는 대한민국 정부기관입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천황'을 공식적으로 사용한다고 했는데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천황'이라고 안 하면 그게 더 외교문제가 될 일이죠. 



언론은 정부기관이 아니니까 '일왕'이라고 해도 무방한겁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스스로 선언을 했기 때문에 자기 말 지키고 있는 것일 뿐이죠. 


정부가 잘못했네. 정부를 욕하세요. 





그리고 자꾸 '시호'라고 하는데...

< 시호가 뭔지 묘호가 뭔지 잘 모르시는분 >

< 시호 : 두산백과 >

본문 앞부분에서 '묘호'는 황제한테 붙는거라고 했는데

저기서는 '왕'이라고 해놨죠?

네. 저건 조선만 기준으로 할 때의 이야깁니다. 

어쨌든 이래요. 

시호는 굳이 왕이 아니어도 됩니다. 

'충무공' 이순신 할 때 '충무공'이 시호거든요. 

그러니까 '시호'는 좀 이름좀 날린다싶으면 웬만한 사람은 다 붙습니다. 
(* 조선 기준)

< 영조 >


원래 묘호 : 영

시호+존호 : 지행순덕영모의열장의홍륜광인돈희체천건극성공신화대성광운개태기영요명순철건건건곤녕익문선무희경현효대왕


'고종'이 조상님들 높여드릴려고

묘호를 다시 : 영조

로 바꿉니다. 

시호+존호 : ....안 할래요;

-_-;;


앞서 이야기 했듯이 '영조'는 굉장히 '격상'한 표현입니다. 

황제가 아닌데 황제대우로 '묘호'를 세운거죠. 

그리고 '존호', '시호'는 따로 있고요.

'묘호'는 아무나 못 갖습니다. 

'영조'를 낮춰서 '시호'로 부른다면 

청나라가 내린 시호인 '장순왕'이라고 하는게 정말로 격하해서 부른게 되겠죠.

청나라의 허가? 인정할 수 없어!




그리고 고종을 '광무황제'라고 하기도 좀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 광무황제폐하 >

뭐. 연호가 '광무'였으니까 

'광무황제' '광무제'라고 부르자는 논리겠지요?

맞아요. 그렇게 불러'도' 됩니다. 

< 그럼 이분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합니까? >

당나라 2대 황제 태종 이세민.

이세민하면 뭐죠?

옳커니 

'정관의 치'

이 분 연호가 '정관'이었답니다. 

그럼 '정관황제' '정관제'라고 불러야겠네요?

< 정관황제폐하 아드님 >

당나라 3대 황제 고종 이치 입니다. 

그럼 이분은 뭐로 불러드릴까...

연호 함 찾아봅시다....

< 연호가 열네개! >

........

영휘황제....하지 말고 계속 고종합시다 (...)


연호를 딱 1개만 쓰는 황제가 있는가하면

여러개씩 사용하는 황제도 있었습니다. 

이건 전적으로 황제폐하 마음대로.

시호? 묘호? 쓰면 안된다(?)는 논리로 가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안습의 당 고종;;;;


그럼 당 고종 말고

조선,

아니 '대한제국'의 고종의 연호를 알아봅시다. 


개국

건양

광무

< 연호 3종 세트 사용하신 분 >

'개국'은 뭐 그렇다쳐도 (...)

건양, 광무

연호가 두갠데...

으엉? 이거 어쩔;;;;


이건 어떻게 해결하느냐...

< 후한의 '헌제' >

영웅호걸들이 익히 알고 있는 '헌제'

그럼 '헌'이 연호냐

아니죠. 시홉니다.
(그것도 줄여서)

헌제의 연호는 뭘까요?

Q: '건안 13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A: 적벽대전이 일어났습니다. 

그럼 헌제가 아니고 '건안제'인가?

이 불쌍한 황제도

동탁이 옹립할 때의 연호는 '초평'

이각, 곽사의 난를 피해 장안을 떠났을 때 세운 연호가 '건안'

이렇게 황제가 연호를 바꾸는게 '개원(改元)'입니다. 


근데 바꿨다고 해서 그렇게 안 불렀죠.

아니, 그렇게 불러도 틀린건 아니겠지만 -_-;;

'일세일원제'가 확립되지 않은 시기의 황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면 헷갈립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부를것이냐의 문제는 그 때 그 때 다른겁니다. -ㅠ-;


어느 시대는 시호로

어느 시대는 묘호로

어느 시대는 연호로

그렇게 하는게 편한 겁니다. 



연호+제

이거는


< 명 초대황제 '홍무제' 주원장 >

명대에 이르러서야 한 황제 한 연호 쓰기 운동이 정착되어서 

'일세일원제(一世一元制)'가 확립됩니다. 

그제서야 '홍무제'니 '영락제'니 '숭정제'니 하는게 가능해진겁니다. 

청대에서도 고스란히 물려받아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이렇게 된거구요.

근데 명, 청의 황제들이 한 연호를 쓰긴 했어도

여전히 '묘호'는 따로 받고 있었습니다.

홍무제는 태조

영락제는 태종

숭정제는 의종

강희제는 성조

옹정제는 세종

건륭제는 고종


다시 확인하고 가지요.

그러니까 '황제'가 받는겁니다. 


< 칭제건원 처음 해보셔서 좀 서투르셨던 분 >

연호가 두 개 니까 엄밀히 말하면 一世一元에 어긋납니다. 

그래도 오랜세월 명,청에 의해 정립된 일세일원제에 따르는 시대이고

앞서의 '개국' '건양'은 별로 사용하지 않았으니

'개원(改元)'했다고 넘어갈 수 도 있는 부분입니다. 

'건양제'라고 할 필요는 없고
'광무제'라고 하는게 방향자체는 맞습니다. 

근데 조선의 연장선에서 보면 '고종'이라고 보는게 편하기도 하고

'고종'은 본래 황제에게 올리는 묘호인 만큼

'고종'을 가지고 격하의 호칭이라고 할 수 는 없는 것이죠. 

위 소개문에서 잘못이 있다면

'흥선'대원군이라고 해야할 것을 '대원군'이라고만 한 것.

그리고 굳이 격하된 호칭으로 불린 사람을 찾아보라면 그건 '서태후'
서태후는 시호도 묘호도 아니고 그냥 '별명'입니다. 



by MessageOnly | 2014/07/21 23:42 | ■ 다른게 또 뭐있나.. | 트랙백 | 핑백(1) | 덧글(18)
사극황제 진도명
< 사극왕 최수종.jpg >

한반도에는 사극'왕'이라는 제왕의 상을 가진 자가 있습니다.


최수종의 사극역할을 놓고 보면 (연대순으로)

신라 - 김춘추(무열왕) <대왕의 꿈>

발해 - 대조영 (고왕)  <대조영>

신라 - 장보고 (해상왕) <해신>

고려 - 왕건 (태조)  <태조 왕건>

조선 - 이선(사도세자)  <조선왕조 500년 한중록>

조선 - 이제마 (의원)  <태양인 이제마 >

조선 - 이변(철종)  <조선왕조 500년 대원군>

대한민국 - 이현중 (소위)

대한민국 - 장일준 (대통령)



몇 가지 배역을 빼도 '제왕급'에 가까운 주연 배역이 많죠. 

그래서 '사극왕 최수宗'이라는 농담도 있는데....




대륙에는 이에 못지 않은 '황제'의 상을 가진 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진도명'

< 광고모델 진도명 >

이 배우도 무척 많은 제왕역할을 맡았습니다. 

작품도 정말 많이 했는데

그중 사극만 추려도 엄청납니다. 


<무간도3> 같은 현대물은 빼고

 연대순으로 해보면....

< 월왕 진도명 >


춘추전국시대 - 구천(월왕)  <와신상담>(2006)

구천은 '상담' 그러니까 쓸개먹은 월왕입니다. 

장작위에서 잔 오왕 부차는 호군. 

좋은 연기로 국내에서 호평받은 드라마고, EBS에서도 방영되었죠.

< 시황제 진도명 >

춘추전국시대 - 영정(진왕)  <영웅>(2002)

자객 무명이 진왕 정을 위협하던 세 협객의 무기를 담아온 공로로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며 이야기보따리 풀던 그 이야기입니다. 

진왕 정은 그 유명한 시황제.

국내에서는 아무래도 이것으로 더 익숙할지 모르겠습니다. 

< 한고조 진도명 >

한 - 유방 (고황제)   <초한전기> (2012)

동네 부랑배 유계가 '한왕'이 되더니 항우를 꺾고 '한황제'가 되었죠.
(시황제 무덤을 판 항우를 응징)

올해 KBS에서 <초한지>제목으로 방영했는데, 
이 때 EBS에서 <와신상담>을 재방하면서 

한국 지상파 2채널에서 동시간대에 등장한 얼굴이기도 합니다. 
(유계 진도명보다가 리모콘으로 채널돌리는데 또 월왕 진도명이 나오는 상황)

< 삼천갑자 진도명 >

한 - 동방삭  <대한천자1부> (2002)

왼쪽 상단 젊은이가 한무제로 그가 제왕이 되가는 과정 중
무제가 제왕의 자리에 오르기전에 히로인을 두고 다툰 연적 '동방삭'으로 출연.

주인공은 당연히 한무제지만.....동방삭이 히로인이랑 떠난 1부 이후로 재미급감.


< 미주랑 진도명 >

동오 - 주유(도독) <관공> (1990)

제목이 '관공' 그러니까 주인공은 관장군이죠. 

나중에 한 번 이야기할 거리지만....'주유' 역을 했다는 것도 좀 재밌는 부분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미남역을 좀 했습니다. 그래서 야시시한 출연도 있고 그렇죠.

< 황자 진도명 >

송 - 조원엄(팔현왕) <소년포청천> (1999)

송태종 여덟번째 아들 팔현왕으로 나오는데

이전 TV시리즈 <구로서인>(1997)에서도 팔현왕역을 했다가 같은 역으로 <소년포청천>에 출연한 경우입니다.

주역은 아니고 악역으로 권력을 누리며 백성을 괴롭히는 뭐 그런류의 황자.


< 천계제 진도명 >

명 - 주유교(천계제)  <강산풍우정> (2003)

갑자기 차캐져서 희대의 목수황제 천계제로 나옵니다. 

하....천계제........

황제이긴 하지만 그렇게 비중있는 역은 아니었습니다. 천계제니까....;

< 도르곤 진도명 >

청 - 도르곤(예친왕)   <혼단진회> (2001)

근데 천계제하다가 도르곤하는건 인간적으로 너무 한 거 아닙니까?




< 강희제 진도명 >

청 - 애신각라 현엽 (강희제)  <강희제국> (2000)

국내에서는 <강희왕조>로 나왔습니다. 소년시절 이후 청년-중년-노년 강희제를 연기.

진도명의 황제 연기 정점을 찍은 작품이었죠.

그도 그럴게 뭐 다른 황제 배역은 맡았더라도 황제 자체가 안습한 인물이거나 황제라고 해도 그냥 단역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고

황제 중에서도 '강희제'라고 하면 역대 최고이니 그냥 강희제만 맡아도 배우 인기도가 오를 수 밖에 없겠죠.

좀 지나서 화질이 떨어지고 특수효과 등이 좋은편은 못됩니다만 연기만으로 볼만한 작품.

이월화 제왕삼부곡 시나리오로 가서 가상인물들이 좀 나옵니다만 역사물로 봐도 괜찮습니다.




< 사야 진도명 >


청 - 방경재(사야) <소흥사야>(1998)

평민이 되어 사야노릇도 해봅니다. 

사야는 역시 믿고쓰는 소흥산

 < 함풍제 진도명 >

청- 애신각라 혁저(함풍제) <상방보검> (2002)

함풍제역으로 나오는데, 황제가 주인공인 드라마는 아닙니다. 

진지한 역사물도 아니고 상방보검을 둘러싼 음모를 해결하는 젊은 애들이 나오는 그런 류의 이야기.

인기 있었던 <강희제국>의 진도명을 황제로 놓아서 시선 좀 더 얻어볼까한 정도 생각합니다. 

함풍제가 나오는 시점부터 이미 망조;



청 - 호설암 (상인) <호설암> (1996)

중국의 전설적인 거상, 거부였던 호설암도 되어봅니다.

하지만 나중에 파산하고 마는데...


 < 동치제 진도명 >

청 - 애신각라 재순(동치제)  <일대요후> (1987)

서태후가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국내에서는 <서태후>로 들어왔습니다.

'서태후'가 주인공인 만큼 내용이 괴랄한데요. 

서태후가 자기 권력독점을 위해 친아들 동치제가 좋아하는 궁녀를 기녀원에 팔아버립니다(...)  
그녀를 잊지 못해 계속 찾던 동치제는 결국 기녀로 변한 그녀를 보고는 충격먹고 
뭐 막판에 좀 정신차리고 친정을 좀 하려고도 하지만...결국은 성병으로 죽고 마는 막장전개;

실제로 서태후가 동치제 주변여인(황후포함)들을 지독히 싫어했고, 그런 와중에 동치제가 홍등가 돌면서 아편쟁이 되고 매독올라죽었다는 이야기도 있기도 합니다. 그 이야기를 갖다쓴 것이겠죠.

덧붙여서 동치제는 <상방보검>에 나오는 함풍제의 아들
아들이 아버지를 꼭 닮았네요

< 일본군 진도명 >

일본 - 이토 스케유키(일본  해군제독) <북양수사> (1992)

아들아 이게 무슨 짓이야! 복수를 하는 중입니다 어머니

충격이 너무나 컸던지북양수사(북양함대)를 이끄는 정여창의 맞상대인 일본 연합함대 제독으로 출연.

중국을 사정없이 털어버립니다.



< 마지막황제 진도명 >

청 - 애신각라 부의(선통제) <말대황제> (1984)

이것은 유명한 그 할리우드영화가 아니고, TV시리즈입니다. 

근데 이게 진도명 첫 사극주연 배역이었습니다. 

젊은시절에나 맡을 수 있는 중국의 마지막황제를 맡았기에....

'시황제 - 마지막황제' 의 위업 달성이 가능.

시황제 배역은 좀 잘하보면 맡을 수 있지만 선통제는 일단 젊고 봐야하기 때문에 나이들어서 호평받으면 하고 싶어도 못하죠.





이것으로 황제의 시대는 저물었습니다. 

이제 황제 노릇은 더하고 싶어도 못하죠.

그렇다면?

원세개역을 한다면 어떨까?

< 외교관 진도명 >

중화민국 - 고유균(외교관)   <나의1919>(1999)

만주국은 어쩌고 중화민국으로 갈아탐?

고유균은 서구에서 '웰링턴 쿠'로 알려진 인물로 나중엔 국제사법재판소 판사를 한 인물입니다. 

이 영화는 1919년 파리강화회의를 주제로 그가 활동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주인공이죠.

파리강화회의에서 중화민국 입장을 설파하는 외교관으로서 다뤄집니다만....감동은 몰라도 성공스토리는 아니고

-> 5.4운동으로.

...조선이고, 베트남이고 다 털리고 말았던 그 파리강화회의 맞습니다. 


중화민국 - 고유균(외교관)  <건당위업> (2011)

다시 고유균역으로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나오는데,
군벌-국민당-공산당-일본 다 나오는 역사정치물이라 고유균의 비중은 낮습니다. 
왼쪽하단에 안경쓴 인물.

당연하겠지만...공산당을 창건역사를 다루는 당찬양 영화입니다. 뒤에 나오는 <건국대업>의 후속작 같은 영화;;

원세개로 나오는 주윤발이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습니다. 

실제 고유균이 1926년에 중화민국 대총통 한 번 합니다만, 그 시기는 돌아가면서 앉혀놓는 식이었고 군벌도 아니었기에 실권은 없는 존재였습니다. 

< 총통 진도명 >

중화민국 - 장개석 (총통) <장정> (2000)

황제는 이제 할 수 없기 때문에(만주국은?총통이 됩니다.

근데 대륙의 제왕이라면 '모택동'이지만
풍채가 부족(?)한 탓에 공산당 짱인 '모택동' 역은 못했습니다. 
모택동은 아무리도 통통한 양반들이 하기 마련인지라......

문제는 <장정> 장개석 배역 이후로 '국민당'간부 위주로 배역을 맡습니다.

장개석도 이때 한 번만 한게 아니고 이후 다른 작품에서도 장개석 역할을 합니다.



중화민국 - 염금문 (국민당군 장교)  <건국대업> (2009)

여기는 장개석역을 다른 배우가 하는데 차라리 안 하는게 나았을 정도로 장개석이 엄청 안 좋게 나옵니다. 

그도 그럴게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 대작인지라...-_-;;


중화민국 - 도덕일 (국민당군 장교) <사가병> (2005)

일본 - 카사하라 (일본 육군중위)  <도성혈정>

1937년 난징대학살을 그린 영화로 양심적인 일본군 장교로 출연.

반일영화인데 그 시기 <일대요후(서태후)>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이거나 그거나 좀 역사를 내세우면서 파격노출장면 같은걸 넣는 유형이죠.

 < 국민당총수 진도명 >

중화민국 - 장개석 (총통) <1942> (2012)

최근에도 장개석역으로 또 한 편 

중궈에서 일류 남우로 인정받는 게 꼭 모택동 역을 맡아야만 되는게 아니긴한데....

그래도 너무 국민당 위주로 돌았죠;

중궈에서는 국민당은 그저 까임대상일 뿐이기 때문에...-ㅠ-;

비슷한 황제전문배우들인 당국강, 장철림에 비하면 복이 없다고 해야할 지도 모릅니다. 

황제배역으로 치면 당국강도 진도명 못지 않고, 오히려 '성분'이나 '비중'면에서는 앞서는 면도 있습니다. 














- 정리하면 

기원전부터 쓸개 빼먹으며 노력하다가 기어코 처음으로 황제 해먹음.

근데 누가 자기무덤파헤쳐서 혼내주고 다시 황제노릇함.

후손이 연애하는거 방해하고 백성을 괴롭히는 황자가 되어보기도 하면서 놀다보니

목공취미 때문에 나라 망하게 생겨서 이왕 이렇게 된거 자기손으로 멸망시킴.

다시 황제해보는 김에 이번엔 잘 해보겠다며 오래해먹다가 이정도면 되겠지? 하고 다시 놀기 시작.

돈이나 벌어볼까? 이야 잘 벌리네....어라 파산이라고?  
아니? 어머니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ㄷㄷ;
......모두를 댓가를 치르게 될거요!

..너무 털어버려서 다시 황제했을땐 더이상 황제노릇 더이상 해먹지도 못할 지경...

일본놈들아 이거 해도 너무 한거 아니냐 21개조 폐기해라!   

이제 뭐하지.....그래 총통이나 하자.






KBS 초한지 종방기념(?)으로 써봤습니다. 

마지막회는 너무 생략이 많았네요. 마치 제갈량 사후의 삼국지 느낌;;

제목자체가 '초한'이니 항우가 죽은 시점에 이미 끝난 것이긴 하지만요.

지난회까지 항우의 최후에 무게가 실려서 유방은 거의 출연분량이 없었는데
마지막회는 그걸 만회하는 연출같기도 했습니다. 

한신 조금 나오고 나서부터는 유방 일직선

마지막까지 건달스럽게 나온게 일관성있고 괜찮았습니다. 

초반부터 그런식으로 나왔는데 상당히 미화된 것도 있지만 뭐 이런 마무리도 괜찮네요.













번외편)


< 인민해방군 진도명 >

국민당 외길인생이었던 그에게도 인민해방군 배역이 왔습니다.

< 상교 진도명 >
< 대교 진도명 >

중화인민공화국 - 왕덕청(인민해방군 대교)  <당산대지진> (2010)

영화 <당산대지진>은 1976년 당산대지진과 2008년 당산대지진을 주무대로 하는데...

저기서는 여주인공을 입양한 군인부부로 나옵니다. 


줄 하나에 별 = 위관, 줄 둘에 별 = 교관, 줄 없고 별 = 장관 이죠.

인민해방군에서 별 네개면 대교입니다. 줄 있고 없고 상관없이 별이 네개면 대교밖에 없습니다. 

우리로 치면 대령-준장 정도 쯤인데, 보직은 주로 여단장, 사단장 수준.

32년 근속 결과 대교까지 달았다는 이야기지만.....사진 잘 보시면 마누라는 남편 상교할 때 이미 소장!
역시 공산당은 체질이 아닌 듯
by MessageOnly | 2013/12/03 01:53 | ■ 다른게 또 뭐있나.. | 트랙백 | 덧글(12)
조선국왕 VS 중국황제
< 신동준, 위즈덤하우스, 2010 >

인물비교구도로 서술하는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두 대상을 통해서 이것저것 생각해보게 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일단 한국에서 나온 책이다보니 중국황제가 조선군왕보다 높은 지위라 하더라도 조선이 먼저 나옵니다. 책 제목 부터도 그렇지요. 

전체적으로 특이한 부분은 조선의 성리학자들의 소중화사상을 꾸준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군주는 물론 나라와 백성조차 안중에도 없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는 정신적으로 조선의 신민이 아니었다'라는 문구처럼요. 이런 부분은 공감하기 쉽게 되어있습니다. 또 조선왕조가 명-청 교체기에 역성혁명이 벌어질 수 도 있음에도 그렇지 않았던 점에 대한 분석론은 흥미롭더군요. 내용이 풍부한 편이며, 오탈자를 찾아보기 힘들정도입니다. 

목차대로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초반구성은 상당히 좋습니다. 중원의 정권이 교체됨과 더불어 한반도의 정권도 바뀌기 때문에 비교하여 보기 좋습니다. 특히 이성계와 주원장이 창업군주이면서도 서로 달랐던 부분과 그 효과에 대한 생각, 이방원과 주치에 대한 평가는 인상적이었습니다. 

1장-태조vs홍무제 태조의 ‘위화도회군’과 홍무제의 ‘홍건기의’
주원장의 홍건적 가담
이성계의 홍건적 토벌과 주원장의 건국 
주원장의 문자지옥과 이성계의 족보 미화 작업 

2장-태종vs영락제 태종의 ‘왕자의 난’과 영락제의 ‘제2창업’
연왕 주체와 승려 도연의 만남
태종 이방원과 하륜의 만남 
연왕 주체의 정난지역 
쿠빌라이를 꿈꾼 영락제 
태종의 부국강병책

3장-세조vs선덕제 세조의 ‘계유정난’과 선덕제의 ‘인선지치’
세조의‘제2의 창업’
‘ 인선지치’의 등장 

4장-선조vs만력제 선조의 ‘목릉지치’와 만력제의 ‘환관정치’
토목지변과 홍치중흥
암군 만력제와 선조 
명조 최고의 재상 장거정 
왜군의 조선 침공과 명조의 쇠락
선조의 조선 국본 논쟁

3장까지는 부흥하는 왕조의 군주들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전개가 자연스럽게 다가오고, 학계의 다수설과 소수설을 잘 섞어놓았습니다. 읽다보면 지은이가 소수설쪽에 기울어져있음을 알 수 있지만, 무난합니다. 4장까지만 해도 조선과 명의 암군을 비교하여 볼 수 있는 점이 별 무리없이 잘 읽힙니다. 

그런데 5장부터는 단순히 조선의 군왕과 중국의 황제의 비교라고 하기 힘들어집니다. 광해군과 매치된 것은 후금의 누르하치인데, 당시 명 황실이 건재하였으므로 둘 만 매치시켜 놓는 것은 명을 너무 무시하는게 아닌가 싶더군요. 물론 숭정제에 대한 기술도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고 숭정제의 리더십을 반면교사로 삼을 부분도 분명히 나옵니다. 

제 감상으로는 4장까지는 매치가 잘 이루어지지만, 5장부터는 단순히 시간연대에 따른 매치 쪽으로 기웁니다. 10장에 이르러 조선과 청이 망하게 될 무렵에야 다시 비교하여 볼만해질 뿐, 5장부터는 청조의 부흥 연대기에 당시 재위기간이 동일했던 조선군왕을 부록에 넣은 것 같다는 인식이 들 정도입니다. 초반 4장까지는 매치가 잘 이루어지며 조선의 대표적인 군주 세종이 빠지고 있는 점에서 이런 비교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다는 인식이 들게 합니다. 명나라에 세종과 견주어 기술할 만한 군주가 없기는 하죠. 


5장-광해군vs청태조 광해군의 ‘택민주의’와 청태조의 ‘후금건국’
조선조와 명조의 기미책
누르하치와 건주좌위의 흥기 
조선 전역과 누르하치의 여진족 통합
8기의 구성 사르후전투 
광해군의 양면외교

6장-인조vs청태종 인조의 ‘숭명배청’과 청태종의 ‘천도무상’
홍타이지의 즉위와 개독지변
정묘호란과 형제지맹 
병자호란과 군신지맹
 
홍타이지의 중원공략


5장부터 조선군왕은 조선의 국운이 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책에서 차지하는 비중까지도 매우 미약해집니다. 청조에 관한 기술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며 순전히 '비교'를 이야기할 때도 그렇습니다. 5장부터는 '전혀 새로운 관점의 역사 읽기'라는 광고문구가 무색할 정도로 기존 역사읽기와 비슷합니다. 5장부터는 조선과 중국의 비교사가 아니라 '청조의 건국과 부흥'에 초점이 맞춰져서 실제 지은이가 쓰고 싶었던 것은 '후금건국와 청조의 부흥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광해군-누르하치, 인조-홍타이지 의 매치에서는 매치업 리스트가 무색할 정도로 대조적이라거나 유사한 부분을 찾기 어렵습니다. 단지 그들이 동시대 인물이었다는 점 외에 딱히 연관성을 짓기가 어렵게 기술되고 있습니다. 차라리 인조-숭정제를 매치하였다면 신진세력인 홍타이지에 맞서는 암군으로 비교라도 할 수 있었겠지요.  해당 단락은 독특하게 편성해서 '조선군왕-중원황제-초원의 칸'의 매치업으로 했어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조선국왕VS중국황제'라는 제목의 틀에 스스로 갇혀 짜맞춘 단락 편성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7장-효종vs순치제 효종의 ‘북벌설치’와 순치제의 ‘북경입성’
중화제국의 몰락과 조선의 소중화 의식 
오삼계의 투항과 효종의 북벌 계획

8장-숙종vs강희제 숙종의 ‘환국정치’와 강희제의 ‘천하통일’
강희제의 즉위와 강건성세의 개막 
만기친람과 국궁진췌 
여인을 지렛대로 삼은 조선의 군신 

효종-순치제 부분은 더 심합니다. 이 두 군주도 서로 뭔가 비교할만한 대상이 아니며, 이 7장은 8장으로 이어나가기 위해 편성한 것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조선과 청의 비교군주들의 재위기간과 수명에 초점을 두어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는데, 그걸 또 여러차례 언급함으로써 두 비교대상이 단지 동시대 인물이라는 것외에 두 군주가 매치되어야할 이유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분리하여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숙종-강희제 부분에서도 두드러집니다. '강희제는 재위기간이 숙종보다 20여년 길지만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오른 점을 감안해 실질적인 친정 기간만 계산하면 14세에 보위에 올라 46년간 재위한 숙종과 거의 같은 시기에 재위했던 셈이다. 숙종이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2년 뒤 강희제가 69세의 나이로 운명했으니 이들은 무려 46년 동안 같은 시기에 재위했다' 이런 더하기 빼기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렇게 한 번 이야기한 것을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두세번씩 반복하여 언급하는지 좀 이상하더라고요. 물론 1~4장에서도 두 인물의 생몰을 비교하기도 합니다만, 이렇게 집요하게 언급되진 않았거든요. 

그래도 숙종-강희제 부분은 좀 비교하여 볼 만 합니다. 황권과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오배같은 권신을 제거한 것이나 송시열과 같은 거유를 제거한 것을 매치하여 볼만한데...좀더 부각시켜서 그 방책와 효과를 비교하여 보았더라면 좋았겠습니다. 숙종과 강희제를 매치업한다면 후사문제에 있어서도 그렇지요. 태자 윤잉의 부침에 따른 황자들의 암투과 정쟁, 숙종의 여러 비빈과 후사문제와 연계된 환국을 비교하여 볼만 하겠습니다. 재위기간의 언급보단 이 쪽이 더 낫겠지요. 

9장-영조vs건륭제 영조의 ‘탕평정치’와 건륭제의 ‘십전지공’
오세동당과 십전지공 
가경제의 즉위와 사도세자의 죽음 
대공지정과 군주도통

10장-고종vs광서제 고종의 ‘광무개혁’과 광서제의 ‘백일유신’
서세동점과 내우외환 
신유정변과 수렴청정 
백일유신과 무술정변 
청조의 신정과 고종의 광무개혁 

옹정제야 뭐 세종처럼 비슷한 시기에 매치업할만한 대상이 없으니 빼는 것은 당연하겠습니다. 영조-건륭제는 비슷한 시기에 모두 평화로운 안정을 도모하였다는 점과 둘 다 매우 장수한 군주였음을 비교합니다. 두 군주 모두 선대에 이룩해놓은 덕을 많이 보았다는 것도 그렇네요. 다소 뜬금없이 영조-건륭제 매치업에서 강희제의 윤잉과 영조의 사도세자가 비교대상이 되어 나옵니다. 그래도 구성자체는 좋습니다. 그 부분에서부터 타이틀 영조는 슬쩍 빠지고 정조가 들어가서 영조분량보다 더 많습니다. 이건 뭐 어쩔 수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재위기간 더하기빼기타령은 9장에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고종-광서제부터는 비교하여 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5장에서 붕 떴던 '조선국왕VS중국황제'구도 가 10장에 이르러서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집중도가 갑자기 뚝 떨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초반의 기세가 끝까지 이어지지 않은 것이 아쉽다고 할 만 합니다. 그 때문인지 이 글도 그렇게 되버리는군요.
by MessageOnly | 2011/07/16 02:18 | ■ 마음의 양식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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